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연구 ▣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 해제
사회주의의 실천적 지식인이 되고자 했으나, 실직 상태에 있는 P의 삶을 통하여 식민지 지식인의 좌절을 풍자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레디메이드(ready-made) 인생’이란 ‘기성품(旣成品) 인생’이란 뜻으로 팔리기를 기다리는 기성품처럼 직업을 기다리는 실업자를 의미한다. 수요는 일정한데 무작정 공급되는 물량과 같은 시세 없는 존재들, 이것이 p라는 인텔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며, 바로 이런 사람들의 인생이 레디메이드 인생인 것이다.
◉ 전체 줄거리
▪ 발단 : 고등 교육을 받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 모한 채 살아가던 P는 모 신문사 K사장을 찾아가서 일자리를 부탁했다가 거절당한다.
▪ 전개 : P는 자신과 같은 레디메이드 인생을 양산(量産)해 낸 사회를 비난한다.
▪ 위기 : P는 M, H와 함께 자신의 법률 책을 잡혀서 만든 돈으로 술을 마신다.
▪ 결말 : P는 아들 창선이를 인쇄소 무료 견습공으로 취직시킨다. 아들만은 자신과 같은 인텔리 실직자로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 작품 개관 ▣
갈래 - 단편 소설
성격 - 풍자적. 자조적
배경 - ① 시간 : 일제 강점기 ② 공간 : 서울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특징 - 풍자적 문체를 통해 도시의 빈곤상 및 인텔리의 실직과 소외를 냉소적으로 서술함
주제 - ① 지식인 계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
② 식민지 사회의 구조적 병폐에 대한 비판
<감상>
1930년대에는 세계적 대공황으로 인해 조산의 지식인들은 전문학교를 졸업하고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니 자연 이들의 생활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에서는 고등 교육을 받은 인텔리 실업자 p의 모습을 통해 시대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뭐 어디 빈자리가 있어야지." K 사장은 안락의자에 폭신 파묻힌 몸을 뒤로 벌떡 젖히며 하품을 하듯이 시원찮게 대답을 한다. 두 팔을 쭉 내뻗고 기지개라도 한번 쓰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 눈치다. 이 K 사장과 둥근 탁자를 사이에 두고 공손히 마주앉아 얼굴에는 "나는 선배인 선생님을 극히 존경하고 앙모합니다." 하는 비굴한 미소를 띠고 있는 구변 없는 구변을 다하여 직업 동냥의 구걸(求乞) 문구를 기다랗게 늘어놓던 P…… P는 그러나 취직 운동에 백전백패(百戰百敗)의 노졸(老卒)인지라 K씨의 힘 아니 드는 한마디의 거절에도 새삼스럽게 실망도 아니한다. 대답이 그렇게 나왔으니 인제 더 졸라도 별수가 없는 것이지만 헛일 삼아 한 마디 더 해 보는 것이다. "글쎄올시다. 그러시다면 지금 당장 어떻게 해 주십사고 무리하게 조를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면 이담에 결원이 있다든지 하면 그때는 꼭……." 이렇게 말하고 P는 지금까지 외면하였던 얼굴을 돌리어 K 사장을 조심성 있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K 사장은 위선 고개를 좌우로 두어 번 흔들고는 여전히 하품 섞인 대답을 한다. "결원이 그렇게 나나 어디…… 그리고 간혹 가다가 결원이 난다더라도 유력한 후보자가 몇십 명씩 밀려 있어서……." P는 아무 말도 아니 하고 고개를 숙였다. 인제는 영영 틀어진 것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일어서는 것밖에는 별수가 없다. / 별수가 없이 되었으니 "네 그렇습니까." 하고 선선히 일어서야 할 것이지만 지금까지의 은근히 모시고 있던 태도에 비하여 그것이 너무 낯간지러운 표변임을 알기 때문에 실망이나 하는 체하고 잠시 더 앉아 있는 것이다. "거 참 큰일났어." K 사장은 P가 낙심해하는 것을 보고 밑천이 들지 아니하는 일이라서 알뜰히 걱정을 나누어 준다. "저렇게 좋은 청년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저렇게들 애를 쓰니." P는 속으로 코똥을 '흥' 하고 뀌었으나 아무 대답도 아니 하였다. K 사장은 P가 이미 더 조르지 아니하리라고 안심한지라 먼저 하품 섞어 '빈자리가 있어야지.' 하던 시원찮은 태도는 버리고 그가 늘 흉중에 묻어 두었다가 청년들에게 한바탕씩 해 들려 주는 훈화를 꺼낸다. "그렇지만 내가 늘 말하는 것인데…… 저렇게 취직만 하려고 애를 쓸 게 아니야. 도회지에서 월급 생활을 하려고 할 것만이 아니라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촌으로 돌아가서 무얼 합니까?" P는 말 중동을 갈라 불쑥 반문하였다. 그는 기왕 취직 운동은 글러진 것이니 속시원하게 시비라도 해 보고 싶은 것이다. "허 저게 다 모르는 소리야…… 조선은 농업국이요, 농민이 전 인구의 팔할이나 되니까 조선 문제는 즉 농촌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아 지금 농촌에서 할 일이 오죽이나 많다구?" "저는 그 말씀 잘 못 알아듣겠는데요. 저희 같은 사람이 농촌에 가서 할 일이 있을 것 같잖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가령 응…… 저……." K 사장은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가 구직하러 오는 지식 청년들에게 농촌으로 돌아가 농촌 사업을 하라는 것은(다음에 또 꺼내는 일거리를 만들라는 것은) 결코 현실에서 출발한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지식 계급의 구직군이 넘치는 것을 보고 막연히 '농촌으로 돌아가라.', '일을 만들어라.'고 해 왔을 따름이다. 따라서 거기에 대한 구체적 플랜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 행세거리로 또 한편으로는 구직군 격퇴의 수단으로 자룡이 헌 창 쓰듯 썼을 뿐이지……. -------------------------------------------------------------------------------------------- * 앙모(仰慕) : 우러러 그리워 함 * 결원(缺員) : 사람이 빠져 정원에 차지 않고 빔. 또는 그런 인원 * 표변(豹變) : 마음, 행동 따위를 갑작스럽게 바꿈. * 코똥 : ‘콧방귀’의 전남 방언 * 중동 : 어떤 일의 중간이 되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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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출제 예감 <보기>의 '김 강사'와 위 글의 'P'가 대화를 나눈다고 할 때, 그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① 김 강사:지식인인 내가 이런 짓이라도 해서 생 계를 이어가야 한다니 괴롭습니다. ② P:그렇군요. 비굴한 태도를 보이면서까지 강사 자리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③ 김 강사:제가 이전에 가졌던 이념이 현실 앞에 서는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④ P:하기야 저도 당신에게 큰소리를 칠 형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⑤ 김 강사:부끄러운 저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태 도를 보여 주어 더 부끄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