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동 영선루(紫霞洞 迎仙樓) 제 16 장
雪鄕 朴 聖棟
<기원후 1,560 년 9 월 >,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개성(開城)의
<자하동 영선루(紫霞洞 迎仙樓)>로 <산적 졸개(山賊 卒介)> 세 명을 거느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하동 영선루(紫霞洞 迎仙樓)>에는,
이제 막
<선전관 이 사종(宣傳官 李 士宗)>과의 <육년 동거( 6 年 同居)>를 별리(別離)한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가
머물고 있다는 기별(奇別 - 다른 곳에 있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거나 받음 )>을 받고
달려가는 길이었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송도 개성(松都 開城)>이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에 의해서 더욱 알려져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걸어면서도,
속으로 생각하기를
- 서 경덕(徐 敬德)이 세상(世上)을 떠난지 <십오 년( 15 年)>이나 되는데
<황 진이(黃 眞伊)>가,
살아 있어준 것만으로도 나는 <하늘(天)>에 감사(感謝)한다.
세상(世上)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황 진이(黃 眞伊)>를 <짝사랑>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를거다.
<황 진이(黃 眞伊)>의 삶도 나 못지 않게 혹독(酷毒)했다는 것을
그 누군들 알겠는가.
이제,
<황 진이(黃 眞伊)>도 <사십( 40 歲)>은 되었을텐데 ........ -
얼마쯤, 걸었을까.
<선죽교(善竹橋 - 경기도 개성(開城)에 있는 유명한 돌다리다. 고려(高麗) 말의 충문(忠門)
정 몽주(鄭 夢周)가 이 방원(李 芳遠)이 보낸 조 영규(趙 英珪)에게
철퇴(鐵槌)를 맞은 곳으로 유명하다. )>
건너에 <자하동 영선루(紫霞洞 迎仙樓)>의 <누기(樓旗)>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이,
<산적 졸개(山賊 卒介)> 세 명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 연산 대왕(燕山 大王)이 붕어(崩御)하신지도 어언 <육십 육년( 66 年)>이
지났는데도
<속홍 주루(續紅 酒樓 - 기생집 )>의 <깃발(旗)>은 대단히 펄럭이는군.
<깃발(旗)>은,
전투력(戰鬪力)을 상징(象徵)하는데
<주루(酒樓)>도 전투력(戰鬪力)의 대상(對象)인가 ........ ? -
<산적 졸개(山賊 卒介)>들이,
<이구 동성(異口同聲 - 입은 다르나 목소리는 같다는 뜻으로, 말이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 )>으로
대답했다.
- 봉황 기(鳳凰 旗)가 나부끼는걸 보니 <임금>의 행차(行次)가 있은 듯
합니다.
포도관(捕盜官)들이,
들락거릴지도 모르니 각별히 주의(注意 - 마음에 새겨 두고 조심함)를
해야 할 것입니다. -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이,
웃으면서 말했다.
- 어차피,
여색(女色)을 즐기는 것은 <포도관(捕盜官)>이나 우리가
다를게 없다.
다만,
경계(警戒)를 게을리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이,
<자하동 영선루(紫霞洞 迎仙樓)>의 <돌 계단>에 이르렀을 때 <누문(樓門)>이
열리면서
<삼회장(三回裝)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두 명의 <속홍 여인(續紅 女人)>들이
마중을 나온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이,
놀라는 시늉을 하면서 두 사람의 <속홍(續紅)>에게 말했다.
- 어찌,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았더란 말이냐 ........ ? -
<삼회장(三回裝)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두 사람의 <속홍(續紅)> 가운데에
<왼 편>에서 마중하는 여인(女人)이 입을 열었다.
- 이미,
<군부인(君夫人 - 대군(大君)이나 군(君)의 부인을 지칭하는 말)>께서는
대군(大君)께서 오시는 것을 알고 계셨사와요.
어서 오르시지요. -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허허야고 웃으면서 <삼층 누각(三層 樓閣)>의 계단(階段)으로 올라섰다.
삼회장 저고리 당코 저고리 반회장 저고리
<삼층 누각(三層 樓閣)>에는,
정교(精巧)하게 깍아 다음은 <기석 괴송(奇石 怪松 - 기이한 돌과 괴상한 소나무 )>들이
운치(韻致 - 고상하고 우아한 멋 )를 더하는 가운데
여러 폭의 <산수도(山水圖)>가 벽면(壁面)에 걸려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박연 폭포(朴淵 瀑布)>의 산수도(山水圖)에
휘어질 듯이 쓰여 있는 시(詩)였다.
