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유명 글 모음

황순원

박송 입니다. 2010. 5. 27. 21:43

 

 

독짓는 늙은이/ 황순원

                            

  줄거리

 송영감은 자기와 어린 자식을 버려 두고 조수와 도망 가 버린 아내에 대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자기네 부자(父子)가 살아가기 위해 독을 구워 내기로 한다. 송영감은 병들어 자주 쓰러지면서도 생존을 위한 독 짓기를 계속하는데 앵두나무 집 할머니가 미음을 쑤어다 주면서 당손이를 어디 좋은 자리에 양자로 줄 것을 제의한다. 날이 갈수록 송 영감은 자리에 눕는 때가 많아지고, 앵두나뭇집 할머니는 마침 당손이를 보낼 좋은 자리가 있다고 송 영감을 채근한다. 송 영감은 어서 독을 한 가마 구워 내려고 조급해진다.

 

 한 가마가 채 차지 않은 독들을 말려 가마에 넣고 불질을 시작하는데, 조수가 만든 독은 터지지 않고 자기가 만든 독이 터져 독 튀는 소리를 듣고 다시 쓰러져 버린다. 그는 장인으로서 생명이 다해 감을 느끼며 죽음을 예감한다.

 

 깨어난 송 영감은 앵두나뭇집 할머니에게 전에 말한 집으로 당손이를 데려 가게 하고 누워서 죽은 체하며 눈물을 흘리며, 송영감은 무심한 당손이를 양자 보내고, 송 영감은 독가마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만든 독 조각 위에, 터져 나간 독 대신에 꿇어앉는다. 그리고 장인(匠人)으로서의 최후를 맞는다.

  

  등장인물

* 송영감: 주인공. 평생 독을 지으며 살아가는 노인. 아내가 도망한 후 독과 함께 자살함.

* 당손이: 송 영감의 아들. 남의 집 양자가 됨.

* 앵두나뭇집 할멈: 방물장수. 인정 많은 할머니로서 당손이를 맡아 기를 집을 소개시켜 줌.

  

  소설읽기

이년! 이 백 번 쥑에두 쌀 년! 앓는 남편두 남편이디만, 어린 자식을 놔두구 그래 도망을 가? 것두 아들놈 같은 조수놈하구서--- 그래 지금 한창 나이란 말이디? 그렇다구 이년, 내가 아무리 늙구 병들었기루서니 거랑질이야 할 줄 아니? 이녀언! 하는데, 옆에 누웠던 어린 아들이, 아 바지, 아바지이! 하였으나 송 영감은 꿈속에서 자기 품에 안은 아들이 아바지, 아바지이! 하고 부르는 것으로 알며. 오냐 데건 네 에미가 아니다! 하고 꼭 품에 껴안는 것을, 옆에 누운 어린 아들이 그냥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러, 잠꼬대에서 송 영감을 깨워 놓았다.

 

 송 영감은 잠들기 전보다 더 머리가 무겁고 언짢았다. 애가 종내 훌쩍 훌쩍 울기 시작했다. 오, 오, 하며 송 영감은 잠꼬대 속에서처럼 애를 끌어안았다. 자기의 더운 몸에 별나게 애의 몸이 찼다. 벌써부터 이렇게 얼리어서 될 말이냐고, 송 영감은 더 바싹 애를 껴안았다. 그리고 훌쩍이는 이제 일곱 살 난 애를 그렇게 안고 있는 동안 송 영감은 다시 이 어린것 을 두고 도망간 아내가 새롭게 괘씸했다. 아내와 함께 여드름 많던 조수가 떠올랐다. 그러자 그 아들 갈은 조수에게 동년배의 사내와 사내가 느끼는 어떤 적수감이 불길처럼 송 영감의 괴로운 몸을 휩쌌다. 송 영감 자신이 집증 잡히지 않는 병으로 앓아 누웠기 때문에 이 가을 마지막 가마에 넣으려고 거의 혼자서 지어 놓다시피 한 중옹 통옹 반옹 머쎄기 같은 크고 작은 독들이 구월 보름 가까운 달빛에 하나 하나 도망간 조수의 그림자같이 느껴졌을 때, 송 영감은 벌떡 채방망이를 들어 모조리 깨부수고 싶은 충동을 받았으나. 다음부터라도 자기가 독올 지어 한 가마 채워 가지고 구워 내야 당장 자기네 부자가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면서는, 정말 그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지그시 무거운 눈을 감아 버렸다.

