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잔인한 도시>
젊은이는 다시 가게 안쪽에 숨겨 놓은 비밀 집합사에서 새 새들을 꺼내다가 비워진 장들을 채워 넣고 있었다. 사내로선 물론 가게 안에 차려진 집합사에 새들이 몇 마리쯤 숨겨져 있는지 들여다볼 기회가 한 번도 없었지만, 젊은이는 아마도 그 비밀 집합사에 새가 바닥이 나게 버려 두는 일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특히나 오전 동안엔 젊은이가 바깥 새장을 비워 두는 일이란 절대로 없었다. 가게 안 비밀 집합사엔 언제나 여분의 새들이 얼마든지 비워진 장을 채우게 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젊은이가 비밀 집합사를 들어갔다 오면 두 마리고 세 마리고 그의 손아귀엔 언제나 그가 필요한 수만큼의 새들이 움켜져 나왔다.
이날도 젊은이는 벌써 스무 개 이상의 빈 새장을 새로 채워 넣고 있었다.
사내는 계속 다시 채워진 새장 앞에서 자신의 충동을 견뎌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 한 새장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내가 무슨 버릇처럼 한 새장 문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건드리자 장 속의 새가 포르륵 날개를 퍼득여 그의 손가락 쪽으로 날아와 붙었다.
사내가 손가락을 좀더 깊숙이 장 속으로 디밀었다. 그러자 다시 장 속의 새는 녀석의 조그만 부리로 사내의 손가락 끝을 조심스럽게 한두 번 콕콕 쪼아대는 시늉이더니, 나중에는 겁도 없이 홀짝 그 손가락 위로 몸을 날려 내려앉았다. 그리고 꽁지를 가볍게 간들거리며 조그만 눈망울로 말똥말똥 그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사내는 한동안 거의 넋을 잃은 듯한 얼굴로 장 속의 새 앞에 못박혀 서 있었다. 사내의 초라한 입가에 이윽고 누런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거기서 그 사내의 오랜 기다림이 끝났다.
“그래, 나도 이젠 네놈을 알아볼 수 있구말구······.”
사내는 혼잣말처럼 낮게 중얼거리고 나서, 다시 가겟집 젊은이를 향해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 오늘은 이 녀석을 사 주겠소.”
그는 곧 야전잠바 주머니를 뒤져 동전 스무 닢을 세어 내놓고 나서, 이젠 젊은이의 응낙을 기다릴 것도 없이 스스로 새장 문을 따기 시작했다.
그는 열린 장문 사이로 손을 디밀어 녀석을 조심스럽게 손바닥에 싸안았다. 그리고 무슨 소중스런 물건이라도 다루듯 자신의 코 앞까지 녀석을 높이 치올려 들고는 사람에게 하듯이 중얼중얼 말했다.
“하지만 이젠 알아 두거라. 여긴 네놈들에게 그리 즐겨할 곳이 못된다는 걸 말이다. 그래 나도 이게 네놈한테 마지막일 테니 이번엔 좀 날개가 저리도록 멀찌감치 하늘을 날아가 보거라······.”
손안에 든 새가 사내를 재촉하듯 날개를 두어 번 퍼득대고 있었다.
그러자 사내도 이제 그만 녀석을 놓아줄 자세를 취했다. 퍼득여 대는 녀석의 양 날개 밑으로 손끝을 집어넣어 녀석을 높이 받쳐 올렸다. 그리고 그가 뭔가 혼잣말 같은 것을 입속으로 중얼대며 녀석을 막 놓아주려던 참이었다.
사내는 금세 뭐가 이상해졌는지 숲으로 놓아주려던 녀석을 다시 가슴팍 밑으로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녀석의 날개를 들추고 벌어진 날갯죽지 밑을 유심히 살폈다.
사내가 들춰낸 녀석의 양쪽 날개 밑엔 ㉠무슨 가위 같은 물건으로 속깃을 잘라낸 자국이 역력했다.
사내는 일순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며 어째서 그런 일이 생기게 됐는지 짐작이 안 가는 듯 멍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중략>
그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 멀어져 가는 ⓐ도시의 하늘에서 자신의 지친 발걸음을 재촉할 구실을 구하듯 때때로 고개를 뒤로 돌아보곤 하였다.
“그래 어쨌거나 우리가 녀석을 떠나온 건 백 번 천 번 잘한 일이었을 게다. 게다가 이제부터 도시엔 겨울 추위가 몰아닥치게 되거든. 너 같은 건 절대로 그 도시의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작자도 아마 그걸 알았을 게다. 글쎄, 네놈도 그 작자가 암말 못하고 멍청하게 날 바라보고만 있는 꼴을 봐 뒀겠지. 내가 네 놈을 데리고 떠나려 할 때······아, 그야 나도 물론 작자한테 그만한 값을 치르긴 했지만 말이다.”
맞은편 산굽이께로부터 도시를 향해 길을 거꾸로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한 패가 사내의 곁을 시끌적하게 떠들고 지나갔다.
사내는 잠시 말을 끊고 그 도시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일행을 스쳐 보냈다. 그리고 그들의 말소리가 등 뒤로 멀리 사라져 간 다음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반 해분만이라도 내 그 노역의 품삯을 한사코 주머니 속에 깊이 아껴 뒀던 게 천만다행이었지. 널 데려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돈 덕분인 줄이나 알아라. 하기야 그건 내가 정말로 집엘 닿는 날까지 기어코 안 쓰고 지니려던 거였지만······하지만 난 후회 않는다. 암 후회하지 않구말구. 그까짓 돈이야 몇 푼이나 된다구······이런 몰골을 하고 빈손으로 고향길을 찾기는 좀 뭣할지 모르지만, 그런다구 어디 사람까지 변했나······아니, 내 아들녀석도 물론 그런 놈은 아니구.”
사내는 제풀에 고개를 한번 세차게 흔들었다.
가슴 속 녀석이 응답을 해 오듯 발가락을 몇 차례 꼼지락거렸다. 그 바람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녀석의 발짓을 느끼고 있던 사내의 얼굴에 만족스런 웃음기가 번지고 있었다.
“그래, 어쨌든 잘했지. 떠나온 건 잘했어.”
사내는 다시 발길을 떼 옮기며 말하기 시작했다.
“녀석도 아마 잘했다고 할 거야. 글쎄, 이렇게 내가 제발로 녀석을 찾아 나섰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우리도 거기서 겨울을 지낼 뻔했질 않았나 말이다.”
그리고 사내는 뭔가 더욱 은밀하고 소중스런 자신만의 비밀을 즐기듯 몽롱스런 눈길로 중얼거림을 이어 갔다.
“너도 곧 알게 될 게다. 우리가 함께 남쪽으로 길을 나서길 얼마나 잘했는가를 말이다. 남쪽은 북쪽하곤 훨씬 다르다. 겨울에도 대숲이 푸른 곳이니까. 넌 아마 ⓑ 대숲이 있는 곳이면 겨울도 ㉡ 그만일 테지. 내 너를 그런 대숲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테다. 녀석의 집 뒤꼍에도 그런 대숲은 얼마든지 많을 테니까. 암 대숲이야 많구말구······넌 그럼 그 대숲으로 가거라. 그리고 거기서 겨울을 나려무나······.”
사내의 얼굴은 이제 황홀한 꿈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의 그것처럼 밝고 행복하게 빛나고 있었다.
- 이청준, 잔인한 도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