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을 벗어나 한 시간 남짓 달리니 내비게이션 안내가 끝나는 지점에 ‘박두진 생전 집필실’ 표지판이 걸려 있다. 표지판을 지나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 끝에 톰소여의 오두막같은 작업실과 집필실로 여겨지는 아담한 집 한 채가 무성한 녹음 사이로 어슴푸레 보인다. 그리고 기자 일행을 향해 나지막이 손짓하는 한 사람, 추상화가 박영하다.
말을 아끼는 듯 묵직한 목소리, 과묵한 표정 그리고 근사한 백발. 처음, 그리고 얼핏 봐도 그에게서 강한 듯 부드러운 예술가의 포스가 느껴진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직접 내린 커피를 내어주며 “그럼 먼저 아버지의 집필실로 가볼까요”라며 첫마디를 건넨다.
그의 아버지는 청록파 시인 박두진이다. 20여 년 전 어느 가을날 시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고향 안성에 집필실을 만들어 드리자 계획했고, 빨갛게 익은 감이 지천이던 이곳에 반해 터를 잡게 되었다. 박영하가 정착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 복작거리는 서울을 훌쩍 떠나 아버지 계신 곳 바로 옆에 작업실을 지어 내려왔다. 집필실과 작업실은 모두 뚝딱뚝딱 만들기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이다. 색을 거의 쓰지 않는 그의 그림처럼-그는 모노크롬(단색화) 회화의 맥을 이어오는 추상화가다-군더더기 하나 없는 담백한 색과 꾸밈은 주변을 둘러싼 초여름 녹음과 참 잘 어울린다. 사실 녹음뿐만 아니라 가을의 단풍과도, 소복하게 내린 눈과도 운치 있게 잘 어울릴 것 같다. 예술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했던가.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중견 화가의 미적 감각은 주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집필실로 들어서자 방금까지도 박두진 시인이 지냈던 듯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화이트 톤의 벽에 꼭 필요한 것들만 걸리고 놓인 것이 언뜻 갤러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갤러리와는 다른, 따스한 숨결이 스며 있다. 낡은 장이며 손때 묻은 책에 박두진 시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또한 아버지가 떠나고 10년, 묵묵히 쓸고 닦아온 아들의 손길이 그대로 묻어있기에 박제된 공간의 헛헛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예술가 아버지와 아들의 교감
집필실을 쓱 둘러보니 병풍, 액자 속의 독특한 서체와 그림들이 눈에 띈다. “글씨와 그림 멋지죠? 아버지가 직접 쓰고 그리신 겁니다.” 박두진 시인은 그림을 참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이 미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하셨다. 예술가끼리의 교감일까, 아버지는 유독 그림 그리는 셋째 아들을 사랑하셨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박영하가 추상화를 하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는 아들에게 아무래도 구상화보다는 할 일이 더 많지 않겠느냐고, 표현의 폭도 훨씬 넓을 것이라고 조언했던 것.
