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초원

고비사막

박송 입니다. 2010. 7. 18. 14:15

 

 

 

고비사막 속의 숨은 비경들

 

척박한 고비사막 한가운데도 물이 흐르고 수려한 숲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도 있다. 사람이 사는 것이다.

[데일리안 배강열 칼럼니스트]신강위구르의 속살 같은 풍경 IV 허무향을 떠나오는 아침, 마치 고향을 떠나 객지로 다시 나가는 사람처럼 소형버스에 몸을 싣는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내려오는 시간, 이미 동쪽 하늘 위로 치솟은 해가 산자락에 빛을 흩뿌리고 그 빛을 받은 낙엽송이 바람결 따라 반짝인다.

이른 아침에 잠을 깨어 언덕으로 들판으로 헤맨 까닭에 기분 좋은 졸음이 오고 흔들리는 차 속에서 그런 느긋한 피로감을 즐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생각보다 낮은 기온 탓에 몸이 춥다. 다시 우리가 타고 왔던 차로 갈아타기 위해 잠시 내린 곳에서는 소름이 돋고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춥다. 구름이 해를 가린 이유 하나만으로 기온의 변덕이 심한 것이다.

◇ 허무향을 떠나오며 낙엽송 군락을 바라본다 ⓒ 들찔레
이제 오랜 시간 동안 차를 타야한다. 신강위구르의 최북단인 이곳에서 카라마이(克拉瑪依) 와 규동을 거쳐 이닝(伊寧)까지 이틀동안 이동을 하여야한다. 척박한 고비 사막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천산산맥 인근에 다다르면 다시 서쪽으로 오랫동안 달려야 한다. 얼마간의 마음준비가 필요한데 푸얼진 까지 가는 동안은 그래도 물이 있고 숲이 있어 마음 단단히 여며지지 않는다.

혹여 여행길에서 긴 시간 동안 차를 타야 하는 경우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가를 생각해 두어야한다. 파키스탄에서 하루에 17 시간까지 버스를 타보았으며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길에서 고장난 버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캄캄한 밤을 맞아본 적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오지 여행길에서 차를 타는 것은 최소한 하루에 열시간 이상이다. 그러니 의식적으로 차 속에 갇혀있는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의 경우 경로상의 지도를 파악하고 도시 인근이나 특이한 지형, 혹은 문화적 유산을 지나는 길에서는 가급적 잠을 자지 않는다. 그 사이의 시간은 잠을 자거나 아니면 습관적으로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고 또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생각들을 하고는 한다.

◇ 유목민 가족들을 만나고 ⓒ 들찔레
오늘의 목적지인 규동까지 가는 길도 열 두 세 시간이 걸리는 약 700Km의 먼 길이다. 이 길은 전형적인 고비사막의 한가운데이며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 또한 사막의 남단에는 천산산맥이 있고 북단에는 알타이산맥이 있어 만년설이나 빙하라도 보겠지만 이 길은 그야말로 지평선이 보이는 황무지다. 그러나 이 허황한 벌판의 곳곳에도 파라다이스 같이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카나스 지역의 중심도시인 푸얼진에서 약 24km 떨어진 곳에 있는 오채탄(五彩灘)도 그 중 하나다. 해발은 약 480m에 위치한 오채탄은 국가 3A급 관광지로 지정된 곳으로 ´다섯 가지 색을 띠는 물가´라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마침 이번 여행길에 탔던 국적기의 비치된 잡지 ´Morning Calm´에도 천산산맥을 중심으로 한 신강위구르의 풍경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 둥 이곳 오채탄의 풍경하나를 양면에 사진으로 올려놓았었다.

◇ 오채탄 I ⓒ 들찔레
한낮, 황량한 벌판 가운데 강물이 흐르고 강 건너 남쪽에 녹주(綠柱)라 불리는 푸른 숲이 형성된 것이 보기에도 시원하다. 또한 그 너머 멀리로는 끝없이 고비사막이 펼쳐져 있다. 이 강물의 이름은 이르띠시 강으로 카나스에서 흘러온 강물이 푸얼진강과 여기서 만나 서쪽으로 흐른다. 중국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강으로는 이 강이 유일한데 궁극적으로는 북해로 흘러들 것이다.