一派長天 噴壑壟(일파장천 분학롱)
한 줄의 긴 물줄기 하늘에서 골짜구니로 떨어져
龍湫百仞 水叢叢(용추백인 수총총)
용추못 백 길되는 물줄기로 용솟음 치네
飛泉倒瀉 疑銀漢(비천도사 의은한)
날아 오른 샘물은 거꾸로 쏟아지는 은하수인 듯
怒瀑橫垂 宛白虹(노폭횡수 완백홍)
성난 물결은 옆으로 흰 무지개처럼 드리웠네
雹亂霆馳 彌洞府(박란정치 미동부)
우박같이 날리며 치닫는 우뢰소리는 골찌구니 가득 차고
珠聳玉碎 徹晴空(주용옥쇄 철청공)
옥돌같이 부셔져 구슬처럼 치솟아 하늘까지 이르네
遊人莫道 廬山勝(유인막도 여산승)
나그네 야, 여산의 폭포만 뛰어나다 말하지 마라
須識天磨 冠海東(수식천마 관해동)
천마산의 폭포가 해동의 으뜸임을 알아야 하는 것을
그리고,
그 <박연 폭포(朴淵 瀑布)>의 산수도(山水圖) 아래에 놓여 있는 <태사의(大師椅)>에는
곱게 차려입은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가
앉자 있었다.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가,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에게 고운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 먼 길에,
누추(陋醜)한 곳까지 오시느라 노고(勞苦)가 많으셨습니다.
저와,
무엇을 겨루려고 오셨는지요, -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반가운 듯이 웃으면서
꿇어 엎드리더니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에게 큰 절을 올리면서 말한다.
- 삼가,
소인(小人)이 대공(大公)께
문안(問安 - 웃어른께 안부를 여쭈는 인사 )드리옵니다.
오랜 세월(歲月),
대공(大公)께 향한 <일편 단심(一片 丹心 - 변치 않는 마음 )>은
<짝사랑>으로 거듭 났사옵니다.
바라옵건대,
소인(小人)의 청탁(請託)을 저버리지 마옵소서. -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가,
교소(巧笑 - 귀염성이 있는 웃음 )를 머금으며 말한다.
- 삼가 듣건대,
그대는
나라(國)의 <큰 도적(大 盜賊)>이라 들었소.
그런데,
어찌 나를 겁박(劫迫 - 으르고 협박함 )치 아니하고
순종(順從 - 순순히 따름 )하려 드십니까 ........ ? -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이,
꿇어 엎드린 채로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를 그윽히 올려다 보며 다시 말한다.
- 내, 비록 도적(盜賊)이긴 하나
사모(思慕)하는 여인(女人)에게 만큼은
절대(絶對)로 <도둑질>을 하지 않는 소인(小人)이외다.
<도둑놈>의,
말이라 믿기가 힘들겠지만 그 <믿음>을 보여 주겠소이다.
소인(小人)에게,
신뢰(信賴 - 굳게 믿고 의지함 )를 보여 주시옵소서. -
그제서야,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는 <태사의(大師椅)>에서 일어나며
꿇어 엎드려
자신을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는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의
두 손을, 덥석 잡아 일으키면서 말했다.
- 일어나시어요.
나 역시,
나를 사모(思慕)하는 낭군(郎君)을 기다린지 오래되었소.
그러나,
모두가 나의 육체(肉體)만 탐했을 뿐
내 혼백(魂魄)의 아픔을 어루만져 준 이는 <한 분>도 없었소.
이제,
당신이 나의 외로운 혼백(魂魄)을 달랠 수 있게 도와 준다면
내 기꺼이,
그대의 불타는 <사랑(熱愛)>을 받아들이겠어요.
아무튼,
그 사랑(愛)이 오늘 뿐 아니라 내일도 변치 않으시길 ........ _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꿈같은 시간(時間)들을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와 함께 보냈다.
개성(開城)의,
<국제 무역항(國際 貿易港)>이었던 <벽란도(碧瀾渡)>를 둘러 보고
<박연 폭포(朴淵 瀑布)>의
시원한 물줄기와 함께 아름다운 시간(時間)을 즐겼다.
