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중미. 南美史

안데스 문명

박송 입니다. 2010. 7. 12. 20:09

 

 

 

안데스 문명

 

 

안데스 문명이 잉카 문명의 상위 개념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야 문명과 아스텍 문명은

 

안데스 문명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아메리카의 문명은 크게 안데스 문명과 메소아메리카 문명으로 나눠집니다.

 

안데스 문명은 말그대로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지와 그 부근에 형성된 문명으로서,

 

모체 문명, 잉카 문명 등이 포함됩니다.

 

메소아메리카 문명은 멕시코 등지의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형성된 문명으로서,

 

올멕 문명,  마야 문명, 아스텍 문명 등이 포함됩니다

 

안데스문명 [Andean civilization]
   
남아메리카 서부를 세로로 뻗은 안데스산맥의 고원 및 인접한 해안지방에 발생했던 고대문명. 주로 오늘날의 페루 및 볼리비아 서부 고지에 발달했던 옛 문화를 가리킨다. 중앙아메리카 문명과 함께 고대 아메리카대륙의 대표적 문화들이 이 지역에서 흥망했다.

 

1. 정주생활의 시작
후빙하기의 따뜻한 기후조건아래 BC 7000년대 말부터 페루 해안의 고원지방에서 2가지 형태의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해안지방에서는 페루(훔볼트)해류의 풍부한 어로자원을 이용하는 한편, 해안의 오아시스지대에서 식물채집을 하던 사람들이 정주생활에 들어가 호리병박·콩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한편 BC 5000년대에는 고원지방에서 낙타과의 라마와 마모트 등의 가축을 기르기 시작한 증거가 있으며, 이들 동물과 함께 감자·키노아 등 고산식물 재배를 시작하였다. 이 2개의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지고 목화·옥수수 등의 재배식물과 토기제작 기술 등이 발달했으며, BC 2000년대 초에는 집약논경이 이루어졌다. 안데스목화는 BC 3000년대, 옥수수는 BC 2000년대 중반에 이미 재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옥수수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전파되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나, 최근 안데스지대에서 독자적으로 재배되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토기제작 기술은 BC 3000년 무렵의 콜롬비아나 에콰도르 어로민 사이의 토기제작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안데스지방의 정주농경 성립에는 안데스산맥 동쪽 열대저지의 문화적 영향이 크게 기여하였다. 그것은 마니오크(유카) 등의 뿌리채소와 코카 재배뿐만 아니라 재규어·뱀·케이먼 등을 신성시하는 종교관념 등에서 볼 수 있다.


