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문학사

독일문학

박송 입니다. 2010. 5. 27. 16:38
 
독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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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형식


①서사시: 방항하는 음유시인들은 민간에 유포되어 있는 전설을 바탕으로 서사시를 엮어냈고 그것을 낭송하고 다녔다. 그중 (로터왕 Konig Rother)(1160경)은 신부를 약탈하는 내용을 다룬 가장 초기의 것으로 당대의 생활에 대한 흥미로운 논평이 실려 잇다. (잘만과 모롤프 Salman und Morolf)(1160경)-(오렌델 Orendel)(1180/1200)-(성(聖) 오스발트 St. Oswald)(1170경) 등도 역시 그리스도교도와 이교도 간의 갈등을 묘사하는 등 십자군 원정시대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서사시를 모범으로 한 (알렉산더의 노래 Alexanderlied)(1130경)와 (롤란트의 노래 Rolandslied)(1170경)가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이러한 음유시인들의 서사시는 (니벨룽겐의 노래 Nibelungenlied)(1200경)에서 최고의 완성단계에 이른다. 이것은 현존하는 서사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민족서사시로, 작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오스트리아의 한 음유시인이 썼으리라 추측되며 비범한 시적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독특한 4행 1절 형식의 약 5,000행에 달하는 방대한 이 서사시는 이후 독일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 하나의 영웅서사시 (쿠드룬 Kudrun)(1210경)은 약탈자에 대항하여 정절을 지키는 쿠드룬을 노래한 것이다.



한편 프랑스 서사시를 모델로 한 궁정서사시도 발달했다. 아일하르트 폰 오베르크가 트리스탄 전설을 소재로 하여 쓴 (트리스탄트와 이잘데 Tristrant und Isalde)(1170경)가 주목할 만한 최초의 작품이다. (에나이트 Eneid)(1175-86경)를 쓴 네덜란드인 하인리히 폰 펠데케가 흔히 궁정서사시의 아버리로 불리지만 가장 유명한 궁정시인은 하르트만 폰 아우에, 볼프람 폰 에셴바흐,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로, 그들의 작품은 대개 1190-1210년경에 나왔으며 겸손,충성 등 기사의 덕목들이 이야기된다. 하르트만이 쓴 (에레크 Erec)(1180/85)와 (이바인 Iwein)(1200경)은 프랑스의 크레티엥의 작품을 모방하여 쓴 아서왕 원탁 기사들의 이야기이며, (그레고리우스 Gregorius)(1187/89)-(불쌍한 하인리히 Der arme Heinrich)(1195년경)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었다. 볼프람의 (파르치팔 Parzival)(1200/10)은 궁정서사시의 최대작으로 독일 교양소설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고트프리트가 남긴 미완성작 (트리스탄과 이졸트 Tristan und Isolt)(1210경)는 후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의 자극제가 되었다.



② 궁정서정시 궁정문학시대의 또 하나의 중요한 문학형식은 사랑을 주제로 한 미네장인데, 이 대표작들은 (미네장의 봄 Minnesangs-frhling)이라는 제목으로 스위스인 마네세가 정리한 '마네세 필사본'(14세기)과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소장된 '하이델베르크가 가요사본집'(14세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궁정서정시의 선구자는 디트마르 폰 아이스트-프리드리히 폰 하우젠 등이며 완성자로는 라인마르 폰 하게나우를 든다. 궁정서정시는 라인마르의 제자인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으며, 잠언 형식의 단창구(Spru"che)에 나타난 세속적 지혜에 대한 그의 관심은 발터의 제자인 라인하르트 폰 로이엔탈을 비롯하여 프라이당크의 (분별 Bescheidenheit)(1230경)과 후고 폰 트림베르크의 (경주자 Renner)(1300경)까지 이어지며 15, 16세기 교훈적 시민문학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다.  



