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연구

예멘의 지리와/역사

박송 입니다. 2022. 9. 22. 13:01

예멘의 지리와 역사

 

 

예멘 알후다이다 모스크

 

예멘의 지리와 역사

예멘이라는 나라가 있죠? 들어보셨을 거예요. 예멘, 많이 들어보지 않은 나라인데 저희가 예멘이라는 나라를 2018년부터 뉴스에 많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예멘 이야기가 나온 것이 예멘 출신 난민들이 제주도에 입국했다.라고 하면서 티브이에 나오기 시작한 국가 예멘입니다. 왜 예멘에서 난민이 발생했을까? 를 저희가 이제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러면 예멘은 어떤 땅인가? 예멘, 예멘이 유명한 게 3가지가 있어요. 예멘은 성경에도 나오는 땅입니다. 솔로몬 시대부터 거기에 국가가 있었고 왕국이 있었던 곳이 바로 예멘입니다. 솔로몬 시절이라고 하면 기원전 벌써 10세기가 되겠죠. 저는 안 읽어봤으나 성경에 이미 나와 있다고 그래요.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러 찾아왔다.라는 이야기가 있고 솔로몬 왕과 이야기를 했다.라는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도 나온다고 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구절을 보면 땅 끝에서 시바 여왕이 팔레스타인이죠, 솔로몬 왕을 찾아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땅 끝, 거기가 어디냐면 현재의 예멘 국가, 예멘이라고 하는 나라가 위치하는 곳으로 보시면 돼요. 이게 의미하는 게 여러 가지가 있어요. 땅 끝이라는데 아라비아 반도의 끝에서부터 출발한 시바 여왕이 3,000KM 정도를 이동을 해서 솔로몬 왕을 만난 거죠? 이 아라비아 반도를 통과할 수 있는 그런 문명을 가진 그런 국가가 존재했던 곳이 바로 예멘입니다. 그리고 또 예멘이 유명한 것 중에 하나가 여기는 유향 그리고 몰약이라는 과거에는 굉장히 귀한 취급을 받았었던 향료 생산의 본거지로 보시면 됩니다.

예맨 민족과 지리

현재는 아로마 오일 같은 걸로 많이 사용을 하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굉장히 비싼 값을 치르고 사야 했었던 그런 사치품이죠? 유향과 몰약이 생산되는 그런 지역이고요,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예멘 일대를 행복한 아라비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유명한 게 바로 모카커피입니다. 우리가 모카커피라고 하면은 우리가 생각 한때는 이런 향이 나는 커피가 모카커피야. 하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 모카는 무엇을 의미하냐면 항구 이름입니다. 모카 항이 예멘에 있습니다. 아라비카 종이라고 하는 커피의 일반적인 종류 중에 하난데요, 아라비카 종의 모카커피가 예멘을 통해서 다른 유럽지역으로 수출되면서 예멘의 모카 항을 통해서 수출되면서 이게 모카커피라고 하는 그런 별칭을 얻게 됩니다. 굉장히 맛이 좋아서 세계 3대 커피 중에 하나로 칭해졌었던 모카커피가 나는 곳, 거기가 바로 모카커피가 생산되기도 하고 모카커피가 이동해서 오는 거기가 바로 예멘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난민으로 알려져 있는 난민이 거기에서 많이 오는구나, 난민이 발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예멘이 이렇게 예전부터 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향료를 가지고 있고 커피도 났었던 그런 지역이다.라고 이해를 하시면은 됩니다. 예멘에서 행복한 아라비아 땅이 왜 저렇게 내전의 땅이 되었는지를 이제 확인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예멘이 어떤 곳인지를 먼저 살펴볼게요.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의 제일 남쪽, 그중에서 이제 서쪽 지역 동쪽에는 오만이라는 나라가 있고요, 제일 아래 서쪽 지역에 예멘이 있습니다. 그 예멘의 바로 위에는 굉장히 큰 나라죠? 사우디아라비아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예멘의 지형을 보시면은 바로 바다를 두면을 끼고 있죠? 바다를 끼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저쪽 밑에는 인도양이 있어요. 인도양에서는 인도양 몬순이 발달해서 왔다 갔다 해요. 몬순이 발달하는 겨울에는 남부지역에서는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이런 지역이에요. 우리가 사우디 지역,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이렇게 이야기를 할 때 여기는 건조한 곳이야.라고 하는 통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 바닷가 지역에서는 비가 오기도 하는 그리고 내륙의 고지대에서는 심지어 온대기후까지 온화한 온대기후까지 발달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사막에 비해서 너무나도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었던 그런 지역이 예멘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건조한 아라비아 반도 내에서 여기는 그래도 녹색을 볼 수 있는 지역, 그래서 사람들이 번창할 수 있었던 지역, 거기가 바로 예멘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녹색 예멘이라고 까지 불렸었던 곳이 이 지역으로 보시면 돼요.

