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섬나라

우도/이야기

박송 입니다. 2022. 3. 12. 16:19

우도 이야기… 

 

제주 성산항에서 배로 10여분이면 닿는 우도(牛島)는 언제부턴가 제주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됐다. ‘우도를 안 갔다면 제주의 반만 본 것’이라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성산 일출봉 등과 묶어 2시간여 만에 휙하고 둘러보고 마는 ‘패스트 여행지’로 인식된 게 사실이다.

봄은 아직 이른 3월 초,제주 80여개 부속 섬 중에 가장 크다지만 도 면적의 0.3%에 불과한 우도 나들이에 나섰다. 우도의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가꾸어가는 토박이들의 우도 사랑도 엿봤다.

◆갈매기·까마귀 떠나면도는 봄

우도 여행객이 제일 먼저 만나는 건 도항선이다. 차를 싣고 가든 몸만 이동하든 배를 타야 한다. 배 없이 우도에 들어가는 건 바다 밑으로 이어진 전기와 물뿐이다. 우도에 해저로 전기가 들어온 건 1985년, 해저 수도가 놓인 건 2010년이다.

 

우도의 하루는 도항선 운항시간에 맞춰져 있다. 뭍과 처음 닿는 오전 7시무렵 항 주변이 바빠지고, 오후 5시 30분 막배가 뜨면 벌써 내일을 준비한다. 

 

제주 성산항에서 우도 천진항을 오가는 우도훼리 2호의 선장 강승협(46)씨는 20년 전 도항사에 들어와 12년째 배를 몰고 있다. 강씨는 “제주에서 우도 천진항까지 통상 10분 걸리는데, 조류나 바람에 따라 최대 15분 정도 걸린다”며 “파도를 잘 타는 선장이 유능한 게 아니라 큰 파도를 피해 운항하는 선장이 유능하다. 그래서 2∼3분, 길게는 5분 정도 운항 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루 15번 정도 우도를 오간다.

 

우도가 고향인 강씨는 고교 진학을 위해 제주로 유학갔다가 군 제대 후 낙향해 도항선과 함께하고 있다. 운전실 문에 ‘새우깡 판매’라고 쓰여 있다. 한쪽엔 새우깡 박스가 두어 개 있다. 갈매기를 꾀는 새우깡 판매도 강씨 몫이다. 그는 “새우깡도 ‘한철’”이라 했다. “도항선에서 갈매기에 새우깡을 주는 것도 3월 말까지”라는 것. 4월부터 산란기라서 갈매기 수가 급격히 줄다 사라지고, 늦여름인 8월 말에야 갈매기는 다시 돌아온다. 배 위에 갈매기가 뜸해지면 봄이 왔음을, 갈매기가 다시 보이면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강씨의 추천 여행지는 우도봉, 검멀레 해변, 톨칸이 해변, 서빈백사(산호사 해변) 등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여유가 있다면 오래전 우도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마을 안쪽을 둘러보라”고 강조했다. 물이 귀할 때 빗물을 받아 쓰던 자리가 아직 남아 있다. 바닷가 주변에 널린 음식점은 여행객 대상이라 막배가 뜨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우도 토박이들은 그래서 어둠이 내리기 전에 섬 중앙의 식당으로 몰린다. 현지인 맛집도 섬 중앙에 몰려 있다.

 

우도에 차를 타고 오지 않았다면 걷거나 스쿠터·전기자동차·자전거 등을 탄다. 물론 공영버스도 있는데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았다. 우도를 2시간 만에 돌며 안내해 준 공영버스 기사 고시종(62)씨는 코로나19 탓에 ‘알바’로 일한다. 정규 기사는 한때 20여명에 달했지만 이젠 2명 정도만 남고 모두 권고사직됐다. 고씨는 “보통 단체 여행하러 오면 2시간 정도 잡는다”면서도 “시간이 짧아서 아쉬울 때가 많다”고 했다. 입담이 좋은 고씨는 우도 최고령 해녀였던 어머니 양성심(96)씨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산다. 양씨는 지난해 3월을 끝으로 물질을 그만뒀지만 여전히 혼자 식사를 해결할 정도로 건강하다. 고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우도는 4개리에 1000여가구 1800여명이 산다. 초중학교까지만 있어서 고교 때부터는 해외(우도 밖)로 나가야 한다. 우도에는 장례식장이 없다. 고씨가 어릴 적만 해도 우도봉 근처 아무 데나 묘를 썼지만, 이젠 화장터가 있는 제주로 나간다. 우도봉 산책에서는 산담이 둘러쳐진 무덤도 만난다. 짐승이나 가축이 훼손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목욕탕도 병원도 없다. 마을에 짓던 찜질방은 코로나19로 공사가 중단됐다. 