③ 산문과 희곡 중고 독일어 시대의 산문문학은 운문으로 쓴 것보다 덜 중요하지만 13세기 수도사 베르톨트 폰 레겐스부르크의 설교집은 깊은 감동을 주는 훌륭한 독일어로 씌어져 있고, 메히틸트 폰 마그데부르크의 저작은 이미 14세기 독일 신비주의를 예시하고 있다. 자신의 영혼 속에 침잠함으로써 신을 파악하고자 한 신비주의는 정신-종교-사상-개념 등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어휘를 개척함으로써 독일 산문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는데, 그 대표자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로 알려진 요하네스 에크하르트 폰 호흐하임, 하인리히 조이제, 요하네스 타울러이다. 그밖에 요하네스 폰 테플이 쓴 (보헤미아의 농부 Ackemann aus Bo"hmen)(1400경)는 신이 이끄는 세상에서 죽음이 정당한가를 사신(死神)과 농부가 논하는 형식으로 독일인본주의 전통의 시작을 알려주었다.연극에서도 부활절극이나 성탄절극, 또는 그리스도 수난극 등 종교극이 우세하여 거대한 민중축제로 확대되었으나, 15세기에는 세속적인 사육제극이 문학적 형태로 나타나 대중에게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을 익살스럽게 희화한 이 사육제극의 초기 개척자로는 마이스터징거 한스 로젠플뤼트와 한스폴츠를 들 수 있으며, 한스 작스에 와서는 높은 예술적 차원을 지니게 되었다.
중고 독일어 시대에서 바로크까지
1440년경 구텐베르크가 새로운 인쇄술을 발명함으로써 유럽 문학에 혁신적인 계기가 마련되었고, 풍자-비유-민요-연애시-자연시-발라드같은 기존의 문학형태가 계속되며 풍부한 자취를 남겼다. 한스 폴츠가 보다 자유로운 규칙을 도입하여 마이스터징거 예술의 부흥을 꾀했고 클라라 헤츨러린은 여러 시와 노래를 엮어 (노래책Liederbuch)(1471)에 집대성했다. 또한 희극적 일화(슈방크)들이 필리프 프랑크푸르터의 (칼렌베르크의 성직자 Der Pfaffe von Kalenberg)(1473)처럼 흔히 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엮어져 널리 읽혔으며, 이 가운데 14세기의 익살스런 농부 틸 오일렌슈피겔과 관련된 일화들은 범유럽적으로 유명해졌다(오일렌슈피겔에 관한 만담본 Das Volksbuch von Eulenspiegel)(1515년)



(1)궁정르네상스와 인문주의 운동


① 궁정르네상스
프랑스 부르고뉴같은 궁정에서는 중세 기사문학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독일에서도 엘레오노레 공작부인의 [폰투스와 지도니아 Pontus und Sidonia](1456경)처럼 프랑스 기사 로망스를 산문으로 각색한 작품이 나왔으며, 특히 볼프람 폰 에센바흐를 비롯한 시인들의 중세시들이 원형대로 혹은 산문으로 개작되어 출판되었다. ② 인문주의 이러한 궁정문학의 부흥과는 반대로 1450년 이후의 독일문학에는 인문주의 운동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다. 1450-80년의 인문주의자들은 이탈리아에서 자극을 받았는데, 알브레히트 폰 아이프, 하인리히 슈타인회벨, 티콜라스 폰 빌레, 하인리히 슐뤼셀펠더, 안토니우스 폰 포르 등은 주로 라틴-그리스-인도의 고전과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비롯한 이탈리아 작품들을 번역하여 독일 산문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콘라두스 첼티스, 에오바누스 헤수스 같은 1480년 이후 독일 인문주의자들은 방향을 바꿔 거의 전적으로 라틴어로 저술했다. 그 가운데 야코프 빔펠링이 쓴 (게르마니아 Germania)(1501)에는 강한 애국적-정치적 특성이 드러난다. 극분야에서는 인문주의자의 영향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대중들은 여전히 신비극이나 사육제극을 좋아했지만, 인문주의자들은 테렌티우스 등 로마 희극 및 근대 작가가 쓴 라틴어 극을 도입해 도덕적 교훈과 수사법을 가르치고자 했다. 중세극과는 아주 다른 유형의 이 라틴어 희곡들이 16세기 독일 연극 발전에 기여했으며, 나중에는 종교개혁에 활용되었다. 하지만 재능있는 작가들이 라틴어로 작품을 썼으므로 1490-1520년 독일어 문학은 아주 드물었고, 다만 풍자적-교훈적 작품들이 위세를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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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집 (어린이와 가정의 동화 Kinder und Hausmadrchen)(1812-22)가 중요한 성과이다. 또한 이들의 독일 언어학 및 중세문ㄴ학의 연구를 통해 독일 언어학이 학문적 체계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특기할 사항이다.
1809년 이후에는 낭만주의 운동이 북독일 (베를린과 드레스덴)과 남독일로 분산되어 일어난다. 북독일의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당대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서 (암피트리온 Amphitryon)(1807)-(펜테질레아 Penthesilea)(1808)-(훔부르크 왕자 Prinz von Homburg)(1821) 등의 희곡과 수많은 노벨라를 내놓았다. E.T.A. 호프만도 북독일이 낳은 천재적인 소설가로서 호나상적이고 괴기스러운 이야기 속에서 삶의 어둡고 섬뜩한 측면을 묘사했다. 후기 낭만주의의 최대 서정시인 가운데 하나는 슐레지엔 출신의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이며 (어느 무위도식자의 생활에서 Aus dem Leben eines Taugenichts)(1826)처럼 흥미있는 노벨라를 남기기도 했다. 낭만주의의 최종단계는 남독일의 슈바벤파이며, 루트비히 울란트와 에두아르트 뫼리케 같은 재능있는 작가도 있었으나 이 무렵 낭만주의 본래의 독창적인 활력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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