예맨 국가 소개

수도는 사나고요, 그리고 예멘에서 지도를 가만히 잘 보시면 아프리카 쪽으로 톡 튀어나온 부분이 있습니다. 저기를 통해서 아프리카로 들어가면 굉장히 가깝겠죠? 저기가 어디냐면요, 바브 엘 만 데브 해협 이름이 조금 어렵죠? 눈물의 관문이라고 아랍어를 풀어쓰면 눈물의 관문입니다. 눈물의 관문이라고 불리는 바브 엘 만 데브 해협입니다. 그래서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를 최단거리고 갈 수 있는 그런 지역이 바로 저 해협으로 보시면 되고요, 약 26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과거에 시바 왕국이 얼마나 컸지? 어디까지 영역이었지?라고 보시면은 시바 왕국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바 여왕에 대한 이야기는 또 에티오피아 쪽에서도 굉장히 많이 나와요. 여기가 예멘지역에서도 활동을 했었지만 바로 저쪽 바로 건너서 저 해협을 건너서 가면 에티오피아 지역까지 다스렸었던 그 지역이 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예멘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지역이 한 군데 더 있어요. 거기가 어디냐면 아덴이라고 하는 항구 도시가 있습니다. 이거는 남부에 위치해 있는데요. 이 아덴은 자연적으로 천해의 양항으로 보시면 돼요. 항구가 될 만한 조건을 굉장히 잘 갖추고 있는 그런 지역이고요, 우리나라는 소말리아 해적이 우리나라 선박을 납치했었던 사건이 벌어졌었던 그 아덴만 인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가 항구로써 위치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특히나 인도로 가기 굉장히 좋은 루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홍해를 지나서 인도로 갈 수 있는 루트입니다. 그 관문에 있었기 때문에 그 아덴을 굉장히 눈독 들였던 국가가 있었으니 거기는 바로 영국입니다. 인도를 자기네들이 점령을 하고 거기에서 물자를 수탈해 갈 때 굉장히 좋은 통로로 사용할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실제로 영국에서는 이 아덴을 1800년대 중반, 1839년부터 여기를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자 그러면 여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냐? 대부분 아랍 사람들입니다.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아랍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살고 있고요 대다수는 그냥 아랍인들, 거기에다가 이쪽 에티오피아와 굉장히 가깝다는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 해협을 통하면 은 26km밖에 안 걸려요. 그러다 보니 그쪽에 있던 사람들이 약간 혼혈이 돼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타났듯이 저쪽 팔레스타인까지 올라가기도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유대계 주민도 소수 존재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거기에다가 흑인도 조금 존재하는 약간의 다민족, 그렇지만 아랍인이 대다수인 지역이 바로 예멘이에요.

 

북예멘이라고도 통칭되던 예멘 아랍 공화국은 현재 예멘의 홍해를 끼고 서쪽에 자리잡고 있던 국가로서, 수도는 사나였다.

예멘 민주인민공화국, 곧 남예멘은 아라비아 해에 속한 아덴 만을 따라 북예멘의 동쪽 편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수도는 아덴이었다. 이 두 지역은 20세기 대부분의 시기에 토착세력과 외국세력 모두를 통틀어 각기 다른 통치권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때문에 계속해서 별도의 정치구역으로 갈라진 상태로 존속해왔다.

북예멘 지역에 있던 미네아(마인) 왕국은 일찍이 BC 4세기 무렵 이집트와 교역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는 바빌로니아와 거래를 한 흔적이 엿보일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왕국으로서, 유향·후추 등 지중해 동부지역에서 소비되던 농산물 재배 및 수출을 통해 큰 번영을 누렸다. 미네아 왕국 남동쪽에는 사바 왕국이 번성했다. 마리브에 설치한 댐을 통해 넓은 지역에 효과적으로 물을 공급한 관개시설로 유명한 사바 왕국은 한때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BC 1세기 이후, 육로를 통해 이루어지던 향료교역이 수로 쪽으로 거점을 옮기고 마리브 댐이 황폐해지면서 몰락하고 말았다. 한편 고대의 남예멘은 카타반 왕국과 하드라마우트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BC 1000). 이들 왕국은 유향과 몰약 거래로 큰 이윤을 남겼으며, 넓은 지역에 걸쳐 관개시설을 설치하여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등 오랫동안 남예멘 지역에서 번성했다.