 

버스가 우도 복판을 가로지르자 땅콩 밭 곳곳에 까마귀가 진을 쳤다. 고씨는 “10월 말에 날아온 까마귀는 4월쯤 떠난다”고 했다. 바다의 갈매기와 섬의 까마귀가 모두 떠나면 우도에 봄이 온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가꾸는 달그리안과 우도등대

 

보트 선착장에 닿았다. 모터보트를 타러가는 길에 파도소리가 가까워지자 불 냄새가 진동한다. 뿔소라 구이가 먹음직스럽다. 6개 3만원이다. 식당보다 조금 비싸다.

 

모터보트 운전대를 잡은 김동일(48)씨는 “썰물이면 우도 8경 중 7경인 동안경굴(東岸鯨窟) 검멀래 동굴에 1000명은 들어갈 수 있다”고 소개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넓은 곳에서 음악회도 열린다.

 

보트가 내달리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우도 해안가를 돌며 코끼리 바위, 말뚝 바위, 용머리 바위 등을 둘러보는데 바위에 붙어 낚시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한 타임에 5시간씩 하루에 두 타임을 저렇게 서서 낚시를 한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바다 위에 떠있는 주황색 깃발은 아래에 잠수함 관광이 진행 중이라는 표시다.

우도 8경 중 1경인 주간명월(晝間明月) ‘달그리안’에 닿았다. 햇빛이 물에 꺾이면서 해식 동굴 천정을 비춰 낮에 달이 뜬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처음 달그리안을 발견한 사람은 누굴까.

달그리안은 섬 안에도 있다.

2017년 12월부터 우도 토박이김영진(52)씨가 계간으로 발간하는 마을신문 이름도 ‘달그리안’이다. 대구 출신인 아내 송희정(50)씨 등 예술, 건축, 농업 등 여러 직종에 종사하는 주민 9명이 기자로 활약한다. 우도를 떠나야 하는 고교 진학 전까지 학생기자로 일하는 초·중학생들도 있다. 우도 출신들은 ‘두 숫자의 조합’으로 소개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유일해 초교-중학교 졸업 연도를 함께 나열하는 것. ‘49-36’이라면 우도 초교 49회, 우도 중학교 36회 졸업생이다.  

 

달그리안은 지난해 가을·겨울 통합호(13호)에 이어 다음달 2022년 봄호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창간 배경에 대해 “2017년 우도에 2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며 “관광 활성화로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고 개발 위주로 변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우도의 마을 공동체 문화와 정서를 기억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고 소개했다. 달그리안은 오프라인으로만 발간한다. 우도의 각 집에 배포하고, 도항장 휴게소에 비치된다.

제주 등에서 문화 활동을 하던 김씨는 2009년 낙향해 땅콩, 마늘, 쪽파 등 농사를 했고, 도항선사에서 일하다 지금은 민박업을 하고 있다. 계간 달그리안의 간판 코너는 ‘삶의 도서관-어른에게 길을 묻다’와 ‘해녀를 기록하다’ 등이다. 마을신문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까 고민하다 힘겹게 살아온 우도 어른들 모습을 담기 위해 삶의 도서관 코너를 만들었다. 우도 어른들을 인터뷰하며 확인한 옛날 앨범 속 사진 한 장을 꺼내어 소개하기도 한다. 김씨는 “어릴 적 풍경이 정감 있게 다가오는 사진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잃어가는 모습들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달그리안 기자들은 아직까진 무보수 봉사 활동을 한다. 마을주민·출향민·구독자의 후원금과 행정보조 지원금으로 운영된다. 한 달에 1만원을 내거나, 1년에 10만원을 후원하는 등 십시일반 모인 돈은 2000부 발행과 배송에 쓰이고 나면 바닥난다. 김씨는 “아직 역량은 안 되지만 영상 콘텐츠를 추가하는 게 올해 목표”라고 말했다.

 

우도가 고향인 강은주(48·여)씨는 우도 올레 길에 널부러진 쓰레기들이 안쓰러웠다. 2020년 1월 우도 초·중교 선후배 7명이 의기투합, 두 달에 한 번 쓰레기 줍기 모임을 시작했다. 강씨는 “우도에는 여행객들이 버린 쓰레기도 있고 떠밀려온 해양 쓰레기도 많다”며 “우도 올레 길, 밭담길, 마을 안길 등 쓰레기가 많은 장소를 정해 2∼3시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다”고 말했다. 바람이 심한 겨울에는 해양 쓰레기가 많아 우도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해양 정화활동에 나선 지 2년이 된 지난 1월 ‘우도등대’로 이름을 짓고 강씨는 회장이 됐다. 회원은 고작 12명으로 늘었지만 제주의 다른 자원봉사단체와 연대하는 등 노하우가 쌓였다.

쓰레기는 술병, 물병, 음료병이 대부분이다. 양식부표, 낚시어구, 배에서 버리는 쓰레기 등도 상당하다. 우도등대 회원들은 오는 13일, 2년여 전 첫 쓰레기 줍기에 나선 비양도 청소에 나선다. 강씨는 “우도 곳곳을 청소하다 보니 한 바퀴 돌아 다시 비양도”라며 “한번 정화활동할 때마다 40㎏짜리 청소용 포대 70∼80개가 꽉 차고, 어떨 땐 준비한 100개를 다 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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