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분석 : 전가팔곡(田家八曲)
원풍(願豊)
세상(世上)의 버린 몸이 견무(畎畝)의 늘거가니
밧겻일 내 모르고 하는 일 무슨일고
이 중(中)의 우국성심(憂國誠心)은 년풍을 원하노라
◐해석
세상일에 서툴러 버림받은 이 몸이 밭이랑 사이에서 늙어가니
세상 밖의 일은 내가 알 수 없고, 또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고.
이 속에서도 나라 위한 붉은 마음은 풍년을 원하노라.
-속세를 떠난 사대부의 풍년에 대한 기원
춘(春)
농인(農人)이 와 이로되 봄 왔네 밭에 가새
압집의 쇼보잡고 뒷집의 따보내네
두어라 내집부터 하랴 남하니 더욱 됴타
◐해석
이웃 농부가 찾아와 이르되, 봄이 왔으니 밭에 나가세.
앞집에서 쟁기 잡고 뒷집에서 따비(농기구)를 보내네
두어라 내 집 농사부터 하랴, 남부터 먼저 하니 더욱 아름답구나.
-봄을 맞아 상부상조하면서 노동할 것을 권유
하(夏)
어름날 더운 적의 단따히 부리로다
밧고랑 메자하니 땀흘려 땅에돗네
어사와 립립신고(粒粒辛苦) 어늬 분이 알아실고
◐해석
여름날 한창 더울 적에 햇빛에 달아있는 땅이 마치 불같도다.
밭고랑 매자하니 땀이 흘러 땅에 구르네.
아아! 곡식 한 알 한 알의 고생을 어느 분이 알아주실까?
-땀 흘리며 고생한 노동
추(秋)
가을희 곡셕 보니 됴흘도 됴흘셰고
내힘이 닐운 거시 머거도 마시로다
이밧긔 천사만종(千駟萬鐘)을 부러 무슴하리오
◐해석
가을이 되어 곡식을 보니 좋기도 참으로 좋구나
내 힘으로 이룬 것이니 먹어도 맛이 유별나구나
이 즐거움 외에 천사만종(세속의 부귀영화)을 부러워하여 무엇하리오
-스스로 수확한 농산물을 먹는 즐거움
동(冬)
밤으란 사츨 꼬고 나죄란 뛰를 부여
초가(草家)집 자바매고 농기(農器)졈 차려스라
내년희 봄온다 하거든 결의 종사(從事)하리라
◐해석
밤에는 새끼를 꼬고 낮엔 띠풀을 베어
초가집 잡아매고 농기구를 손질하여라
내년에 봄 온다 소리 들리거든 곧 농사일 시작하리라.
-다음해 농사 준비를 하는 겨우살이
신(晨)
새배 빗나쟈 백설(百舌)이 소뢰한다
일거라 아해들아 밧보러 가쟈스라
밤사이 이슬 긔운에 얼마나 길었는고 하노라
◐해석
새벽이 돌아와 날이 밝아지니 온갖 것(때까치)들이 소리하는구나.
일어나거라, 아이들아. 밭을 살펴보러 가자꾸나.
밤사이 이슬 기운에 얼마나 곡식이 길어났는고 하노라.
-부지런한 하루 농사의 과정
오(午)
보리밥 지어 담고 도트랏(도토리) 갱(국)을 하여
배골는 농부(農夫)들을 진시(趁時)예 머겨스랴
아해야 한 그릇 올녀라 친(親)히 맛봐 보내리라
◐해석
보리밥 푸짐하게 지어 담고 명아주 국을 끓여
배를 곯는 농부들을 제 때에 먹이어라.
아이야! 한 그릇 가져오너라. 내 친히 맛을 보고 나서 그들에게 보내리라.
-농부들과 어울리는 일상사의 즐거움
석(夕)
서산(西山)에 해 지고 풀 긋테 이슬난다
호뮈는 둘너메고 달듸여 가쟈스라
이 중(中) 즐거운 뜻을 닐러 무슴하리오
◐해석
서산에 해 떨어지고 풀 끝엔 이슬이 묻어난다.
호미를 둘러매고 달을 등에 지고 집에 돌아가자꾸나.
이런 생활의 즐거운 재미를 남들에게 말하여 무엇하리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즐거움
▣요점 정리
* 지은이 : 이휘일
* 갈래 : 연시조
* 성격 : 전원적, 향토적
* 시상 전개 :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 농촌의 일상일
* 특징
-청유형 어미를 사용하여 농부들과 함께하는 동류의식도 있지만 부지런히 일하는 농부들의 일상을 소개한다는 화자 자신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나타냄
-세상에서 ‘천사만종’을 누리는 사람을 우회적으로 비판함과 동시에 세속에서 달관한 화자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나타남
-‘세상의 버린 몸’에서 중앙 정계로의 진출이 통제되고 있음을 암시
* 주제 : 향촌(鄕村)에서의 노동의 즐거움, 초야(草野)에서의 농사일의 즐거움
* 구성 : 평시조 8수가 연첩(連疊)으로 구성되어 있음.
