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유명 글 모음

천국의 랭보

박송 입니다. 2011. 5. 21. 18:43

 

 

천국의 랭보

 

 

蘭亭주영숙
세상이 나로부터 등돌린 것을 알았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세상으로부터 등돌려버리는 것
에라, 가야겠다
내가 읽던 책과 잡스런 글 써놓은 노트 전부 불질러버리고
걸어서, 저 알프스 산맥을 걸어서 넘어가야겠다
제기랄, 세상이 이렇게 매몰찼던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친구 하나쯤은 잘 사귀어놓을 것을
애인 하나쯤은 잘 길들여놓을 것을
증오와 욕설, 이 망할 도시의 온갖 구설수
사람과의 다툼과 눈치보기가 한없이 지겨워졌을 때
너의 그 따뜻한 엉덩이도 내겐 위안이 될 수 없었지
내가 내 남근을 하룻밤 불끈 세워
창조할 수 있는 생명이 없는데
詩는 무엇 말라비틀어진 것인가
밤에 피었다 아침에 시드는 저 숱한
거리의 여인들이 지니고 있는 자궁처럼
멍청한 애늙은이 너의 유혹을 뿌리치고 
취한 배에 몸을 실어 머나먼 서인도제도로
침묵하는 호수와 우울한 숲이 있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사막의 선인장이 비를 기다리는 이집트로
공사판의 십장이 되어 키프로스 섬으로 
무기 밀매상이 되어 예멘의 항구도시 아덴으로
우와, 백인이 단 한명도 발 들여놓지 않은
에디오피아의 오지 오가덴 지방으로!
저 길,
가고 싶은 지금 즉시 가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산 주검이 아니면 죽은 목숨인 것을
나는 이제껏 지옥에서 사계절을 났으나
지글지글 들끓는 내 마음같은 적도의 태양
선명한 북반구의 별자리들과 몰약같이 황홀한 오로라
뱃길을 가로막고 쉬어가라 유혹하는 저 자옥한 해무(海霧)가
다 내것이다…… 나의 것, 나의 천국!
                       -이승하, <천국의 랭보-여행에의 권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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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배/Le Bateau ivre

                           -  아르뛰르 랭보

유유한 강물을 타고 내려올 적에 
이젠 선원들에게 맡겨졌다는 느낌은 아니었어. 
형형색색 말뚝에 발가벗긴 채 못박아 놓고서 
인디언들 요란스레 그들을 공격했었지.1)

플라망드르산 밀이나 영국산 목화를 져나르는 
선원들이야 내 아랑곳하지 않았지. 
나의 선원들과 더불어2) 그 소동이 끝나자 
강물은 내 마음대로 흐르도록 날 버려두었지.
격렬한 밀물 요동 속에 밀리며 
어느 겨울 아이들 머리보다도 더 귀 멀었던 나, 
나는 헤쳐나갔지. 그리고 출범한 반도들은3) 
그보다 더 기승하는 소동을 겪는 적이 없었다.
폭풍우가 해상에서 잠깨는 날 축성했고 
콜크마개보다 더 가벼이 떠돌며, 영원한 희생자들의 
흔들배라고 불리우는 물결 출렁이는 대로 난 춤추었네, 
회한없이4) 열 날 밤을, 초롱불들의 흐리멍텅한 눈!
초록색 물은 시큼한 사과 속살처럼 
어린애들에게보다 더 부드럽게 내 전나무 선체에 스며들고 
청포도주 얼룩들과 토해낸 찌꺼기들이5) 
키와 갈고리 닻에 흩어지며 날 씻었네.
이제 그 때부터 초록 창공을 탐식하는,6) 젖빛의,7) 별들이 잠긴, 
바다 속에서 난 헤엄쳤네 : 
거기엔 해쓱하고 넋 잃은 부유물처럼 
이따금 상념에 잠긴 익사체8)가 내리흐르고 : 
거기엔, 갑자기 푸르스름한 색깔들 물들이며,9) 
태양의 불그스름한 번득거림 아래에 느릿한 착란과 리듬,10) 
알콜보다 더 진하게, 우리의 리라보다도 드넓게 
사랑의 씁쓸한 바알간 얼룩들 술렁이며 삭아가네!
난 알고 있다네 섬광으로 찢어지는 하늘들,11) 물기둥들, 
격랑들, 그리고 해류들을 : 난 알고 있다네, 저녁녘, 
붉게 달아오른 여명 그리고 비둘기떼들, 
또 난 가끔 보았다네 인간이 본다고 믿었던 것을!12)