 

 날이 밝자 송 영감은 열에 뜬 머리를 수건으로 동이고 일어나 앉아 애더러는 흙 이길 왱손이를 부르러 보내 놓고, 왱손이 올 새가 바빠서 자기 손으로 흙을 이겨 틀 위에 올려놓았다. 송 영감의 손은 자꾸 떨리었다. 그러나 반쯤 독을 지어 올려. 안은 조마구 밖은 부채마치로 맞두드리며 일변 발로는 틀을 돌리는 익은 솜씨만은 앓아눕기 전과 다를 바 없는 듯했다. 왱손이가 흙을 이겨 주는 대로 중옹 몇 개를 지어냈다.

 

 그러나 차차 송 영감의 솜씨에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구나 조마구와 부채마치로 두드려 올릴 때, 퍼뜩 눈앞에 아내와 조수의 환영이 떠오르면 짓던 독을 때리는지 아내와 조수를 때리는지 분간 못하는 새 그만 얇게 못나게 지어지곤 했다. 그리고 전을 잡는 손이 떨 제일 힘든 마무리의 전이 잘 잡혀지지를 않았다. 열 때문도 있었다. 영감은 쓰러지듯이 짓던 독 옆에 눕고 말았다.

 

 송 영감이 정신이 들었을 때는 저녁때가 기울어서였다. 왱손이도 흙 몇 덩이를 이겨 놓고 가고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바깥 저녁그늘 속에 애가 남쪽 장길을 향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거리라. 언제나처럼 장보러 간 어머니가 언제나처럼 저녁때면 조수에게 장감을 지워 가지고 돌아올 줄로만 아직 아는가 보다.

 

 밖을 내다보던 송 영감은 제 힘만이 아닌 어떤 힘으로 벌떡 일어나 다시 독짓기를 시작하는 것이었으나, 이번에는 겨우 한 개를 짓고는 다시 쓰러지듯이 눕고 말았다.

 

 다음에 송 영감이 정신이 든 것은 아주 어두운 속에서 애가 흔들어 깨워서였다. 울먹이던 애가 깨나는 아버지를 보고 그제야 안심된 듯이 저쪽에서 밥그릇을 가져다 아버지 앞에 놓았다. 웬 거냐고 하니까 애가, 앵두나믓집 할머니가 주더라고 한다. 송 영감은 확 분노가 치밀어, 누가 거랑질해 오라더냐고 밥그릇을 밀쳐 놓자 애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송 영감은 아침에 어제의 저녁밥 남은 것을 조금 뜨는 것처럼 하고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는, 애도 아직 저녁을 못 먹었을지 모른다고 밥그릇을 도로 끌어다 한 술 입에 떠넣으며 이번에는 애 보고, 맛있으니 너도 먹으라는 것이었으나, 자신은 입맛을 잃은 탓만도 아닌 무엇이 밥 넘기려는 목에서 치밀어 올라오곤 해, 좀처럼 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송 영감이 죽인지 밥인지 모를 것을 끓였다. 여전히 입맛은 없었으나 어제저녁처럼 목이 메어오르는 것은 없었다. 오늘도 또 지어올리는 독을 말리느라고 처음에는 독 밖에 피워 놓았다가 독이 한 반쯤 지어지면 독 안에 매달아 놓은 숯불의 숯내까지가 머리를 더 무겁게 했다. 사십 년래 없이 숯내를 다 먹는 듯했다. 송 영감은 어제보다 더 쓰러져 넘어지는 도수가 많았다. 흙 이기던 왱손이가 이래서는 도무지 한 가마 채우지 못하리라고 송 영감에게 내년에 마저 지어 첫 가마에 넣도록 하는 게 어떠냐고 몇 번이고 권해 보았으나 송 영감은 일어났다가는 쓰러지고, 일어났다가는 쓰러지고 하면서도 독 짓기를 그만두려고 하지는 않았다.