강을 굽어보며 벼랑 위에 내가 서있는 북쪽은 아단지모(雅丹地貌) 즉, 바위들이 풍화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지형이다. 노년기 지형이 특성이 그렇듯 침식작용으로 남은 땅이 완만한 굴곡을 이루고 있다. 낮 밤의 극단적인 기온차이와 바람에 의해 강변의 암석들은 약해져서 흙으로 날리고 때로는 물에 녹고 하였을 것이다.

◇ 오채탄 II ⓒ 들찔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와보기 전 까지 나는 ´강물에 다섯 가지의 색이 비친다´는 말을 중국인 특유의 허풍과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아직 해가 지는 석양 무렵이 아니라 강물이 어떻게 형형색색 변하는 지를 하루 종일 기다릴 수도 없다. 다만 암석들이 품고있는 고유한 색은 녹색, 황색, 백색, 흑색, 보라색 등 오색(五色)이다. 이 색깔들은 풍화과정에 있는 바위들이 품고있는 함유성분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해질 무렵이 되면 두터운 햇볕에 심도 깊은 갖가지 색깔들이 바위에서 꽃처럼 빛날 것이다. 또한 석양빛을 받은 강물은 녹주의 푸른 숲 색과 어우러져 보랏빛으로 빛날지 모를 일이다.

◇ 오채탄 III ⓒ 들찔레
천천히 강변을 따라 아단지모의 바위벽을 따라 걷는다.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가 다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오늘 아니면 이곳을 둘러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더위를 이겨보려 한다. 강을 바라보는 것 뿐 아니라 눈여겨보면 햇살을 받아 제 색깔을 토해내는 바위 고유의 성질을 읽을 수 있다. 가까이서 보면 보랏빛, 그리고 녹슨 듯한 불투명한 녹색의 바위벽이 신기하다. 가까이 다가가 그 투명한 빛에 눈맞추기를 한다. 땀이 등에 밴다.

◇ 규화목 ⓒ 들찔레
돌아 나오는 길, 강 건너의 숲의 푸른빛으로 눈을 씻고 입구에 세워둔 규화목(硅化木 petrified wood)무더기를 본다. 침식이 되면서 땅 속에 묻혀 화석화된 나무둥치들이 발견되었을 것이다. 이런 규화목은 중국인들이 아단지모라고 부르는 침식지형들에서 흔히 발견되는데 이런 지형은 주로 신강위구르지역에 산재해있다. 잠시 전망대에 올라 넓게 펼쳐진 오채탄을 감상한다. 등줄기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중국의 길은 수년 전에 비해 비교적 포장이 잘 되어있다. 특히 요즘 들어 신강위구르지역의 산업적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길 공사가 많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곳곳에서 진행되는 길 공사장들은 대개 느릿느릿한 공정을 보이기 일쑤라고 한다.

◇ 마귀성 I ⓒ 들찔레
카라마이 가는 길이 그렇다. 3시간 이상을 비포장길로 달려 잠을 이루기도 쉽지 않다.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바깥 풍경을 무심하게 바라보다 창문을 들어오는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며 달린 차는 황무지 고개 몇 개를 돌더니 전혀 다른 지형으로 바뀐 공터에 나를 내려놓는다. 마귀성(魔鬼城)이다.

