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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 / 권순자

박송 입니다. 2011. 11. 13. 17:31

 

 

가을 단풍 / 권순자

 

 

 

몸을 뚫고 들어오는 저 붉은 바람

전신에 신열(身熱)이 오르고

여름내 시퍼렇게 피어오르던,

희망이 쑥쑥 자라던 몸속, 이제

못다 이룬 꿈들 뜨겁게 달아오르며 저들끼리 부대낀다

 

높은 휘파람 소리가 휘돌면서

뼈마디 두둑두둑 부딪치는 소리로

긴 밤 내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을 나무들

 

목이 부어오르고 쿨럭이는 가슴,

속에서 바람이 저들끼리 부서지면서

싸늘한 불꽃이 일고 있는 것이다

 

탱천한 분노에 얼룩진 눈물처럼 타오르는 불

신열이 사방팔방으로 전염되고 기침하는 나무들

밤새 부어오른 목 끝내 잠기며

탱탱해진 언어들 몸속에서 요동친다

 

간절한 눈빛 얹어, 햇살 전선을 타고 뿌려대는 절규,

잎 흔들며 나무들 붉은 구화를 하며

오랫동안 고이 품어온 소망 하나씩을

가을바람에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시집 <검은 늪> 2010)

 

(마곡사 단풍-구글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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