꿈같은,
세월(歲月)속에 시간(時間)은 흐르고.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가,
스승으로 모셨다는 <화담 서 경덕(花潭 徐 敬德)>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박연 폭포(朴淵 瀑布)> 아래에서,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를 진하게 품에 끌어 안았다.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의,
가냘픈 숨소리와 은근히 풍기는 <장화 향(薔華 香 - 장미의 꽃닢 향 )>의 향내는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의
코와
귀를 간지럽히고.
그리고,
결별(訣別 - 기약 없는 이별을 함 )의 시간(時間).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자신이 가졌던
<은괴(銀塊)>의 절반을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에게 나누어 주고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의 옥(玉)같은 볼에
진하게 <입맞춤>을 한뒤,
<경기도(京畿道)>의 <갈석산(葛石山)>으로 졸개(卒介)들과 함께 떠나갔다.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는,
기약(期約 - 때를 정하여 약속함 )없는 헤어짐에 <눈가>에 <이슬>을 맺히고.
떠나 보내는,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을 향해 소리 높혀 외쳤다.
- 부디, 건강(健康)하시길 ........
도적(盜賊)을 그만 둔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이제는,
<도적질>을 그만 둔다해도 살아날 길은 없을 거예요.
부디 혼백(魂魄)만이라도
평안(平安)을 얻으시기를 ........ -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의
애타는 <목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정처(定處 - 정한 곳 )없이 먼 길을 떠났다.
임 꺽정과 황 진이(黃 眞伊)의 재회 제 18 장
雪鄕 朴 聖棟
<기원후 1,560 년 11 월 >,
<좌변 포도대장 남 치근(左邊 捕盜大將 南 致勤)>은,
<황해도(黃海道)>의
<금천(金川)>에 있는 <금교 마차역(金郊 馬車驛 - 개성 부근에 있었던 마차역 )>을
봉쇄(封鎖 - 굳게 막아 버리거나 잠금 )하라는
명령(命令)을 내렸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이,
<경기도 갈석산(京畿道 葛石山)>으로부터 도주(逃走)하는 것을 차단(遮斷)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연암협(燕巖陜)>의
<금교 마차역(金郊 馬車驛)>이 봉쇄(封鎖)되자 졸개(卒介)들을
<보부상(褓負商 -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통틀어 이르는 말 )>으로 변장(變裝)시켜서
첫 번째,
소두목(小頭目)>인 <서 림(徐 林)>의 인솔(引率)하에 <한양(漢陽)>으로 잠입(潛入)토록
했다.
<금교 마차역(金郊 馬車驛)>의,
근방(近方)에 있는 <연암협(燕巖陜)>은 <열하 일기(熱河 日記)>를 저술(著述)한
<연암 박 지원(燕巖 朴 趾源)>의 <생활터>였다.
그러나,
<연암 박 지원(燕巖 朴 趾源)>이 <연암협(燕巖陜)>에서 <열하 일기(熱河 日記)>를
글로 쓸 시절(時節)에는
<한일 전쟁(韓日 戰爭 - 임진 왜란)>이 끝난 뒤의 한 참이어서 <펑안 서도(平安 西道)>의
<의주(義州)>를
<청(淸)나라>에 빼앗긴지 오래된 때였다.
때문에,
애석(哀惜)하게도 <연암 박 지원(燕巖 朴 趾源)>의 <열하 일기(熱河 日記)>에서는
<펑안 서도(平安 西道)>의
<의주(義州)>가 <우리 땅>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이 세상(世上)을 휘젓고 있던
< 기원후 1,560 년(年) > 대가
문정 왕후(文定 王后)>와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의 <막바지 시절(時節)>이었고
중국(中國)은,
<명(明)나라>의 <세종황 가정제 주 후총(世宗皇 嘉靖帝 朱 厚熜 - 12 대(代) )>이
지배(支配)하던 <막바지 시절>이었으며
훗 날의,
<후금(後金 - 청(淸)나라의 전신 ) 나라 > 태조(太祖)가 될
<천명제 노이합적 애신각라( 天命帝 努爾合赤 愛新覺羅 - 누르하치 아이신교로 )>는
이제,
막 태어난지 < 2 살 >이 되던 때였다.
세월(歲月)의,
<천연 무상(天然 無常 -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거나 변화시킬 수 없는 상태로
일정하지 않고 늘 변하여,
태어나고 떠나며 흥하고 망하는 것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 )>이랄까.