그러나 카타반 왕국은 BC 5세기말경 사바 왕국에게 멸망되었다.

그후 남(南)아라비아 전체는 히미아르 왕국(BC 100경~AD 525)의 영토가 되었고, 한동안 사나가 수도 역할을 하기도 했다.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유대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 살기도 했다. 4세기 중반경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개종하면서 로마의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찾아들었으나, 히미아르 왕국은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했고 이때문에 현재의 에티오피아에 있던 그리스도교 왕국 아비시니아에게 525년 멸망당하고 말았다.

575년에는 페르시아 사산 왕조의 영토가 되었다. 7세기 중엽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이슬람교로 개종했으나 칼리프에게 복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남예멘에서는 현지를 다스리던 통치자와 군사지도자들 사이에 패권다툼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북예멘 지역에서도 이슬람 세력권에 편입된 시기의 초반부터 분쟁이 있었다.

632년 반란이 일어났고, 9세기 후반쯤 시아파의 이맘 알 하디가 알리드 자이드 왕조를 세웠다. 이 왕가의 일족들은 1962년까지 북예멘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1173~1229년에는 이집트의 아이유브 왕조가 예멘 지역을 통치했으며, 그후 1229~1451년에는 아이유브 왕조의 속국이던 라술 왕조에게 관할권이 넘어갔다. 라술 왕조가 통치하던 시기에 과학·농경·문학·건축 등 여러 방면에서 큰 발전을 이루면서 황금기를 누리다가, 북예멘에 근거를 둔 부족으로서 남예멘 지역 상당 부분까지 세력을 넓혔던 타히르 왕조의 통치권 아래 들어갔다.

16세기초에 접어들면서 예멘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에게서 공격을 받았다. 남예멘을 제외한 북예멘 지역이 맘루크 왕조에게 점령된 상태로 있다가 1517년 예멘 전체가 오스만 제국에게 넘어갔다. 1635년 북예멘의 자이드 왕조가 투르크 세력을 몰아내고 남예멘까지 장악했으나, 자이드 왕조는 1735년이 지나면서 남예멘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남예멘 지역은 대립하는 부족 우두머리들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세력권으로 분리된 상태에 있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19세기 중반 개혁주의적 움직임을 보이던 와하비야 왕조의 세력과 이집트의 무하마드 알리가 추진하던 제국주의적 기도 등으로부터 아라비아 반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다시 예멘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들은 1872년이 되어서야 사나를 차지했는데, 그동안 무하마드 알리의 움직임이 영국을 끌어들여 1839년 영국이 아덴을 점령하는 상황으로 연결되었다.

아덴은 영국령 봄베이 주 관할 아래 있다가 1937년 영국 정부의 직할식민지 및 보호령이 되었다. 1914년 영국-투르크 사이의 협정에 따라 북예멘과 영국령 아덴 보호구 사이에 경계를 확정지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 문제는 1934년이 되어서야 해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투르크가 패전한 후 북예멘은 독립을 획득했다. 자이드 왕조가 아덴과 영국보호령을 포함한 예멘 지역 전체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으나, 1962년 북예멘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몰락하고 예멘 아랍 공화국 수립이 선포되었다. 북예멘 정부는 기본적으로 부족적·종교적 색채가 강하고 친(親)서방 경향을 띠고 있었지만 소련에서 원조를 받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덴 시는 1963년 창설된 남(南)아라비아 연맹에 속해 있었다.

발기인 역할을 맡고 있던 영국은 이 연맹에게 1968년까지 독립할 수 있게 한다는 약속에 따라 서서히 이 지역에서 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철수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던 1967년 마르크스주의 색채를 띤 민족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이 약화되고 있던 연맹을 장악하고, 같은 해 남예멘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1970년에 예멘 민주인민공화국으로 개칭한 남예멘은 비(非)종교적인 마르크스주의 국가로서 북예멘과 계속 긴장상태로 대치했고, 1970, 1980년대에 걸친 기간에 여러 차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남예멘은 북예멘에 비해 정치불안의 정도가 심각한 편으로, 여러 번의 쿠데타를 경험했으며, 1986년에는 짧은 기간 지속된 내란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는 참상을 겪기도 했다. 북예멘이 친(親)서방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던 반면, 남예멘 정부는 당시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89년 남예멘과 북예멘은 하나의 국가로 통일한다는 합의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각각의 의회가 이를 승인함에 따라 북예멘과 남예멘은 1990년 5월 22일 예멘, 또는 예멘 공화국이라는 이름의 통일된 국가로 새롭게 탄생했다.

예멘 알후다이다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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