 2. 신전문화의 발생
중앙 안데스에서는 집약농경과 토기제작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취락을 둘러싼 공공건조물을 짓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 뒤 해안지방에서 햇볕에 말린 벽돌로 만든 거대한 종교 건조물이 라스 알더스·엘 파라이소·라플로리다·가라가이 등지에 들어섰다. BC 1000년 전후부터 이 종교적 움직임은 차빈 데 완타르신전을 중심으로 한 범안데스적인 종교로 통합되었으며, 고양이과 동물이나 뱀 등의 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종교관념 표상이 양식화된 토기 또는 직물 무늬에 나타나 넓은 지역으로 퍼졌다. 차빈문화는 페루의 북·중앙해안 및 고지에 걸쳐 확대되었으며, 개성적인 채색토기제작을 시작하고 있었던 남해안의 파라카스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차빈문화는 강한 종교관념의 전파와 함께 범안데스적인 정치조직 편성에 따라 진행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3. 국가의 형성
BC 1000년대 후반부터 관개기술의 발달로 인해 해안경지가 비약적으로 증대하자, 그 수리권(水利權)과 경지를 둘러싼 정치적 분쟁이 시작되었다. 군사적인 영토국가가 이 시기에 출현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은 페루북해안의 모체(모티카) 국가였다. 한편 그 무렵 남해안에서 일어난 나스카문화도 제사적 성격을 강하게 지닌 몇 개의 수장제(首長制)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던 사실을 카와치·탐보비에호 등의 취락유적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무렵에 고원에서는 볼리비아 티티카카호 근처의 티아우아나코에 대신전도시(大神殿都市)가 발생하여 순례나 통상에 의해 그 문화적 영향이 페루 남부·중부에까지 미쳤던 듯하다. 700년 전후에는 페루 중부고원의 와리에 티아우아나코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새로운 문화가 일어나 남해안의 나스카지방과 교류하면서 북해안 쪽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고원지방에서는 와리문화의 영향이 카에폰데와이라스지방에 침투하였고, 다시 카하마르카지방에까지 이르렀다. 그 뒤 와리문화는 차빈문화보다 더 큰 공간적 확대를 이루었는데, 그 배후에 대규모적인 군사정복 사실이 있었으며, 그 결과 제국이 성립되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4. 안데스 제국
BC 1000년대 이래 와리문화의 쇠퇴에 따라 지방적인 정치단위와 전통문화가 부활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북해안의 치무는 페루 북단 툼베스로부터 중부 해안의 촌강유역까지를 지배하는 영토국가가 되었고, 남해안의 카네테·친차·이카 유역에도 강력한 수장제 사회가 성립했다. 한편 중부고원의 만타로강에서 아푸리막강에 걸쳐 완카·찬카 두 부족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이 무렵 찬카와 대립하다가 이를 격파한 쿠스코 분지의 잉카족이 15세기초부터 갑자기 군사정복을 개시하여, 파차크테크·투파크잉카왕 시대에 페루 전영토 및 에콰도르·볼리비아·북부칠레·북서아르헨티나에 걸친 국가를 건설했다. 16세기초에는 잉카 지배계층이 쿠스코와 키토(에콰도르)로 나뉘어 내란이 시작된 직후 에스파냐인이 침입하여 안데스문명의 오랜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메소아메리카문명 [Mesoamerican civilization]

 

고고학·문화인류학상의 지역으로, 멕시코·온두라스·엘살바도르 등 중앙 아메리카에 있던 고대문명.

 

이 지역에서는 BC 2000년경부터 옥수수 재배를 바탕으로 농촌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인구 증가와 생활기술의 향상에 따라 마야와 같은 수준높은 문화를 창출하였다. 이 지역의 문화는 발전단계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즉, BC 2000∼AD 300년에 이르는 형성기(形成期), 300∼900년 사이의 고전기(古典期), 900∼1500년까지의 후기 고전기로 나뉜다.

 

① 형성기:적극적으로 식물을 재배하고 가옥을 세우며, 토기를 제작하는 등 신전을 중심으로 안정된 농촌생활을 이룩한 시기이다. 멕시코 지방이나 테우칸 유적에서는 초기 농경, 특히 옥수수 재배와 관련된 중요한 유구(遺構)들이 발굴되었다. 또한, BC 800년경에는 멕시코만(灣) 연안을 근거지로 올멕 문명이 대두하기 시작하였고, 대규모 신전을 축조하거나 마야식(式) 숫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② 고전기:형성기에 확립된 취락·촌락이 도시 단계로 발전하여 지방마다 독특한 문화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멕시코만 연안에는 엘타힌문화가 꽃피었고 고원지대에는 ‘신(神)들의 자리’로 불리는 테오티우아칸문화 대신전(大神殿)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며, 와하카의 몬테아르반 구릉에는 웅장한 규모의 종교도시가 건설되어 마야 문명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③ 후기 고전기:도시의 규모가 확대되고 성새(城塞)가 구축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도시 간의 침입 ·정복을 위한 전쟁이 거듭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군사권력이 신권(神權)을 대신하여 지배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따라서 고전기에 번영을 누린 이 지역 문명은 퇴행을 면하지 못하였으며, 북쪽에 침입해온 톨텍족(族)에게 밀려 유카탄 반도 북부로 이동하여 새로운 도시국가를 건설하였다. 톨텍족은 톨라 고원(高原)을 거점으로 침략활동을 되풀이하였으며, 그 후 아스테크족에 의하여 강력한 군사국가가 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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