박영하의 그림은 베이지와 그레이, 블랙 등 담담한 컬러를 거친 질감으로 덧칠한 추상화다. 대부분의 추상화가 그러하듯 그의 그림은 처음 보는 이에게 자못 낯설지도 모른다. “제 그림의 큰 줄기는 자연이에요. 자연을 자연스럽게 그리는, 회화의 본질을 찾아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형상을 흙벽처럼 거친 질감으로 칠한 그의 그림은, 한눈에 눈길을 끌지는 않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따스한 분위기가 스며 있어 볼수록 정감이 간다. 그의 말처럼 자연을 그렸기 때문일까. 자연을 붓으로 그리는 아들과 자연을 글로 썼던 아버지. 집필실을 찬찬히 살펴보며, 그 표현과 전달 방식은 다르지만 닮은 부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자연을 쓰는 시인, 자연을 그리는 화가
안쪽 방에는 박두진 시인이 모은 수석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기자는 시인이 수석을 즐겨 모았고 수석에 대한 시집을 3권이나 냈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더욱 새롭고 재밌는 것은 수석의 생김생김이었다. 수석의 값어치라는 것이 산수의 온갖 풍경을 얼마나 연상시키는 형상이냐에 따라 매겨지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시인이 모은 돌은 무엇을 형상하는지 쉬이 알 수 없는 추상 조각 같았다. 그는 모은 수석 하나하나에 그 모양에서 느껴지는 것을 토대로 이름을 붙이고 일일이 사진을 찍어 스크랩을 해두었다고 한다. 자신의 시적인 개념을 수석으로 형상화하고, 그 이미지를 시로 풀어내는 철학적 사유가 한 방을 가득 채운 수석 하나하나에 담겨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시를 읽고 이 수석들을 보고 자랐어요. 제 그림의 주제가 자연이 된 것도, 추상화를 그리게 된 것도 어쩌면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죠.” 찬찬히 수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박영하의 그림이 떠오른다. 묵직하면서도 어딘가 따스하고 감성적이며 자연 그대로의 날것을 보는 듯한. 필연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시정(詩情)이 그의 그림에 묻어난다.

화가의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간 취향 깃든 작업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시원하게 높은 천장, 오후 내내 햇살이 내리쬐는 네모난 창, 그 아래 잔뜩 쌓여 있는 작품들과 물감 그리고 붓, 작가라면 누구라도 꿈꿀 만한 자유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얼핏 보면 곳곳의 물건들이 턱, 턱 아무렇게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이 박영하의 취향과 몸에 맞게 갖춰져 있다. “그릇 하나까지 다 제 취향이에요.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옆에 두고 못 보는 스타일이거든요. 성격상.” 작업실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 박영하가 직접 만들었다. 독특한 조명이나 와인잔 걸이, 조형적인 의자와 낡은 듯 빈티지한 테이블 모두 하나같이 멋스럽다. 산뜻하고 세련된 것들은 아니지만 그의 감각이 녹아 있어 더욱 편안하고 아늑하다.
그래서인지 작업실 곳곳에 놓인 그의 그림들이 공간 속에서 전혀 낯설지 않다. 그림은 화이트 컬러 벽면에 가로 세로 맞춰 걸어놓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작업실에서도 그의 작품들은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취향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공간과 그림, 박영하의 작업실은 그가 만든 가장 큰 작품이다.
곳곳에 숨겨놓은 작가의 놀이터
화가는 강의가 있는 3일 빼고는-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다-이곳에서 작업하고, 생활한다. 여기 오는 사람들마다 ‘시골에 혼자 있으면 무섭거나 외롭지 않으냐’고 물어보는데 그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기만큼 편안한 곳이 없단다. 다만 일터와 생활 공간이 분리된 사람들과 달리 눈뜨면 바로 앞에 붓과 물감이 있으니, 오히려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는 부지런한 작가다. 국내에서만 개인전을 60회 했고 현재도 끊임없이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일만 할 수는 없는 법. 그의 작업실 곳곳에는 그만을 위한 쉼터가 있다. “뒤뜰에 있는 해먹에 누워 하늘을 볼 때가 가장 좋아요. 지인들이 놀러 오면 제가 만들어놓은 아궁이와 석쇠로 요리를 해 먹고요. 또 음악을 좋아해서 분위기만 잡히면 작업실이 7080 콘서트장이 되기도 하죠.” 여유를 부리고 싶을 때는 아버지의 집필실 서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나무아래 놓아둔 의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생각도 한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놀이’의 개념과 다른 진정한 쉼을 즐기는 그는 자신이 만든 자연 놀이터에서 작업에 지친 몸과 마음을 놓고 편안하게 쉰다.
끊임없이 자연을 사유하고 탐구하는 작업을 하면서도 그가 쉴 때는 늘 자연 속에서다. 오랜 세월 함께 지낸 가족처럼 친구처럼 그와 그림과 자연은 이미 하나가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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