중국(中國),
<명(明)나라>의 <세종황 가정제 주 후총(世宗皇 嘉靖帝 朱 厚熜 - 12 대(代) )>은
<이조(李朝)>의,
<연산 대왕(燕山 大王 - 10 대(代) )>보다도 더 <포악 무도(暴惡無道)>했지만
<명(明)나라>의
<세종황 가정제(世宗皇 嘉靖帝)>는 <연산 대왕(燕山 大王)>과는 다르게
신하(臣下)를
<제압(制壓 - 위력이나 위엄으로 세력이나 기세 따위를 억눌러서 통제함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연산 대왕(燕山 大王)>과는
천양(天壤 - 아득히 높은 하늘과 멀리 널브러진 땅 )이었다.
<계급 주의(階級 主義)>에,
있어서 치명적(致命的)인 약점(弱點)은
아랫사람의 반란(叛亂)을 제압(制壓)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게 문제(問題)를 안고 있는데
결국,
<주씨(朱氏)>의 <명(明)나라>는 <이 자성(李 自成)>의 반란(叛亂)>으로
멸망(滅亡)한다.
하지만,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왕조 전복(王朝 顚覆 - 둘러 엎음 )>의
꿈도 꾸지를 못했다.
그 만큼,
<이조(李朝)>는 반란(叛亂)을 두려워하여
<보안 문제(保安 問題 -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 )>
만큼은
아주 철저(徹底 - 속속들이 꿰뚫어 미치어 빈틈이나 부족함이 없이 밑바닥까지 투철함 )하게 했다.
때문에,
군대(軍隊)는 <황성 옛터(皇城 松都 - 고려(高麗)의 수도 송경 개성(松京 開城) )>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하였고.
그것이,
<산적 두목(山賊 頭目)>을 쫓는데도 < 20 명(名)>, < 30 명(名)>의
병력(兵力)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조(李朝)>의 군대(軍隊)가 결코 빈약(貧弱)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일 전쟁(韓日 戰爭 - 임진 왜란 )>에서
보게 된다.
<이조(李朝)>의,
군대(軍隊)는 한사코 단결(團結 - 많은 사람이 마음과 힘을 한데 뭉침 )해서는 안된다는.
군대(軍隊)가,
조정(朝廷)을 위협(威脅)하는 단체(團體)로 존재(存在)해서는 안된다는.
그것이,
만고(萬古)의 충신(忠臣) <이 순신 장군(李 舜臣 將軍)>을 <바다(海)>에서
세상(世上)을 떠나게 만드는.
어쨌거나,
<좌변 포도대장 남 치근(左邊 捕盜大將 南 致勤)>이 이끌었던
<경기도 갈석산(京畿道 葛石山)>의
<산적 토벌대(山賊 討伐隊 - 산적을 무력으로 무찔러서 쳐 없애는 군대 )>부터는
일시적(一時的)이긴 해도
그 경우(境遇 - 놓이게 된 형편이나 사정 )가 달라진다.
<한성 부 판윤 남 치근(漢城 府 判尹 南 致勤)>은,
포도청(捕盜廳)의
병력(兵力) < 500 명(名) >을
<동원(動員 - 전쟁 따위의 비상 사태에 대처할 수 있도록 군의 편제를 평상시 편제에서
전시(戰時) 편제로 옮기는 일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결코 상부(上部)의 명령(命令)이라기 보다는
<문정 왕후(文定 王后)>의 <통치 이념(統治 理念 - 나라(國)를 다스리는데 있어서의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 )>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어떤 도적(盜賊)도 나라(國)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은
용납(容納 -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의 말이나 행동을 받아들임 )할 수 없다는.
때문에,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이 지금까지 도전(挑戰)해 갔던
<단계 화개산(檀溪 華開山)>,
<포도관 이 억근(捕盜官 李 億根)>의 전투(戰鬪).
<구월산 청석골(九月山 靑石谷)>,
<선무사 정 수익(宣撫使 鄭 受益)>의 전투(戰鬪).
