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 / 권순자
몸을 뚫고 들어오는 저 붉은 바람
전신에 신열(身熱)이 오르고
여름내 시퍼렇게 피어오르던,
희망이 쑥쑥 자라던 몸속, 이제
못다 이룬 꿈들 뜨겁게 달아오르며 저들끼리 부대낀다
높은 휘파람 소리가 휘돌면서
뼈마디 두둑두둑 부딪치는 소리로
긴 밤 내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을 나무들
목이 부어오르고 쿨럭이는 가슴,
속에서 바람이 저들끼리 부서지면서
싸늘한 불꽃이 일고 있는 것이다
탱천한 분노에 얼룩진 눈물처럼 타오르는 불
신열이 사방팔방으로 전염되고 기침하는 나무들
밤새 부어오른 목 끝내 잠기며
탱탱해진 언어들 몸속에서 요동친다
간절한 눈빛 얹어, 햇살 전선을 타고 뿌려대는 절규,
잎 흔들며 나무들 붉은 구화를 하며
오랫동안 고이 품어온 소망 하나씩을
가을바람에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시집 <검은 늪> 2010)
(마곡사 단풍-구글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