  

 

 

독짓는 늙은이 /황순원

 

 

 

 그러한 어느 날, 물감이며 바늘을 가지고 한돌림 돌고 온 앵두나뭇집 할머니가 찾아와서는 마침 좋은 자리가 있으니 당손이를 주어 버리고 말자는 말로, 말이 난 자리는 재물도 넉넉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 마음씨가 무던하다는 말이며, 그 집에 전에 어떤 젊은 내외가 살림을 엎어 치우고 내버린 애를 하나 얻어다 길렀는데 얼마 전에 그 친아버지 되는 사람이 여남은 살이나 된 그 애를 찾아갔다는 말이며, 그때 한 재물 주어 보내고서는 영감 내외가 마주앉아 얼마 동안을 친자식 잃은 듯이 울었는지 모른다는 말이며. 그래 이번에는 아버지 없는 애를 하나 얻어다 기르겠다더라는 말을 하면서, 꼭 그 자리에 당손이를 주어 버리고 말자고 했다. 송 영감은 앵두나뭇집 할머니와 일전의 일이 있은 뒤에도 앵두나뭇집 할머니가 애를 통해서 먹을 것 같은 것을 보내는 것이, 흔히 이런 노파에게 있기 쉬운 이런 주선이라도 해 주면 나중에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있어 그걸 탐내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그저 인정 많은 늙은이라 이편을 위해 주는 마음에서 그런다는 것만은 아는 터이지만, 송 영감은 오늘도 저도 모를 힘으로, 그런 소리를 하려거든 아예 다시는 오지도 말라고, 자기 눈에 흙들기 전에는 내놓지 못한다고 했다. 앵두나뭇집 할머니는 그렇게 고집만 부리지 말고 영감이 살아서 좋은 자리로 가는 걸 보아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느냐는 말로, 사실 말이지 성한 사람도 언제 무슨 변을 당할는지 모르는데 앓는 사람의 일을 내일 어떻게 될는지 누가 아느냐고 하며, 더구나 겨울도 닥쳐오고 하니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송 영감은 그저 자기가 거랑질을 해서라도 애를 굶기지는 않을 테니 염려 말라고 했다. 앵두나뭇집 할머니가 돌아간 뒤, 송 영감은 지금 자기가 거랑질을 해서라도 애를 굶기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그리고 사실 아내가 무엇보다도 자기와 같이 살다가는 거랑질을 할 게 무서워 도망갔음에 틀림없지만, 자기가 병만 나아 일어나는 날이면 아직 일등 호주라는 칭호 아래 얼마든지 독을 지을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 한 가마 독만 채워 전처럼 잘만 구워 내면 거기서 겨울 양식과 내년에 할 밑천까지도 나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어서 한 가마를 채우자고 다시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이었다.

 

 하루는 송 영감이 날씨를 가려 종시 한 가마가 차지 못하는 독을 손이의 도움을 받아 밖으로 내고야 말았다. 지어진 독만으로라도 한 가마 구워 내리라는 생각이었다. 독말리기, 말리기라기보다도 바람쐬기다. 햇볕도 있어야 하지만 바람이 있어야 한다. 안개 같은 것이 낀 날은 좋지 못하다. 안개가 걷히며 바람 한 점 없이 해가 갑자기 쨍쨍 내리쬐면 그야말로 걷잡을 새 없이 독들이 세로 가로 터져 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바람이 좀 치는 게 독말리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독들을 마당에 내이자 독가마 속에서 거지들이, 무슨 독을 지금 굽느냐고 중얼거리며 제가끔의 넝마 살림들을 안고 나왔다. 이 거지들은 가을철이 되면 이렇게 독가마를 찾아들어 초가을에는 가마 초입에서 살다, 겨울이 되면서 차차 가마가 식어 감에 따라 온기를 찾아 가마 속 깊이로 들어가며 한겨울을 나는 것이다. 송 영감은 거지들에게, 지금 뜸막이 비었으니 독 구워 내는 동안 거기에들 가 있으라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전에 없이 거지들을 자기 집에 들인다는 것이 마치 자기가 거지나 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가마에서 나은 거지들은 혹 더러는 인가를 찾아 동냥을 가고, 혹 한 패는 양지바른 데를 골라 드러누웠고, 몇이는 아무 데고 앉아서 이 사냥 같은 것을 하기 시작했다.