-시조의 내용을 곡별로 살펴보면,
-첫 곡은 서문격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나타내고, (대상의 나열)
-두 번째 곡에서 다섯 번째 곡까지는 춘(春)·하(夏)·추(秋)·동(冬) 사시(四時)에 걸쳐 농민이 해야 할 농사일의 노고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그 다음 여섯 번째 곡에서 여덟 번째 곡까지는 하루를 새벽·낮·저녁으로 나누어 일하는 즐거움을 구성지게 노래함.
▣ 이해와 감상
- 1664년(현종 5) 이휘일(李徽逸)이 지은 시조. 국문필사본. 작자가 45세 때 지은 이 작품은 농촌의 풍경과 농민의 노고를 소재로 하여 8곡의 단가(短歌), 곧 평시조 8수가 연첩(連疊)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서전가팔곡후 書田家八曲後〉에, “나는 농사 짓는 사람은 아니나, 전원에 오래 있어 농사일을 익히 알므로 본 것을 노래에 나타낸다. 비록 그 성향(聲響)의 느리고 빠름이 절주(節奏)와 격조(格調)에 다 맞지는 않지만, 마을의 음탕하고 태만한 소리에 비하면 나을 것이다. 그래서 곁에 있는 아이들로 하여금 익혀 노래하게 하고 수시로 들으며 스스로 즐기려 한다(存齋集 권4).”라고 하여, 이 시조의 저작동기를 밝히고 있다.
- 시조의 내용을 곡별로 살펴보면, 첫 곡은 서문격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나타내고, 두 번째 곡에서 다섯 번째 곡까지는 춘(春)·하(夏)·추(秋)·동(冬) 사시에 걸쳐 농민이 해야 할 농사일의 노고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그 다음 여섯 번째 곡에서 여덟 번째 곡까지는 하루를 새벽·낮·저녁으로 나누어 일하는 즐거움을 구성지게 노래하였다.
- 이상과 같이 구성된 〈전가팔곡〉의 시조는 농가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잘 대변하고 있어서, 마치 시경 詩經 의 빈풍(羚風) 칠월장(七月章)을 축소해 놓은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또한, 한자투성이로 된 재래의 고시조와는 달리 순수한 우리말로 적은 점이 특징이다.
- 첫 곡의 “우국성심(憂國誠心)은 연풍(年豊)을 원하노라”와 세 번째 곡의 “입립신고(粒粒辛苦 : 곡식 한 알 한 알에 농부의 고생이 스며 있음.) 어늬 분이 알아실고”에 나타난 정도가 한자어로 적힌 것의 전부이다.
- 이 시조는 본래 존재집 에 수록되지 않은 채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1960년 김사엽(金思燁)에 의하여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되었다. 이후 1988년 여강출판사(驪江出版社)에서 영인본으로 낸 존재집에 실리게 되었다.
■ 내용 연구
세상에 버린(버려진) 몸이 견무(논밭의 이랑, 여기서는 초야, 농촌에서 일하는 것)에 늙어가니
바깥일(세상 돌아가는 정세, 부귀영화에 관심을 갖는 일) 내 모르고(알 수 없고)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고
이 (농촌생활)속에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스러운 마음은 풍년을 원하노라.
농부가 찾아와 이르되, 봄이 왔으니 밭에 가세
앞집에 쇼보(소의 쟁기로 해석) 잡고, 뒷집에 따비(쟁기)를 가져오네.
두어라(옛 시가에서, 어떤 일이 필요하지 아니하거나 스스로의 마음을 달랠 때 영탄조로 하는 말) 내 집부터 하랴 남이 (먼저)하니 더욱 좋다.
여름날 더운 때에 (햇빛에) 달아있는 땅이 (마치) 불이로다.(불처럼 뜨겁다)
밭고랑을 매자 하니 땀이 흘러 땅에 떨어지네.
어사와('어여차'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 곡식 알맹이 하나하나에 맺힌 고생과 괴로움을 어느 분이 알아주실까?
가을이 되어 곡식을 보니 좋기도 좋구나.
내 힘으로 이룬 것이어서 먹어도 맛있구나.
이 밖에(농사짓는 일) 천사만종('사'란 한 수레에 메는 네 마리의 말이란 뜻이고, '종'은 옛날 무게의 단위. 호화로운 마차 천 대와 쌀 만 섬의 봉급이란 뜻으로 부귀 영화를 말함)을 부러워하여 무엇하리오.
밤에는 삿자리(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를 꼬고 한낮에는 띠풀을 베어
초가집 잡아매고 농기구 좀 손질하여라(추스리다. 정비하다, 손질하다)
내년에 봄 온다 하거든 곧 (농사일에) 마음과 힘을 다하리라.
새벽이 밝아오자 지빠귀가 소리한다.(온갖 것들이 소리한다라는 뜻)
일어나거라 아이들아(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은 아님) 밭을 살펴보러 가자꾸나
밤사이 이슬 기운에 얼마나 (곡식이) 길어났는고 하노라.
보리밥 지어 담고 명아주국을 끓여
배를 곯는(배가 고픈) 농부들을 진시(원래 뜻은 진즉이라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제 때인 듯)에 먹이어라.
아이야 한 그릇 올려라. (내가) 친히 맛보고 보내리라.
서산에 해 떨어지고 풀끝에 이슬이 맺힌다.
호미를 둘러메고 달을 등에 지고 집에 돌아가자꾸나
이 중에 (농사일의) 즐거운 뜻을 남들에게 말하여 무엇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