마귀성은 신강위구르자치구에 두 곳이 있는데 다른 한 곳은 투르판 근처 하미라는 도시 근교에 있다. 이곳은 산강지역 북쪽 즉 천산 북쪽지형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카라마이시의 동북 쪽 약 100km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도 아단지모의 지형이다. 여기서 아단(중국발음으로는 야단 Yadang)이라는 단어의 음(音)은 위구르 말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19세기에 탐험가 스벤 헤딘(Sven Hedin)이 신강지역 중 롭노르(Lop -Nor)라는 곳을 탐험하면서 보게된 여러 형태의 작은 언덕들을 보고는 당시 위구르인 가이드에게 그런 언덕을 어떻게 부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가이드가 답하기를 ´야단´이라고 답하면서 ´갑자기 눈에 보이는 언덕(abrupt hill)´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스벤 헤딘이 책을 저술하면서 바람에 의해 깎이거나 다른 침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지형을 아단이라고 기술하면서 아단지모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 마귀성 II ⓒ 들찔레
이곳 마귀성은 약 1억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거대한 담수호였으며 따뜻하고 습도가 충분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울창한 숲이 있었고 야생동물들이나 식물들에게 이곳은 천국과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로부터 약 수 백, 수 천 만년 넘게 이곳에 바람이 불어오고 비에 깎이면서 이 지역의 중심부부터 여러 형태( 예를 들어 궁전이나 성, 대포 진지, 천막, 사람, 새 등의 동물모양)의 바위 모양들이 보이기 시작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마귀성은 이곳 입구인 회음곡(回音谷)에 사시사철 바람이 불고 모래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상태에서 마귀성 내에서 맴돌며 들리는 처량한 바람소리는 마치도 귀신의 울음소리와도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을 도는 버스 속에서 바라보는 지형들은 강한 바람에 혹은 빗물에 씻겨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에는 현란한 모양들이다. 특히 멀리 바라다 보이는 절벽은 끝없이 물결 같은 무늬를 만들어 내는데 이는 마치 쿠차의 천산신비대협곡의 풍경과도 닮았다. 그러고 보면 오채탄, 이곳 마귀성, 그리고 천산신비대협곡 모두가 야단지모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중국 무협영화의 촬영장으로 각광 받기도 하며 사진사들이 마귀 울음 같은 바람소리 들으며 일출을 찍기 위해 밤을 새는 곳이기도 하다.

◇ 마귀성 III ⓒ 들찔레
이곳도 오채탄처럼 한낮에 보아서는 감흥이 덜한 곳이다. 뙤약볕 아래서 보는 흙더미 같은 바위들은 심도가 깊지 않아 그 윤곽을 알기 어렵고 거대한 규모를 한 눈에 담아내기도 힘들다. 만약 해질 무렵에 이곳에 왔다면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해질 무렵에 들러 느꼈던 쿠차의 수바시 고성이나 투르판의 교하고성에서의 감동처럼.

마귀성과의 짧은 조우는 그렇게 끝이 나고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마귀성의 모습은 역광 속에 숨어든다. 다시 비포장 길을 타고 카라마이 쪽으로 남행한다. 얼마를 더 가야 이 비포장 길이 끝날까? 어지간히 차 타는 것에 이력이 났음에도 힘이 든다는 느낌을 받을 즈음 곧게 뻗은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마침내 한 숨 돌린다.

◇ 백리유전지대를 지나며 ⓒ 들찔레
그것도 잠시 어느 지점에서부터 유정(油井)들이 보인다 싶더니 가면 갈수록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카라마이 시를 통과하고도 얼마동안은 같은 풍경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각각의 유정에서 석유를 끌어올리는 기계들의 움직임은 마치 곤충들이 떼지어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른바 백리유전(白里油田)을 지나온 것이다.

이 척박하고 버려졌던 땅이 지하자원의 보고임이 밝혀지면서 중국 정부의 위구르인들에 대한 통제와 회유가 더 강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번 7.5 사태의 모습처럼 앞으로도 한족과 위구르인의 갈등은 더 격화될지도 모른다.

한편 백리유전을 지나오며 신은 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 이런 지하자원은 주지 않았지만 삼천리 화려강산이 있다. 그리고 이런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언젠가 석유보다 빛나는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곳에 없고 우리의 산하에 자라는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나 들꽃 한 송이가 현재 지니는 가치가 작다고 하여 폄하할 필요는 없다. 또한 이 나라에서 석유는 많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만드는 석유산업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우리나라다.

◇ 규동의 이른 아침 ⓒ 들찔레
잠에서 깬 것은 밤이 되고 나서다. 마침내 규동에 도착한 것이다. 오늘도 열 서너 시간을 차안에서 보냈고 내일 다시 이닝까지 또 열 몇 시간의 차를 타야한다. 유전이 개발되면서 그 배후도시로 성장한 규동에서 맞는 밤은 깊은 잠을 자기에 충분히 피곤한 밤이다.

아침이 밝고 호텔 방 창문 너머로 해가 떠오른다. 아침해가 저리 붉으면 오늘 낮도 꽤 더울 것이다. 간단한 아침 식사로 허기만 가시게 한다. 천산산맥 북쪽의 중심에 위치한 규동에서 이닝 가는 길은 거의 신강위구르의 서쪽 국경 가까이 까지 가는 길이다. 차를 오래 타는 날 배가 부르면 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오늘 가야 할 길이 약 700km, 길이 멀수록 마음도 가볍게 먹으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을 한다.