난 보았네, 신비로운 공포 점점이 박힌 나지막한 해, 
머나먼 고대 연극의 배우들 모양의13) 
길다란 보랏빛 응결체들을14) 비추는 태양을 
저 멀리 출렁이는 수면을 굴리는 물결들을!
난 꿈꾸었네, 현란스레 눈덮힌 푸른 밤,15)
서서히 바다위로 복받쳐 오르는 애무인양 
놀라운 수액들의 순환16) 
그리고 노릇파릇 깨어나 노래하는 인광들을!17)

내 여러날 쫓아다녔지. 히스테릭한 암소떼처럼18)
넘실넘실 암소들을 덮치는 큰 파도들. 
성모마리아의 빛나는 발이라도 
숨가쁘게 헐떡이는 대양을 억누르진 못했을 거야!19)

짐작하다시피 난 부딪쳤네, 엄청난 플로리다주와, 
꽃무리 속에 인간의 피부를 한 표범들 눈초리가 엉켜있었고20) 
수레바퀴 테처럼 탱탱한 무지개들, 
수평선 아래 바다의 청록색 양떼들과 어우러지고 있었지!21)

난 보았네, 어마어마한 늪들이 통발처럼 삭아가는 것을, 
거기엔 골풀들 안에서 거대한 바다괴물 통째로 썩어가고!22) 
바다의 고요 한 가운데에서 부서지는 물의 붕괴, 
그리고 심연을 향해 카르릉거리는 원방의 물결들을!
빙하들, 은빛 태양들, 진주모빛 물결들,23) 잉걸불처럼 바알간 하늘들! 
갈색 물구비 복판에 꼴사나운 좌초물들,24) 
거기엔 빈대들이 할퀴어버린 거대한 배암들 
시커먼 냄새 풍기며 비틀린 나무들처럼 쓰러져가고!25)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리, 푸른 물결의 그 
만새기들,26) 그 황금색 물고기들 노래하는 물고기들을,27) 
꽃 모양 물거품들이 항상 나의 출범을 어르고28) 
형언할 수 없는 바람들은 시시각각 날개치듯29) 날 스쳤네.
이따금 극지들과 지대들이 지친 순교자처럼30) 
바다는 흐느낌으로 내 몸을 부드러이 흔들어대며 
노란 통풍창 뚫린 그늘의 꽃들을 내게로 올려보내고31) 
난 거기 쪼그리고 있었네. 무릎 꿇고 거의 넋 잃은 채.
섬처럼 내 뱃전 위로 달라붙은 하소연을 뿌리치고,32) 
금빛눈을 빈정거리는 새들의 똥무더기를 가르며 
나는 떠내려갔네.33) 어렴풋이 날 스쳐간 혼백들 
다시금 뒷전으로 잠잠히 가라앉더라!
해서 나는 길 잃은 배되어 머리카락에 휘감기듯 
폭풍에 말려 새도 없는 창공으로34) 내던져졌지. 
모니토르 군함들도 한스조합의 범선들도35) 
물에 취한 내 몸뚱아리 건지지 못했을 나 :
자유로이 보랏빛 안개를 타고, 피어올라36)
불그스름한 하늘을 돌파할 나, 벽을 돌파하듯 
훌륭한 시인들에 바치는 별미의 과일쨈처럼,37) 
태양의 地衣들이며 창공의 넝마들을 걸친 나 :
반달 친구들 점점이 박혀, 미쳐 날뛰는 판자처럼, 
검은 해마들38) 호송받으며 달음질치는 나, 
군데군데 타오르는 구덩이 난 군청색 하늘을 
칠월들이 몽둥이 삿대질로 무너뜨릴 때 : 39)
50리 밖에서, 발정하는 베헤못과40) 어마어마한 말스트롬 돌풍이 
우는 소리를 느끼며 전율하는 나, 
푸르른 부동으로 영구히 살을 잣는 자, 나는 
고대 흉벽들 늘어선 유럽을 애석해 하노라!
난 보았네 항성의 군도들을! 그리고 열광하는 그곳 하늘 
항해자에게 열려있는 섬들을 :
-바로 이 끝없이 깊은 밤들 사이에 그대 잠들어 달아나는 건가 
백만의 황금새들, 오 미래의 활력이여?41)
하지만, 정말이지, 난 너무나도 흐느껴 울었네! 여명들은 비통하고 
달이 온통 잔혹하고 해는 온통 가혹하고 : 
쓰디쓴 사랑은 취기 어린 마비상태로 날 부풀렸네. 
오, 나의 용골을 터뜨리라! 오, 날 바다로 가도록 하라!42)
내가 유럽의 물을 갈구한다면 그것은 바로 
검고 차가운 웅덩이,43) 거기엔 향긋한 황혼을 향해 
슬픔에 겨워 쇠잔한 한 아이 쪼그리고 
가벼운 배 한 척 오월의 나비처럼 떠있는 곳. 
오 물결들이여, 그대들 무기력함에 휩싸인 나, 
이제는 목화 짐꾼들로부터 그들의 자국 지울 수 없네.44) 
깃발들과 불길들의 오만함 가로지를 수도 없네,45)
이제는 부교들의 험악한 눈들 아래에서 헤엄칠 수도 없네.46)