 

 송 영감도 앙지에 앉아서 독이 하얗게 마르는 정도를 지키고 있었다.

 

 독들을 가마에 넣을 때가 되었다. 송 영감 자신이 가마 속까지 들어가 전에는 되도록 독이 여러 개 들어가도록만 힘쓰던 것을 이번에는 도망간 조수와 자기의 크기 같은 독이 되도록 아궁이에서 같은 거리에 나란히 놓이게만 힘썼다. 마치 누구의 독이 잘 지어졌나 내기라도 해 보려는 늦저녁때쯤해서 불질이 시작됐다. 불질. 결국은 이 불질이 독을 못 쓰게도 만드는 것이다. 지은 독에 따라서 세게 때야 할 때 약하게 때도, 약하게 때야 할 때 지나치게 세게 때도, 또는 불을 더 때도 덜 때도 안 된다. 처음에 슬슬 때다가 점점 세게 때기 시작하여 서너 시간 지나면 하얗던 독들이 흑색으로 변한다. 거기서 또 너더댓 시간만 때면 독들은 다시 처음의 하얗던 대로 되고, 다음에 적색으로 탔다가 이번에는 아주 샛말갛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쇠가 녹는 듯. 하늘의 햇빛을 쳐다보는 듯이 된다. 정말 다음날 하늘에는 맑은 햇빛이 빛나고 있었다.

 

 곁불놓기를 시작했다. 독가마 양옆으로 뚫은 곁창 구멍으로 나무를 넣는 것이다. 이제는 소나무를 단으로 넣기 시작했다. 아궁이와 곁창의 불길이 길을 잃고 확확 내쏜다. 이 불길이 그대로 어제 늦저녁부터 아궁이에서 좀 떨어진 한곳에 일어나 앉았다 누웠다 하며 한결같이 불질하는 것을 지키고 있는 송 영감의 두 눈 속에서도 타고 있었다.

 

 이렇게 이날 해도 다 저물었다. 그러는데 한편 곁창에서 불질하던 왱손이가 곁창 속을 들여다보는 듯하더니, 분주히 이리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송 영감은 벌써 왱손이가 불질하던 곁창의 위치로써 그것아 자기의 독이 들어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왱손이가 뭐라기 전에 먼저, 무너앉았느냐고 했다. 왱손이는 그렇다고 하면서, 이젠 독이 좀 덜 익더라도 곁불질을 그만두고 아궁이를 막아 버리자고 했다. 그러나 송 영감은 그저,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그냥 불질을 하라고 했다.

 

 거지들이 날이 저물었다고 독가마 부근으로 모여들었다. 송 영감이, 이제 조금만 더, 하고 속을 죄고 있을 때였다. 가마 속에서 갑자기 뚜왕! 뚜왕! 하고 독 튀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송 영감은 처음에 벌떡 반쯤 일어나다가 도로 주저앉으며 이상스레 빛나는 눈을 한 곳에 머물린 채 귀를 기울였다. 송 영감은 가마에 넣은 독의 위치로, 지금 것은 자기가 지은 독, 지금 것도 자기가 지은 독, 하고 있었다. 이렇게 튀는 것은 거의 송 영감의 것뿐이었다. 그리고 송 영감은 또 그 튀는 소리로 해서 그것이 자기가 앓다가 일어나 처음에 지은 몇 개의 독만이 튀지 않고 남은 것을 알며, 왱손이의 거치적거린다고 거지들을 꾸짖는 소리를 멀리 들으면서 어둠 속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다음날 송 영감이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자기네 뜸막 안에 뉘어 있었다. 옆에서 작은 몸을 오그리고 훌쩍거리던 애가 아버지가 정신 든 것을 보고 더 크게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송 영감이 저도 모르게 애보고 안 죽는다, 안 죽는다, 했다. 그러나 송 영감은 또 속으로는, 지금 자기는 죽어가고 있다고 부르짖고 있었다.