<의주 북진 광녕(義州 北鎭 廣寧)>,
<부 여직 홍 추성(副 勵直 洪 啾聲)>의 전투(戰鬪)와는 다르게
<경기도 갈석산(京畿道 葛石山)>의 전투(戰鬪)는
그 규모(規模)에서도
< 10 배(倍) >에서 < 30 배(倍)>가 넘을 만큼의
전투 양상(戰鬪 樣相)으로 확대(擴大)되기 시작한 것이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경기도 갈석산(京畿道 葛石山)>의 전투(戰鬪)에서 패배(敗北 - 겨루어서 짐 )하고
자신이 아끼던
여인(女人)들을 <셋 씩>이나 <포도대장 남 치근(捕盜大將 南 致勤)>에게 넘기게 되자
<황성 옛터>의
<자하동 영선루(紫霞洞 迎仙樓)>에 머물고 있는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가
몹시도 그리웠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한 달음에 <자하동 영선루(紫霞洞 迎仙樓)>로 달려가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를
만났다.
기묘(奇妙)하게도,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는 <신계 포도관 이 보흠(新溪 捕盜官 李 甫欽)>과
<용봉 단차(龍鳳 團茶 - 유자(柚子)와 유자 속에 <백련잎 덖음차>를 넣어서 햇빛에 말려
다린 차(茶)로, 감기 예방과 소변 불량에 좋은 차다 )>를
마시면서 대담(對談 - 마주 대하고 말함 )을 즐기고 있었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가
어디로 가지 아니하고 <자하동 영선루(紫霞洞 迎仙樓)>에 머물러 있어 준 것만으로도
하늘(天)에 감사했다.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가,
누구와 만나고
누구와 대화(對話)를 나누고 있는 가는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그들이,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의 곁을 떠나고 나면 얼마든지 그 다음 차레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계 포도관 이 보흠(新溪 捕盜官 李 甫欽)>이 언제 자리를 떠나 주는가 하는 것이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포도관 이 보흠(捕盜官 李 甫欽)>이 떠날 때까지를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포도관 이 보흠(捕盜官 李 甫欽)>을 함부로 <두들겨 패대다>간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의
금쪽같은
사랑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초조한 마음을
떨치기라도 하듯 <삼회장(三回裝) 저고리>를 입고 있는 <속홍(續紅)>을 불러서
기별(奇別)을 넣어 놓은 뒤,
<벽란도(碧瀾渡)>로 <바람>을 쏘이러 나갔다.
<벽란도(碧瀾渡)>의,
<벽란정(碧瀾亭)>에서 <개경 팔경(開京 八景)>의 하나인 <벽란 낙조(碧瀾 落照)>를
보는 것도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에게는
가이 장관(壯觀)이었다.
서산(西山)으로,
기우는 해(夕陽)가 <예성강(禮成江)>의 물빛을 붉게 물들일 때 퍼져 오르는 아픔을
이기기라도 하듯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나루터>에
매여있는 <한 척>의 <거룻배>를 내려다 보면서 <예성강 곡(禮成江 曲)>을 떠올린다.
중국(中國)의,
대상(大商)이었던 <하 두강(賀 頭綱)>이 <벽란정(碧瀾亭)>에서 미인(美人)을 보고는
그 미인(美人)의 남편(男便)과
<내기 바둑>을 해서 이긴 바람에 그 미인(美人)을 얻게 되어
<벽란도(碧瀾渡)>를 떠났지만,
열(熱)을 받은
<용왕 신(龍王 神)>이 <중국 배(中國 船)>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덕분에
이에 놀란
<하 두강(賀 頭綱)>은 <벽란정(碧瀾亭)>으로 미인을 다시 돌려 보내게 되고
<내기 바둑>에서 진,
<고려 남편(高麗 男便)>은 다행스럽게도 미인(美人)>을 돌려받을 수가 있었다는.
그 때,
누군가가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의 어깨를 살포시 만지고 있었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이,
돌아다 보니
꿈에서도 그리던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이었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마치
<아이>가 <엄마>의 품속을 파고 들듯이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를 끌어 안았다.
그리고,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에게 속삭이기를
- 여보, 그리웠소.
당신 없는 세상(世上)은 정말이지 살맛 없는 세상이오.
당신이,
이렇게 나를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도둑놈>의 일생(一生)으로는
큰 광영(光榮)이오.
부디,
오래 오래 사시기를 ........ -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가,
교소(巧笑)를 지으면서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에게 입을 열었다.
- 나는,
언제나 당신 옆에 있어요.
