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의 시간 / 차주일
우리는 우연이다.
우연은 두 개가 아닌 하나로 운명이다.
직선 도로에서 처음 마주친 너와 나는
1초간 서로를 생각한다.
아무런 느낌 없이 외면한다.
곡선 도로에서 처음 마주친 너와 나는
1.3초간 서로를 생각한다.
걸음 멈추고 우리가 된다.
내가 너를 바라볼 때 얼굴 붉히는 건
0.3초라는 석탄에 데워진 체온.
우리가 발가벗고 껴안는 교접은
굽길과 비탈길이 교차하는 모습.
결합하는 음부는 0.3초이다.
너와 나는 1초이다.
우리는 1.3초이다.
우리는 0.3초 높고 긴 울음을 낳는다.
우연은 곡선에서 열린다.
휘어진 강가에 퇴적물이 쌓인다.
휜 곳에 놓은 씨앗은 0.3초이다.
휜 곳에 열린 최초의 움막 또한 0.3초이다.
우리는 최초의 0.3초를
운명 아니면 문명이라 부른다.
계간 『딩아돌하』 2011 봄호 발표
[출처] 곡선의 시간 - 차주일|작성자 웹진 시인광장
'좋은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더캄머/ 오 은 (0) | 2011.10.18 |
---|---|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천양희 (0) | 2011.10.18 |
폭포 / 강인한 (0) | 2011.10.18 |
이 가을의 무늬 / 허수경 (0) | 2011.10.18 |
계단의 변명/ 박해람 (0) | 2011.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