 

 이튿날 송 영감은 애를 시켜 앵두나뭇집 할머니를 오게 했다. 앵두나뭇집 할머니가 오자 송 영감은 애더러 놀러 나가라고 하며 유심히 애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마치 애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는 듯이. 앵두나뭇집 할머니와 단둘이 되자 송 영감은 눈을 감으며, 요전에 말하던 자리에 아직 애를 보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앵두나뭇집 할머니 된다고 했다. 얼마나 먼 곳이냐고 했다. 여기서 한 이삼십 리 잘 된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보낼 수 있느냐고 했다, 당장이라도 데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앵두나뭇집 할머니는 치마 속에서 지전 몇 장을 꺼내어 그냥 눈을 감고 있는 송 영감의 손에 쥐어 주며, 아무 때나 애를 데려오게 되면 주라고 해서 맡아 두었던 것이라고 했다.

 

 송 영감이 갑자기 눈을 뜨면서 앵두나뭇집 할머니에게 돈을 도로 내밀었다. 자기에게는 아무 소용없으니 애 업고 가는 사람에게나 주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앵두나뭇집 할머니는 애 업고 가는 사람 줄 것은 따로 있다고 했다. 송 영감은 그래도 그 사람을 주어 애를 잘 업어다 주게 해 달라고 하면서, 어서 애나 불러다 자기가 죽었다고 하라고 했다. 앵두나뭇집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하다가 저고릿고름으로 눈을 닦으며 밖으로 나갔다.

 

 송 영감은 눈을 감은 채 가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눈물일랑 흘리지 않으리라 했다.

 

 그러나 앵두나뭇집 할머니가 애를 데리고 와 저렇게 너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을 때, 감은 송 영감의 눈에서는 절로 눈물이 홀러 내림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앵두나뭇집 할머니는 억해 오는 목소리를 겨우 참고, 저것 보라고 벌써 눈에서 썩은 물이 나온다고 하고는, 그러지 않아도 앵두나뭇 집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 더 아버지에게 가까이 갈 생각을 않는 애의 손을 끌고 그곳을 나왔다.

 

 그냥 감은 송 영감의 눈에서 다시 썩은 물 같은, 그러나 뜨거운 새 눈 물줄기가 홀러 내렸다. 그러는데 어디선가 애의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눈을 떴다. 아무도 있을 리 없었다. 지어 놓은 독이라도 한 개 있었으면 싶었다. 순간 뜸막 속 전체만한 공허가 송 영감의 파리한 가슴을 억눌렀다. 온몸이 오므라들고 차 옴을 송 영감은 느꼈다. 그러는 송 영감의 눈앞에 독가마가 떠올랐다. 그러자 송 영감은 그리로 가리라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 거기에만 가면 몸이 녹여지리라. 송 영 감은 기는 걸음으로 뜸막을 나섰다. 거지들이 초입에 누워 있다가 지금 기어 들어오는 게 누구이라는 것도 알려 하지 않고, 구무럭거려 자리를 내주었다. 송 영감은 한옆에 몸을 쓰러뜨렸다. 우선 몸이 녹는 듯해 좋았다. 그러나 송 영감은 다시 일어나 가마 안쪽으로 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지금의 온기로써는 부족이라도 한 듯이. 곧 예삿 사람으로는 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데까지 이르렀다. 그런데도 송 영감은 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덮어놓고 기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마지막으로 남은 생명이 발산하는 듯 어둑한 속에서도 이상스레 빛나는 송 영감의 눈은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열어제친 곁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늦가을 맑은 햇빛 속에서 송 영감은 기던 걸음을 멈추었다. 자기가 찾던 것이 예 있다는 듯이. 거기에는 터져나간 송 영감 자신의 독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송 영감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단정히, 무릎을 끓고 앉았다. 이렇게 해서 그 자신이 터져나간 자기의 독 대신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핵심정리