함께 늙어가는 세월(歲月)에 누군가를 보다듬는다는 것은
마치,
<벌꿀>이 그리워 찾아드는 <나비>처럼
그 그윽함은
산사(山寺)의 풍경에서도 달래기가 어려운 ........ -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이,
<포도관 이 보흠(捕盜官 李 甫欽)>의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막 입을 열려 했을 때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의
그윽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 <포도관 이 보흠(捕盜官 李 甫欽)>의 말로는
당신에 대한 압박(壓迫)이 점점 더 심해진다 하더군요.
이제는,
더 이상 도망(逃亡 - 피하거나 쫓기어 달아남 )칠 곳도 없다 하면서.
자수(自首)를 해도,
당신만은 용서(容恕)가 안된다면서 ........
후,
어떡해요. 당신이 불쌍해요.
꼭이나,
<강도(强盜 - 폭행이나 협박의 수단으로 남의 재물을 빼앗는 도둑 ) 짓 >을
해야만 했었는지 ........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도,
<한숨 - 근심이나 설움이 있을 때, 긴장하였다가 안도할 때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 >을 내쉬면서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에게
들리지 않을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미,
지난 일이오.
낸들 하고 싶어서 했겠소.
워낙, <때꺼리>가 없어서 처음에는 <도둑질>로 시작했었는데
그만 세월(歲月)이 흐르다 보니
덩치가 커져서 ........
이제 와서,
후회(後悔 -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 )한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소.
그저,
살아 남는 길을 찾아서 헤메는 길 밖에는 ........
그나마,
당신이 있었기에 오늘 날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을
하늘(天)에 감사할 뿐이라오.
내일(來日) 일은 내일 <걱정 -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움 >하기로 하고
오늘은,
당신의 몸 깊숙히에 내 사랑을 담구어서
삶의 풍요(豐饒)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여한(餘恨 - 풀지 못하고 남은 원한 )이 없소. -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는,
애련(哀憐 - 애처롭고 가엾게 여김 )한 마음에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을
살포시 끌어 안으며
서정(抒情 - 자기의 감정이나 정서를 그려 냄 )을 펼친다.
雪中 前朝色 설중 전조색
눈 가운데 옛 고려의 빛 떠돌고
寒鐘 故國聲 한종 고국성
차디찬 종소리는 옛 나라의 소리 같네
南樓 愁獨立 남루 수독립
남루에 올라 수심 겨워 홀로 섰노라니
殘廓 暮烟香 잔곽 모연향
남은 성터에는 저녁 연기만 피어 오르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 진이(黃 眞伊)의 <송 도(松 都)>이다.
古寺蕭然 傍御溝 고사소연 방어구
옛 절은 쓸쓸히 어구 옆에 있고
夕陽喬木 使人愁 석양교목 사인수
저녁 해가 교목에 비치어 서럽구나
煙霞冷落 殘僧夢 연하냉락 잔승몽
연기 같은 놀(태평 세월)은 스러지고 중의 꿈만 남았는데
歲月錚嶸 破塔頭 세월쟁영 파탑두
세월만 첩첩이 깨진 탑머리에 어렸다.
黃鳳羽歸 飛鳥雀 황봉우귀 비조작
황봉은 어디가고 참새만 날아들고
杜鵑花發 牧羊牛 두견화발 목양우
두견화 핀 성터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네.
神松憶得 繁華日 신송억득 번화일
송악의 번화롭던 날을 생각하니
豈意如今 春似秋 기의여금 춘사추
어찌 봄이 온들 가을 같을 줄 알았으리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 진이(黃 眞伊)의 <만월대 회고(滿月臺 懷古)>이다.
汎彼中流 小柏舟 범피중류 소백주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 배
幾年閑繫 碧波頭 기년한계 벽파두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後人若問 誰先渡 후인약문 수선도
뒷 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文武兼全 萬戶侯 문무겸전 만호후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 진이(黃 眞伊)의 <소백주(小栢舟)>이다.
相思相見 只憑夢 상사상견 지빙몽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儂訪歡時 歡訪儂 농방환시 환방농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願使遙遙 他夜夢 원사요요 타야몽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 노중봉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 진이(黃 眞伊)의 <상사몽(相思夢)>이다.
誰斷崑山玉 수착 곤산옥
누가 곤륜산의 옥을 깎아 내어
裁成織女梳 재성 직녀소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牽牛離別後 견우 이별후
견우와 이별한 후에
愁擲壁空虛 만척 벽공허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당 허 엽(草堂 許 曄 - 허 균의 아버지 )의 <영반월(詠半月)>이다.