아르뛰르*랭보全集p173~p177/汎宇社1990/알리앙스*프랑세즈/李準五역/역주 참조:p583 

 

 
蘭亭주영숙 05.05.08. 18:28
-랭보 {술취한 배} (1999년도에 랭보 시집에서 발췌, 문서 저장하였는데, 그 시집이 어느 구석에 있는지 보이지가 않아 역자는 적지 못함. 따라서 이 시가 전문인지 부분인지도 확인 못함.)
 
 
나무와 구름 05.05.09. 08:17
저 길, / 가고 싶은 지금 즉시 가지 않는다면 / .....산 주검이 아니면 죽은 목숨인 것을... 가고 싶은 즉시, 오늘 이순간 '다시 가기'를 시작해야겠지요.
 
 
蘭亭주영숙 05.05.09. 13:42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끝없는 끝을 향하여 시작해야겠습니다... 나무와구름님, 뉘신지 모르오나 꼬리글 맛있사옵니다^^*
 
 
蘭亭주영숙 05.05.10. 09:14
시집이 아니라 랭보전집이었습니다. 지금 마악 찾아 일일이 수정하면서 적어보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랭보의 취한 배에 충격을 받아 바다 시(시조)를 몇 편 썼었는데, 다시 보니 거기에 랭보가 묻어있습니다. 이승하선생님의 위의 시가 랭보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물론이고요^^*
 
 
蘭亭주영숙 05.05.11. 11:28
사실은 이번종합시험공부를 하다가 이 글을 올린 것입니다. 랭보를 다시 보게 이끌어주신 이승하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깊숙한 존경의 인사)
 
 
shpoem418 05.05.11. 01:15
주영숙 님! 시험 잘 치세요. 저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그래서 때로는 비정한 사람입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랭보의 <취한 배>와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그리고 보들레르의 몇 편 시와 두보의 몇 편 시 때문에 자살기도를 3번에서 끝냈지요. 네 사람의 시가 저를 지독한 염세에서 구출해낸 것입니
 
 
shpoem418 05.05.11. 01:21
다. 쥐약을 잔뜩 먹기도 했고 집에 있는 약이랑 약은 다 모아서 50알 이상을 먹었다 실명까지 했었고... 아아, 그런데 시가 있는 거예요. 그분들의 시 비슷한 것 1편은 쓰고 죽어야지요. 6월중에 나올 예정인 시집 <고요히 서서, 썩어가는 자들>(문학사상사) 읽어주시기를. "말라비틀어질"을 "말라비틀어진"으로 고침
 
 
蘭亭주영숙 05.05.11. 11:30
와후................ 교수님, 정말.........눈부신 교수님,.........그런데 교수님,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신다는 것은 진작에 알아챘답니다........^^ 그러기에 특히 교수님을 좋아한답니다. "말라비틀어질"을 "말라비틀어진"으로 고치겠습니다^&^*
 
 
蘭亭주영숙 05.05.11. 11:29
ㅎㅎㅎㅎㅎ 3번의 자살기도.... 만약 4번째의 자살기도를 하셨더라면 아마 주영숙이 교수님을 영영 만나뵙지 못했을거라는 예감....한국의 이승하 시인을 지독한 염세에서 구출해낸 랭보와 발레리와 보들레르와 두보...두고두고 빛나는 세계적인 시인들께도 감사 기도 드립니다...꾸벅~
 
 
蘭亭주영숙 05.05.11. 11:36
ㅎㅎㅎㅎ 제가 다 커서 유부녀에 주부노릇을 한창 하고있던 당시, 89년, ㅎㅎㅎㅎ 집에 있는 약이라는 약이 아니라, 콘택600을 30알 먹은 적이 있습니다. 속에서 뭔가가 머리쪽으로 쇅쇅!!! 화살처럼 날아가는 걸 느끼며,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퍼뜩!!....결국 못죽었습니다. 위 세척을 당했죠.
 
 
蘭亭주영숙 05.05.11. 11:39
선생님.... 제목만 봐도 눈물이 납니다. "고요히 서서, 썩어가는 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