* 갈래: 단편 소설

* 배경: 시간(가을), 공간(어느 산골)

* 시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문체: 간결체

* 표현: 대화에 의한 장면 제시가 거의 없이 서술자가 직접 인물과 사건의 정황을 해설하며 인물의 내면 심리를 분석적으로 제시함

* 주제: 현대 사회에서 파괴되어 가는 한국의 전통적 인간상 제시, 투철한 예술 정신의 표현,  인간의 본연적인 삶의 집착과 한국의 전통적 인간상 제시

* 출전: [문예](1950)

  

  구성

* 발단: 송영감의 아내가 조수와 함께 달아남

* 전개: 송영감이 병들어 눕는 횟수가 많아지고,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당손이를 다른 집에 주자고 함

* 위기: 송 영감이 병석에 눕는 횟수가 많아지자 당손이에 대한 앵두나뭇집 할머니의 채근이 심해짐.

* 절정: 독을 굽다가 쓰러짐.

* 결말: 당손이를 데려가게 하고 독 조각 위에 꿇어앉아 죽음을 맞는 송 영감.

 

 황순원

 평남 대동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경희대학 교수, 예술원 회원을 역임함. 1931년 [동광]지에 시 '나의 꿈'을 발표 한 후 문단에 등단. 1934년 첫 시집 {방가(放歌)}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함. 1935년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와 소설을 함께 발표하고, 1940년 단편 소설집 {늪}을 간행하면서 소설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에는 교직에 몸담으면서 [독짓는 늙은이](1950), [곡예사], [학], 등의 단편과  [별과 같이 살다](1947),[카인의 후예](1953), [인간접목](1955) 등 장편소설을 발표함. 그의 작품 세계는 시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문체와 스토리의 조직적인 전개를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의 문체는 설화성(說話性)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인간의 본연적인 심리를 미세하게 묘사하는가하면 , 비극적인 현실을 심원한 사상이나 종교로서 감싸고 이해하려는 주제 의식의 확대를 보여주고 있다.

  

  해설 1

 이 작품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 어느 하나의 단적인 인상을 집어내는 데 주력하면서 절제된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대화에 의한 장면의 제시가 없이 설명적 진술과 서사적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서사적 전달 방식에 있어서 가장 전통적인 기법이라 할 수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하여 '송 영감'의 정신적 갈등을 서술할 뿐만 아니라, 인물의 행동에 대한 해설을 수행하고 있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가치 체계의 붕괴를 겪는 세태에 대항하려고 하는 한 노인의 집념과 좌절을 보여 줌으로써, 격변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재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인 송 영감이 아들 당손이와 헤어지는 장면이라든지 스스로 독으로 화신(化身)하려고 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깊은 감동을 준다.

 

 이러한 점에서 소설 <독 짓는 늙은이>의 바탕에는 문명 이전의 순수한 삶을 다음 세대로 이어 주지 못하는 한 자연인의 비극적 종말이 어느 특정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작가 정신이 담겨 있다.

 

 

  해설 2

 일생을 독 굽는 일에 바쳐 온 한 노인의 좌절을 그린 단편 소설이다. 이 소설의 갈등은 주인공인 송 영감의 늙음에서 기인한 아내에 대한 배신감, 좌절감과 장인(匠人)으로서의 집념 사이에서 전개된다. 젊은 아내의 배신과 독 굽기의 실패로 인해 좌절하고,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온 독가마 속에서 비장한 최후를 마치는 한 노인의 처절한 장인적 집념과 고뇌를 그렸다. 작가 특유의 문체와 서술 기법을 통해, 우리의 전통적 인간상의 하나인 '독짓는 늙은이'가 붕괴되어 가는 전통적 사회 질서 속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소설은 대화가 거의 생략되어 있고, 등장 인물과 사건의 정황을 작가가 직접 제시하고는 있으나 편집자적 해설의 경지까지는 가지 않고 있다. 간결한 문장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유발시키고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 소설은 구성 단계상 결말에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고 있으며, 비극적 결말로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암시와 여운의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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