황 진이(黃 眞伊)가,
즐겨
불렀던 시(詩)이다.
月下 梧桐盡 월하 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 野菊黃 설중 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 天一尺 누고 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人醉 酒千觴 인취 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 和琴冷 유수 화금랭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 入笛香 매화 입적향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明朝 相別後 명조 상별후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與 碧波長 정여 벽파장
사무치는 정은 물결같아 끝이 없으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 진이(黃 眞伊)의 <봉별 소판서 세양(奉別 蘇判書 世讓)>이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 진이(黃 眞伊)의 <어져 내 일이야>의 시조(時調)이다.
<산적 두목 임 꺽정(山賊 頭目 林 巨正)>은,
<명월 황 진이(明月 黃 眞伊)>를
품에 꼭 끌어 안으며
<입맞춤>을 데구말구 퍼부어대는 가운데
깊은 <시름 - 마음에 걸려 풀리지 않고 항상 남아 있는 근심과 걱정 >을 잊어 갔다.
단원 김 홍도(檀園 金 弘道)의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
혜원 신 윤복(蕙園 申潤福)의 <연당 야유도(連塘 野遊圖)>
여기에 나타나는 <속홍 계급(續紅 階級)>의 여인(女人)을
<이원 이패(梨園 二牌)>라 부른다.
<이원 이패(梨園 二牌)>는,
백옥당 은군자(白玉堂 隱君子)라 불리우며
관료(官僚)들로부터
관작(官爵)을 받아서 생계(生計)를 유지해야만 하는
<밀매음(密賣淫)>의 전문가(專門家)들이다.
혜원 신 윤복(蕙園 申潤福)의 <주유 청강도(舟遊 淸江圖)>
여기에 나타나는 <속홍 계급(續紅 階級)>의 여인(女人)을
<이원 삼패(梨園 三牌)>라 부른다.
<이원 삼패(梨園 三牌)>는,
청옥당 은군자(靑玉堂 隱君子)라 불리우며
사대부(士大夫)들로부터
부림을 받아서 생계(生計)를 유지해야만 하는
역시나 <밀매음(密賣淫)>의 전문가(專門家)들이다.
혜원 신 윤복(蕙園 申潤福)의 <단오 풍정도(端午 風情圖)>
여기에 나타나는 <이원(梨園)>의 여인(女人)들이
<흥청 계급(興淸 階級)>이다.
<흥청 여인(興淸 女人)>은,
자유롭게 궁중(宮中)을 드나들며
누구에게도 속박(束縛)받지 아니한
반천 흥청 군자(半天 興淸 君子)라 불리우며
<임금>을 즐겁게 만들지 못한 여인(女人)들이라는
뜻이다.
혜원 신 윤복(蕙園 申潤福)의 <연소 답청도(年少 踏靑圖)>
여기에 나타나는 <이원(梨園)>의 여인(女人)들도
<흥청 계급(興淸 階級)>이다.
<흥청 여인(興淸 女人)>은,
자유롭게 궁중(宮中)을 드나들면서
누구에게도 속박(束縛)받지 아니하고
반천 흥청 군자(半天 興淸 君子)로서의
반(半)만,
<임금>을 즐겁게 만들었다는 여인(女人)들이다.
운평 계급(運平 階級)은 대체적으로
< 15 세(歲)>에서 < 50 세(歲)>까지
그 생계(生計)를 유지했다.
어쨌거나,
<삼계(三階 - 서민(庶民), 천민(賤民), 노예(奴隸)의 계급 )>로 태어나
독립(獨立)할 수 있는 길은
<기적(妓籍 - 기생(妓生)으로 등록되어야 하는 소속 등본 )>에 오르는 길 뿐이었다.
이와,
유사(類似)하게
<내의원 약방 기(內醫院 藥房 妓 - 왕실의 내용약(內用藥)을 맡은 의료 기생(醫療 妓生) )>와
<혜민서 침술 기(惠民署 針術 妓 - 가난한 백성을 무료로 치료하는 침술 기생(醫療 妓生 )>,
<상의원 침선 기(尙衣院 針饍 妓 - 임금의 의복 바느질과 반찬을 만드는 기생(針饍 妓生 )>는
아무리,
훌륭한 기술(技術)을 가졌다 해도
관리(官吏)들과
음란(淫亂)을 즐길 수는 있지만 그 자녀(子女)들은
<어머니>의
<천자 수모법(賤者 隨母法 - 천민(賤民)과 노예(奴隸)는 서민(庶民)과 결혼하여
자식(子息)을 낳는다 해도
그 아이까지 천민과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법(法)이다 )>에
의하여
<기생(妓生)>의 호적(戶籍)에 올려야만 했다.
