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문학사/프랑스문학사

랭보/취한 배

박송 입니다. 2010. 5. 4. 12:16

 

 
 
취한 배 




                            - 아르뛰르 랭보
 
유유한 강물을 타고 내려올 적에,
더 이상 수부들에게 이끌리는 느낌은 아니었어
홍피족들 요란스레 그들을 공격했었지.
색색의 기둥에 발가벗겨 묶어 놓고서


플랑드르 밀과 영국 솜을 져 나르는
선원들이야 내 알 바 아니었어.
배를 끄는 수부들과 함께 그 북새통이 끝났을 때
나 가고 싶은 데로 물살에 실려 내려왔으니.


격하게 출렁이는 조수에 휘말린 지난 겨울,
난, 농아보다 더 먹먹한 골을 싸잡고
헤쳐 나갔지! 떠내려간 이베리아 반도도
그처럼 의기양양한 혼돈을 겪지는 못했을 거야.


격랑은 내가 항행에 눈뜬 것을 축복해 주었어.
코르크 마개보다 더 가벼이 나는 춤추었지,
끊임없이 제물을 말아먹는다는 물결 위에서,
열흘 밤을, 뱃초롱의 흐리멍덩한 눈빛을 그리지도 않으며!


아이들이 가진 사과의 상큼한,
초록빛 물이 내 전나무 선체로 스며들어와
푸른 포도주 얼룩과 토사물로부터
나를 씻기우고, 키와 닻을 훑어 내렸지


그래 그때부터, 나는 <바다의 시>속에 멱감았어라.
별들이 젖빛으로 녹아든 곳,
초록빛 하늘을 들이마시고 있는 그곳에, 꿈에 잠긴 익사자 하나
창백하고 황홀하게 떠돌다, 때로 가라앉으니


그 곳에, 푸르름을 일시에 물들이듯, 환멸과
율동이 번쩍이는 달빛 아래 서서히 배어들어,
알코올보다 강하게, 리라보다 값없이,
사랑의 쓰라린 다갈색 어루러기 피워올리니!


환하게 부서져 내리는 하늘과 솟구치는 물기둥을,
해랑과 해류를, 내 알지: 저녁을,
무수한 비둘기 떼처럼 황홀한 새벽을 내 알지.
사람들이 보았다고 믿는것을 내가 때로 보았지!


나지막이 신비스런 공포로 얼룩진 태양이
기다랗게 엉긴 보라빛 덩이들 비추는 것을 내 보았지,
고색창연한 고대극 배우들 같았어.
파도는 파르르 떨며 아스라히 밀리고 있었고!


내 꿈꾸었지, 현란스레 눈 덮힌 푸른 밤,
서서히 바다 위로 북받쳐 오르는 애무인 양,
형형히 퍼지는 희한한 향기를,
노릇파릇 깨어나 번뜩이는 인광들을!


내 여러 달 쫓아다녔지, 히스테릭한 암소떼처럼
넘실넘실 암초들을 덮치는 큰 파도를.
성모 마리아의 빛나는 발이라도
숨가쁘게 헐떡이는 대양을 억누르진 못했을 거야!


난 맞닥뜨렸지, 아시겠어? 엄청난 플로리다와.
꽃무리 속에 인간의 피부를 가진 표범들 눈초리 엉켜 있었고
수레바퀴 테처럼 탱탱한 무지개들,
수평선 아래 바다의 청록색 양떼들과 어우러지고 있었지!


부글거리는 거대한 늪을 나는 보았어, 그 그물 속에서
<바다 괴물>은 골풀 더미에 싸여 고스란히 문드러지고!
뿜어나던 물보라 잔잔한 바다 한가운데로 무너져 내리더니,
아득히 소용돌이치며 심연으로 빨려들더라!


빙하, 은빛 태양, 진주모빛 파도, 이글거리는 하늘들이여!
거무스름한 물굽이 한가운데로 끔찍스레 좌초되고 말았어라.
악취에 찌들린 거대한 배암들,
검은 향료로 뒤틀린 나무들을 휘감고 있는 그 곳에!


