서양사 연구

오딧세이아

박송 입니다. 2010. 6. 3. 16:10

 

 

오딧세이아

 

 

 

 

트로이의 전쟁이후, 그리스의 왕과 장군들은 출발했던 것과 달리 각각 따로따로 귀환길에 오릅니다.
오딧세이아는 오디세이가 험난한 장애를 거쳐서 고향으로 귀향한다는 내용입니다.
아내 페넬로페는 정절의 상징이 된 여성인데, 오디세이가 집을 떠나있는 동안,
구혼자들의 구혼에 시달리게 됩니다.
페넬로페의 친정부모가 재혼을 원했기 때문에 페넬로페는 완벽하게 재혼을
거부하지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서, 페넬로페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미리 짠다면서,
수의를 짤때까지는 구혼을 참아달라고 하고서,
낮에는 짜고, 밤에는 푸르는 행동을 계속합니다.
구혼자들과 연락이 닿아있는 시녀들이 알리는 바람에 이일은 실패하고,
이제 그녀는 구혼자중에서 누구와 혼인할 것인지 정해야하는 상황이 옵니다.
 
오디세이는 그동안 폭퐁우와 신들의 방해를 받으며 갖가지 기이한
왕국과 동물들을 만나면서 모험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에 그는 자신의 부하들을 모두 잃게 됩니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로스는 식인 풍습이 있었는데, 우연히 오디세이와 부하들이
그 동굴에 들어갔다가 잡아먹힐 위기에 처합니다.
오디세이는 거인을 술로 취하게 하고 외눈을 멀게 합니다.
그전에 오디세이는 거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러고는 거인의 양떼에 섞여서 도망치죠.
도망치는 오디세이를 향해 거인이 고함을 치자, 동료거인들이 왜그러냐고 묻습니다.
 거인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네"라고 대답했고,
동료거인들은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데 괴로움을 당한다면 그것은 필경 신의 벌일 것이다."
하고서는 도와줄 것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거인은 오디세이에게 저주를 퍼붓는데,
이거인이 하필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는지라, 분노한 포세이돈에 의해
오디세이는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됩니다.
 
두번째로 유명한 이야기는 마녀 키레네의 섬에서의 일이빈다.
마녀 키레네가 오디세이의 부하를 모두 짐승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오디세이는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마법이 안통하는 풀을 얻어서,
키레네의 마법을 물리치고, 그녀를 굴복시킵니다.
그리하여, 그섬에 거의 눌러앉다시피하게 됩니다.
키레네가 주는 쾌락과 섬의 풍요로움에 반해버린거죠.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집에 갈 생각을 하고 빠져나옵니다.
(아마 오디세이에게는 가장 강력했던 장애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번째는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도착하면서입니다.
이곳사람들은 고통을 모르고, 황금시대처럼 살면서,
신들과 가끔씩 어울려 놀기도 하는 그런 동네였습니다.
그곳에서 오딧세이는 왕에게 자기 신세한탄도 하고,
모험담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불쌍하게 생각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배를 얻어타서 고향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화가난 포세이돈에 의해 오딧세이를 도와주던 사람들과 배는
모두 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놀란 사람들은 외부와 완전히 절연하고 말죠.
 
네번째는 집에 도착해서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집과 재산과 아내를 되찾는다는 내용입니다.
중간에 빠졌는데, 오디세이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부친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구혼자들의 살해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습니다.
오디세이는 신분을 숨기고 섬에 머물고 있었는데,
아들 텔레마코스와 재회하고,
구혼자들의 결전을 준비합니다.
오디세이는 돼지치기들과 아들의 도움을 얻어
(그리고 신의 도움도 얻어서)
그 수많은 구혼자들을 물리칩니다.
거의 학살에 가깝죠. 그정도 수라면...;;
 
 
중간에 저승에 내려가 어떻게 해야 고향에 무사귀환할 수 있는지 묻는 장면도 있었고,
페넬로페가 구혼자들에게 도끼를 늘어놓고 남편의 활로 화살을 쏘아 도끼구멍을 모두 통과시켜야한다는 시험을 냅니다. 그러면 혼인하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구혼자들 대부분은 활을 당기지도 못했는데, 거지로 변장하여 성으로 들어온 오디세이가 활을 당겨서 모두 쏘아맞춥니다.
 
이런 장면들이 있습니다.
 
에, 일리아드와 함께 호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나,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종교의례를 보면, 서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고대 관행으로는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없을 경우,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빌어서 이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는게
관행이었다고 합니다.
여러시인들이 구전해온 것을, 딱히 누구작품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호머의 작품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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