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내가 그리워하는데~>
내라 그리거니 네라 아니 그릴넌가 천리만향(千里萬鄕)에 얼매나 그리난고 사창(紗窓)의 슬픠 우난 뎌 뎝동새야 불여귀(不如歸)라 말고라 내 안 둘 데 업새라
<현대어 풀이> 나는 네가 그리운데 넌들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고국을 천리나 떨어진 이역 땅 심양에서 그 얼마나 그립겠는가? 창밖에서 슬피 울고 있는 저 접동새야 돌아감만 못하다고 하지를 말아라(곧 울지를 말아라), 내 이 안타깝고 그리운 심정을 둘 곳이 없구나!
내가 그리워하는데 네가 아니 그리워하겠는가. 천리 만향(千里蠻鄕)에 얼마나 그리워하는가. 사창(沙窓)에 슬피 우는 저 접동새야 不如歸(불여귀)라 하지 말아라. 내 마음 둘 곳 없어라. (ebs 수특)
나도 너가 그리운데, 너라고 내가 그립지 않겠는가? 천 리나 먼 오랑캐 땅에서 얼마나 그립겠는가? 창 밖에서 슬피 울고 있는 저 접동새야 돌아감만 못하다고 하지 말아라. 나의 그리운 심정을 둘 곳이 없어라! |
◈ 어휘 풀이
▪ 그리거니 - 그리워하거니
▪ 그릴넌가 - 그리워할 것인가
▪ 천리만향(千里萬鄕) - 멀리 떨어진 오랑캐의 고장,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잡혀가 있는 심양을 가리킴
▪ 사창(紗窓) - 비단을 바른 창, 여자가 거처하는 방을 이름인데 여기에서는 인조 자신이 거처하는 방을 가리킴.
▪ 불여귀(不如歸) - 접동새의 다른 이름인데 여기에서는 글자의 뜻대로 <돌아감만 못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접동새 : 인조의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배가시키는 객관적 상관물
<해제>
병자호란 때 볼모로 청(淸)에 끌려간 소현 세자는 끌려간 지 3년째 되던 해에 아버지 인조에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애끓는 시를 보낸다. 인조가 이 시를 보고 애통히 여기며 잠 못 이루고 있는데, 어디서 들려오는 소쩍새의 애절한 울음은 더욱 마음을 괴롭게 하여 벽 위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한 나라의 임금이지만 평범한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자식에 대한 부정(父情)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 개관 정리
작자 : 인조(仁祖)
성격 : 애상적,
제재 : 접동새. 자식에 대한 그리움
주제 : 볼모로 잡혀간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정(父情)
▪ 짜임
초장 |
자식에 대한 그리움 |
중장 |
자식이 느낄 향수(鄕愁)에 대한 공감 |
종장 |
자식의 귀향(歸鄕)에 대한 간절한 소망 |
▪ 얼개 돋보기
초장 |
중장 |
종장 |
▪ 자식을 그리워 함 ▪ 자식의 마음 이해 |
자식의 마음에 대한 심화된 공감 |
자식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
⌎ 정서의 심화 및 고조(高調) ⌏ |
내용 연구
소현세자는 심양으로 잡혀간 지 3년 뒤에 아버지 인조에게 갖방석과 함께 한시를 지어 보냈다. 인조께서 이 시를 보시고 애통함을 금하지 못하고 읊은 것이 바로 이 시조이다.
나는 이렇게 그리운데 넌들 얼마나 그립겠느냐? 달 밝고 깊은 밤 중에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날아 온 제비를 보고 남쪽에서 왔기 때문에 행여나 소식을 가져왔는가 하고 애태우다가, 멀리 부왕이 계신 서울 쪽을 바라보고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다니 그 애타는 마음은 오죽 하겠는가? 더욱 이역만리 오랑캐 땅의 불모이고 보니 그 괴로움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시의 사연을 읽는 인조의 가슴은 메어지는 것 같았으리라. 그리하여 잠들지 못하고 있는데, 어디서 들려오는 소쩍새의 애절한 피맺힌 울음은 더욱 마음을 산란하게 하여 벽 위에다 이 시조를 썼다고 한다.
몸은 비록 일국의 임금이라 하더라도 자식을 그리는 아버지의 마음과, 이국 땅에서 자식의 어버이를 그리는 마음은 진실로 눈물겨운 바가 있다. 왕이요 왕자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의 부자의 정은 범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국가의 비운을 한 몸에 지고, 수항단 아래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으며, 사랑하는 아들을 둘이나 볼모로 보내고 애태우던 인조의 심경은 곧 우리 민족의 슬픔이기도 하였다.
◈ 소현세자가 인조에게 보낸 한시
신류이역미귀인(身留異域未歸人 : 몸은 낯선 땅에 있어 못 가는 신세)
가류장안한수빈(家留長安漢水濱 : 내 집은 서울 장안 한강 기슭)
월백야심화락읍(月白夜心花落泣 : 달 밝고 깊은 밤중 꽃잎에 눈물 짓고)
풍청지면유사신(風淸池面柳絲新 : 바람 맑은 연못 위엔 버들잎이 푸른데)
황려후기요서몽(黃驪嗅起遙西夢 : 꾀꼬리 울음 소리 고향 꿈을 깨우며)
현조래전경회춘(玄鳥來傳慶會春 : 제비 찾아와서 경회루의 봄을 알리네)
진루대가무지(盡樓臺歌舞地 : 온 종일 누대에서 노래하고 춤 추던 곳)
불감회수누점건(不堪回首淚漸巾 : 고향을 돌아보니 눈물이 쏟아지네)
◈ 인조[仁祖 : 1595(선조 28)-1649(인조 27)]
조선 16대 왕. 광해군의 폭정에 반정을 일으켜 1623년에 즉위하였다. 반정 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의 난이 1624년에 있었고, 1627년에는 정묘호란을 겪었다. 1636년에는 병자호란을 당하여 남한산성에서 항거하다가 척화파와 주화파의 치열한 싸움 끝에 인조 자신이 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의(淸衣)를 입고 항복을 하는 치욕을 당했으며 소헌·봉림 두 왕자를 심양에 인질로 보내야 했었다.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친명배금정책(親明排金政策)을 실시하는 가운데 정묘호란·병자호란을 겪었다. 재위기간 동안 5군영(五軍營)의 기초가 마련되고 양전(量田)·대동법 등이 시행되었으며, 각 학파·정파 간의 국가 질서 재건을 위한 이념적 모색이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이름은 종(倧). 자는 화백(和伯), 호는 송창(松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