◇ 길을 가다 흔히 만나게 되는 양떼들 ⓒ 들찔레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고비사막의 풍경은 이제 더 이상 이국적인 모습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황량해 보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사막 가운데 드문드문 백양나무 숲이 멀리서 보면 아주 작아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꽤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거친 땅 곳곳에 그런 오아시스들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의 삶 속에 한 발 들어가 보면 우리의 삶과 그렇게 틀리지 않은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간혹 마부가 달구지를 끌고 지나가는 모습, 갈 가로 몰며 혼비백산한 양 떼를 지키는 목동들, 천 속에 얼굴을 반쯤 감추고 하미과나 포도를 파는 여인네들, 그리고 백양나무 숲 사이로 흐르는 물에 멱 감는 아이들의 모습은 신강위구르지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해가 하는 중간에 걸릴 때까지 머리 속에 저장 된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또렷이 보고 또 보며 차 속에 갇혀 서쪽으로 달렸다.

◇ 싸이리무호수 I ⓒ 들찔레
사막을 가로막고 있는 산줄기가 멀리 보일 즈음 길 왼편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싸이리무´ 호수, 오늘 여정의 일감(一鑑)인 곳이 눈에 들어온다. 해발 2072m 구릉진 산록에 모습을 드러낸 싸이리무호수는 ´축원(祝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생대에 형성된 이 호수는 외부로 드러난 석화암이 물로 흘러 들어가 투명한 푸른빛을 낸다. 이 호수는 그 옛날 실크로드 천산북로의 중요한 경유지였던 이곳을 지나던 대상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주었을 것이며 짐을 실은 밀과 낙타의 목을 축여주었을 것이다. 또한 산 속에 방목하던 양떼를 몰고 이 물가에 온 목동은 그가 흠모하는 처녀와 이곳에서 조우하였을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이 평화로운 축복 아닌가? 황량한 사막 가운데 이런 호수 가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라는 것을 이곳의 옛 사람들은 이미 알고 이름 붙인 것이리라.

◇ 싸이리무호수 II ⓒ 들찔레
호수는 신이다. 북방계통의 민족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신은 선한 사람을 가려내고 축복으로 어루만져주는 존재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축복을 얻기 위해 신에게 기도를 한다. 천산이 그렇듯 이 호수도 사람들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닝을 너머 서역으로 가는 길목의 이식쿨 호수가 그럴 것이며 몽골의 홉스골이나 시베리아의 바이칼이 그렇다.

싸이리무호수는 신강위구르자치구에서 가장 큰 고산 호수로 동서 길이는 30km, 남북 너비 27km, 둘레 86.5km, 면적은 약 454㎢, 최고 수심 86m다. 호수의 동북쪽 끝에는 두 개의 작은 못이 있는데 이것을 하이얼이라고 부른다. 동남쪽에는 호수 위에 세 개의 섬이 있는데 남쪽 호안에 가까이 있는 가장 큰 섬에는 장엄한 모습의 건물인 용와묘가 지어져 있는데 이것은 청조 순무시기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 싸이리무호수 III ⓒ 들찔레
천천히 호수 주변을 산책한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물새 두어 마리 곁을 날다 앉았다 하고 물가에 자라는 풀들이 푸른 물빛에 어울린다. 멀리 양떼들이 엎드려 졸고 있는 모습이나 야생 낙타 혹은 말들이 물을 마시는 모습이 그대로 호수에 반영된다. 양귀비에 빗대어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싸이리무호수, 나는 제법 오랫동안 호수를 떠나지 못한다.

사막과 산록이 만나는 호수에는 카나스호수에서처럼 제법 찬바람이 불고 가벼운 점퍼 깃을 여미고 모자를 쓴다. 길 건너서 다가오는 한 떼의 양떼는 물을 보자 손살같이 달려간다. 나도 목마름과 허기짐을 느낀다. 어디 위구르 식당에 앉아 물가에서 풀을 뜯는 양떼처럼 가장 오래된 국수 중의 하나인 판미엔(반면, 伴麵) 한 그릇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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