때문에,
<기생(妓生)>을 비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추워빠진
천당(天堂)을 따뜻한 낙원(樂園)으로 착각(錯覺)하는 것과도 같은 사람일 것이다.
단원 김 홍도(檀園 金 弘道)의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
혜원 신 윤복(蕙園 申潤福)의 <연당 야유도(連塘 野遊圖)>
여기에 나타나는 <속홍 계급(續紅 階級)>의 여인(女人)을
<이원 이패(梨園 二牌)>라 부른다.
<이원 이패(梨園 二牌)>는,
백옥당 은군자(白玉堂 隱君子)라 불리우며
관료(官僚)들로부터
관작(官爵)을 받아서 생계(生計)를 유지해야만 하는
<밀매음(密賣淫)>의 전문가(專門家)들이다.
혜원 신 윤복(蕙園 申潤福)의 <주유 청강도(舟遊 淸江圖)>
여기에 나타나는 <속홍 계급(續紅 階級)>의 여인(女人)을
<이원 삼패(梨園 三牌)>라 부른다.
<이원 삼패(梨園 三牌)>는,
청옥당 은군자(靑玉堂 隱君子)라 불리우며
사대부(士大夫)들로부터
부림을 받아서 생계(生計)를 유지해야만 하는
역시나 <밀매음(密賣淫)>의 전문가(專門家)들이다.
혜원 신 윤복(蕙園 申潤福)의 <단오 풍정도(端午 風情圖)>
여기에 나타나는 <이원(梨園)>의 여인(女人)들이
<흥청 계급(興淸 階級)>이다.
<흥청 여인(興淸 女人)>은,
자유롭게 궁중(宮中)을 드나들며
누구에게도 속박(束縛)받지 아니한
반천 흥청 군자(半天 興淸 君子)라 불리우며
<임금>을 즐겁게 만들지 못한 여인(女人)들이라는
뜻이다.
혜원 신 윤복(蕙園 申潤福)의 <연소 답청도(年少 踏靑圖)>
여기에 나타나는 <이원(梨園)>의 여인(女人)들도
<흥청 계급(興淸 階級)>이다.
<흥청 여인(興淸 女人)>은,
자유롭게 궁중(宮中)을 드나들면서
누구에게도 속박(束縛)받지 아니하고
반천 흥청 군자(半天 興淸 君子)로서의
반(半)만,
<임금>을 즐겁게 만들었다는 여인(女人)들이다.
운평 계급(運平 階級)은 대체적으로
< 15 세(歲)>에서 < 50 세(歲)>까지
그 생계(生計)를 유지했다.
어쨌거나,
<삼계(三階 - 서민(庶民), 천민(賤民), 노예(奴隸)의 계급 )>로 태어나
독립(獨立)할 수 있는 길은
<기적(妓籍 - 기생(妓生)으로 등록되어야 하는 소속 등본 )>에 오르는 길 뿐이었다.
이와,
유사(類似)하게
<내의원 약방 기(內醫院 藥房 妓 - 왕실의 내용약(內用藥)을 맡은 의료 기생(醫療 妓生) )>와
<혜민서 침술 기(惠民署 針術 妓 - 가난한 백성을 무료로 치료하는 침술 기생(醫療 妓生 )>,
<상의원 침선 기(尙衣院 針饍 妓 - 임금의 의복 바느질과 반찬을 만드는 기생(針饍 妓生 )>는
아무리,
훌륭한 기술(技術)을 가졌다 해도
관리(官吏)들과
음란(淫亂)을 즐길 수는 있지만 그 자녀(子女)들은
<어머니>의
<천자 수모법(賤者 隨母法 - 천민(賤民)과 노예(奴隸)는 서민(庶民)과 결혼하여
자식(子息)을 낳는다 해도
그 아이까지 천민과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법(法)이다 )>에
의하여
<기생(妓生)>의 호적(戶籍)에 올려야만 했다.
때문에,
<기생(妓生)>을 비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추워빠진
천당(天堂)을 따뜻한 낙원(樂園)으로 착각(錯覺)하는 것과도 같은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