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마르크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이해
제 1차 세계 대전(1914-1918)을 영어로는 "The Great War"라고 표현한다. 인류 역사상 많고 많은 전쟁 가운데 유독 이 전쟁에 'Great'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서구인들이 받은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전쟁이었으며, 제 1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최초로 기관총과 지뢰, 수류탄 등이 동원된 전쟁이었으며, 최초로 전세계가 두 편으로 나뉘어 싸운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이 남긴 가장 큰 피해는 인적 . 물적 손실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상처였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젊은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했다.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독일 소설가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1970)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29)에서 자신을 포함해 참전 세대인 동시대의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파괴된 세대'라 불렀다. 레마르크는 시범 학교에 다니던 중 열일곱 살의 나이에 거의 반강제로 참전하게 되었다. 전쟁터에서 젊은 레마르크가 본 것은 절망 그 자체였다. 이 때 그가 겪은 고통과 공포는 훗날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삶보다 죽음을 먼저 배우며 젊은 병사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잃어버렸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레마르크 역시 전쟁 뒤의 불안한 상황에서 한동안 방황했다. 전쟁이 끝난 뒤 10여 년 동안 그는 먹고살기 위해 초등학교 교사와 점원 등을 전전하였으며, 이름 없는 저널리스트 신문에 기사를 쓰곤 했다. 그러다 1926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발표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수기 형식으로, 발표한 지 1년도 안 되어 12개 국어로 번역되고 18개월 만에 350만 부라는 엄청난 부수가 팔렸다. 이 한 편의 소설로 그는 단숨에 세계적 작가가 떠올랐다. 뒤이어 1931년에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귀로"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종전 뒤 고향은 돌아온 귀환병들의 좌절을 그린 것으로, 역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이 두 편의 소설로 그는 심각한 곤경에 부딪히게 되었다. 당시 독일은 패전으로 국민 생활이 황폐해진데다가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정치적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 버린 독일 국민들은 강력한 독일 제국 건설을 내세우며 등장한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 어린 선전에 사로잡혔다. 레마르크의 수난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나치는 레마르크를 그들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표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반전 문학의 기수로 보아 적대시했다. 조국의 정치 상황에 회의와 불안을 느낀 레마르크는 1932년 조국을 떠나 스위스로 갔다. 그 뒤 1933년 1월 히틀러와 나치는 정권을 장악했고, 즉시 자신들의 목적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공개적으로 불살라 버리는 분서(焚書)조치를 취했다. 당연히 "서부 전선 이상 없다"도 이 분서 목록에 있었다. 나치는 1938년에 이르러 레마르크의 독일 국적을 박탈해 버렸다. 전운이 감도는 유럽의 분위기에 불안을 느끼고 있던 레마르크는 결국 1939년 미국 망명을 선택했다. 이렇게 여기저기 떠도는 불안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문제작을 내놓았다. 특히 1946년에 발표된 "개선문"은 작가가 문학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에 쓰여진 소설로 극찬을 받았다. 그 뒤에도 1970년 스위스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붓을 놓지 않고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4) "검은 오벨리스크"(!970) 등을 발표하였다.
레마르크의 소설들을 발표된 순서대로 읽어 보면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제 2차 세계 대전까지 유럽의 역사를 그대로 살펴 볼 수 있다. 그 긴 여정의 첫 번째 작품이면서 소설가로서 레마르크의 이름을 널리 알린 소설이 바로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이다.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허황된 애국심에 들뜬 담임 선생의 설득으로 반 친구들과 함께 자원 입대한다. 그는 바로 작가의 분신인 동시에 전쟁터에 끌려 나간 모든 젊은이들(국적에 상관 없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젊은이다운 패기와 애국심으로 나선 전쟁터였지만, 그 곳은 상상을 뛰어넘는 끔찍한 곳이었다. 포화가 빗발 치는 곳에서 파울은 비로소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몬 기성 세대의 허위와 전쟁의 무의미함에 눈을 뜬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절대적이고 숭고한 이유 따윈 없었다. 독일의 젊은이가 독일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온 것처럼 프랑스의 젊은이도 똑같은 이유에서 총칼을 들었을 뿐이다.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보낸 어른들은 애국심을 강조했지만 전쟁이란 결국 정치가들의 이해 관계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파울 보이머가 자신이 죽인 적군 병사에게 한 말처럼,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병사들은 전쟁이란 괴물에게 깊은 상처를 입은 동지이며 다 같은 피해자인 것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는 곳곳에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대립, 허위 의식에 가득찬 기성 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가 드러나 있다. 학생들은 전쟁터로 내몬 담임 교사,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고향 어른들, 이들은 모두 안전한 후방에서 말로만 조국에 대한 사랑을 말하면서, 전방에서 들려 오는 진실을 외면한다. 훈련병 시절에 만난 분대장 힘멜슈토스는 부정적인 기성 세대의 또다른 모습이다. 힘으로 신병들을 다스리려 하는 힘멜슈토스는 권위주의적인 기성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다른 한편으로 군국주의에 빠진 독일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전쟁은 젊은이들의 꿈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짓밟고 인간성마저 빼앗아갔다. 병사들은 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람(적군)을 죽이고 도둑질을 하는가 하면 죽어 가는 친구를 걱정하기보다 그의 장화를 탐낸다. 전쟁이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생각을 하지 못하는 기계라면 고통은 없을 텐데, 인간이기에 그들을 자신들의 변화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변해 버렸는데 평화가 찾아온다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주인공의 말은 자포자기한 병사들의 심정을 잘 보여 준다. 그나마 극한 상황에서 병사들을 지탱해 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전우애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전우들이 하나씩 죽고, 결국 혼자 남은 주인공도 그토록 고대하던 종전(終戰)을 앞두고 1918년 10월의 어느 날 전사하고 만다. 그 날 사령부의 보고에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주인공 파울 보이머의 죽음과 그 날 당국이 작성한 보고서(이 보고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고통과 생명의 가치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전쟁의 비정함과 허무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다. 이렇게 작가는 인간의 생명을 짓밟는 전쟁의 폐해를 보여 주면서 전쟁이 왜 일어나선 안 되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럼 지금까지도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계속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줄거리 없이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겪는 일들을 하나씩 나열하고 있다. 즉 개별 이야기의 순서를 뒤바꾸어도 전체 내용에는 큰 무리가 없다. 이런 형식 때문에 오히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사실감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인물 각자의 개성이 살아 있는 등 소설로서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쉽고 평이하게 쓰여진 것도 이 작품의 또다른 매력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소설을 비롯해 레마르크 문학의 진정한 매력은 다른 데 있다. 반전 문학이라고 하지만 그의 소설에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거창한 정치적 주장도 들어 있지 않다. 다만 그는 권력자들의 이해 관계 때문에 일어난 전쟁의 참상과 그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렸을 뿐이다. 그 밑바닥에는 바로 인간의 가치가 짓밟히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숨어 있었다. 이러한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반전(反戰) 의식이야말로 레마르크 문학이 단순한 전쟁소설의 차원을 넘어 세계적인 문학으로 인정 받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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