어린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더랬는데,
그 푸른 물결의 만새기들을, 그 금빛 고기들을, 그 노래하는 고기들을
-꽃핀 거품들 나의 항정을 축복하였고
기막힌 바람 때때로 나에게 날개를 붙여 주었지.


간간이, 지축과 지대에 시달리다 지친 순교자들,
바다는 흐느끼듯 부드럽게 흔들어대며
노란 흡반 딸린 어둠의 꽃들을 올려보내 주었지.
나는 그대로 있었다, 무릎 꿇은 여인 마냥......


섬처럼, 나의 뱃전 위로 달라붙는 하소연을 뿌리치고
금빛 눈으로 빈정거리는 새들의 똥무더기를 가르며,
나는 떠내려갔다. 어렴풋이 날 스쳐간 혼백들.
다시금 뒷전으로 잠잠히 가라앉더라!


해서 난, 길 잃은 배 되어 머리카락에 휘감기듯,
폭풍에 말려 새도 없는 창공으로 내던져졌지.
미군 함정들이나 한자동맹의 범선들이라도
물에 취한 내 몸뚱이를 건져내진 못했을 게야.


자유로이, 보라빛 안개를 타고, 피어올라,
불그스름한 하늘을 파들어갔지, 벽을 뚫듯.
그 잘난 시인들이 과일잼인 양 즐기는 하늘은,
해 버짐병과 청천 부패병으로 잔뜩 굳어 있었거든.


휘황한 위성들에 휩싸인 채,
검은 해마들의 호위를 받으며, 미친 널빤지처럼 치달았지.
하해천공(夏海天空)은 <칠월기둥>의 몽둥이질로
여기저기 움푹 패여 이글이글 쏟아져 내리고 있었지:


나는 떨었다, 오십 리 밖에서 무성한 소용돌이 우짖고
마귀의 암내 진동하고 있었으니.
푸른 망망대해에 실 잣듯 한없이 미끄러지며
고성흉벽의 유럽을 그리워 헀었지!


나는 보았네, 항성 군도를! 섬들 위로
천공은 항해자에게 황홀하게 열려 있었다:
-그대, 이 밑도 없는 밤의 오궁 속에 숨어 잠들고 있는가,
무수한 황금 새들, 오 미래의 정령이여?-


그런데 난, 참으로, 너무 울었어! 새벽이면 애통스러워,
달은 참 끔찍하고 해는 참 지독하이:
그 쓰라린 사랑이 허허로운 열광으로 날 잔뜩 부풀려 놓았구나.
오 나의 용골, 찬연히 일어서라! 오, 나 바다에 흐르리라!


내 하나 탐하는 유럽의 물 있다면, 그건 웅덩이야,
검고 차가운, 향기로운 황혼을 향하여,
웅크린 한 아이가, 슬픔에 가득차서,
5월의 나비처럼 연약한 배를 띄워 보내는 곳.


오 파도여, 그대의 나른함에 젖어, 나 이제 더 이상
솜 나르는 짐꾼들에게서 그들의 항적을 훑어낼 수도.
펄럭이는 군단 깃발과 불꽃을 가로지를 수도,
배다리의 무시무시한 시선 아래 노 저을 수도 없구나.

 
 
 
 
 
도시 위에 가볍게 비 내리네 2나의 방랑 생활 3감각 
도시 위에 가볍게 비 내리네
 
                               아르뛰르 렝보


내 마음은 울고 있다네
도시 위에 비 내리듯 ;

이 우수는 무엇일까,
내 마음에 파고드는 이 우수는


오 부드러운 비의 소리여
땅 위에 지붕 위에

내 지겨운 마음을 위해
오 비의 노래여!

 

 

 

나의 방랑 생활 -                          아르뛰르 렝보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 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고.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기울였지,

그 멋진 구월 저녁나절에, 이슬 방울을
원기 돋구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발을 가슴 가까이 올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이유 없이 우는구나,
이 역겨워진 마음은.

뭐라고! 배반은 없다고?...
이 슬픔은 이유가 없구나.


가장 나쁜 고통이구나,
이유를 모르는 것은

사랑도 없이 증오도 없이
내 마음은 그토록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구나!

 


감각                     -아르뛰르 렝보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 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 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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