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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지어를 풀다.

박송 입니다. 2020. 12. 27. 15:40

브래지어를 풀다/김아인

소식 들었어? 00씨가 유방암 절제수술을 했다는데.”

어머, 어쩌다가. 난 금시초문이야.”

그래도 다행히 수술이 잘 됐다나봐.”

전화선을 타고 건너오는 친구의 뒷말에 바짝 긴장한 마음을 푼다. 항암치료 받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까까머리가 되었단다. 그 모습을 자신의 SNS에다 올렸고, 동문들 사이로 한 입 두 입 퍼져나간 모양이다. 본인은 무슨 마음에서 공개를 했는지 몰라도 사진을 바라본 이들은 마음이 아프다 못해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심각하지 않으니까 그랬겠지, 내 나름대로 긍정의 해석을 덧붙이며 긴 통화를 끝냈다. ‘나 괜찮아자기암시거나 자기격려 같은 거 아니었을까? 머리를 민 그 심정은 오죽했겠나 생각하니 너무 짠하다.

여성의 상징인 가슴 한쪽을 도려냈다는 비보는 같은 여자로서 충격일 수밖에 없다. 믿어지지 않는 나쁜 소식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을 붙잡고 괜한 꼬투리를 잡는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소원해졌지만 그녀와는 만학시절 한때 베스트프렌드라고 불릴 정도로 아주 친하게 어울렸었다. 그만큼 더 놀랍고 안타까운 것이리라. 수화기를 놓은 손이 별안간 내 가슴으로 간다. 오랫동안 무심코 지낸 그곳의 안부가 궁금해서다. 염려 따위는 끼어들 수 없도록 점자를 읽어가듯이 가만가만 어루만져본다.

몸이 열린다는 것은 얼마나 거룩한가. 나는 두 녀석을 모두 조산했다. 예정일이 한참 남았는데 양수가 다 빠져버렸고 그럼에도 몸이 열리지 않아서 제왕절개로 낳았다. 그 바람에 초유만 겨우 몇 방울 먹이고 참젖을 생억지로 뗐다. 병원생활을 하는 일주일 동안 항생제며 진통제 등의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모유 수유를 고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그럴만한 철도 용기도 부족했다. 그나마 아이들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 분유를 잘 먹었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산모인 나한테서 일어났다. 큰애를 낳고 무사히 퇴원을 했으나 몸조리를 하던 중에 갑자기 열이 끓어올라 40도를 넘나들었다. 무지몽매한 나는 그게 당연한 증상인 줄 알고 참았다. 가뜩이나 엄살 심한 겁쟁이가 필요 없는 인내심을 발휘한 것이다.

이틀 뒤에 병원으로 갔다. 친절히 맞이해도 두려움이 앞서는 곳 아닌가. 그런데 의사는 이 지경이 되도록 뭐하다 이제야 왔냐고, 마치 누이 나무라듯이 다짜고짜 야단부터 쳤다. 유종(乳腫)이었다. 젖을 삭히는 마이신을 먹고 안심한 사이 제대로 가라앉지 않아서 퉁퉁 부었다가 곪은 상태였다. 계속해서 도는 젖이 배출이 안 되니까 젖몸살이 났고 그게 곪느라 고열이 끓었던 것이다. 압축기로 뽑아내고 마사지를 해줘야 한다는데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출산하면 원래 그런 거려니, 무지와 방심으로 화를 키운 격이었다. 부모가 되긴 했어도 남편이나 나나 미성숙한 어른이었던 거다. 벌겋게 곪은 부위를 연세 지긋한 의사선생님은 마취는커녕 생으로 찢어 피고름을 짜내듯이 훑어내고 심지를 박았다. 찢어진 생살이 아파서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30여 분 동안 울음이 그쳐지지 않았다.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질병들이 있다. 내 몸에서 눈곱만한 것이라도 뭔가를 감지했다는 것은 위험을 알리는 신호다. 그 자각을 놓치지 말아야 내일을 보장받을 수 있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치다. 건널목을 건널 때 아스라이 들리는 신호음 같은 덜컥거림을 내 몸이 먼저 알고 알려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자정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던 젊은 시절에는 예사로 넘겨도 별다른 탈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순이 코앞인 지금은 미세한 기별에도 불안이 검은 안개처럼 둥둥 떠다니며 염려증을 유발시킨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처럼 일을 크게 키우는 꼴이 될까봐 건강 프로그램 따위에 쫑긋 귀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상이 낯설고 수긍하기 어려우면서도 서서히 익숙해져간다는 사실감이 서글프다.

브래지어 착용이 유방암 발생률을 70%나 높인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는다. 민감하게 다가온다. 요즘 들어 유난히 유방암 수술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리기 때문일 게다. 여자에게 브래지어는 족쇄처럼 느껴지는 속옷임이 분명하다. 족쇄가 억압이 아니라 안전성을 확보해준다고 믿는다. 와이어와 후크로 단단히 결박해야만 안심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니까 여자에게 브래지어는 단순히 언더웨어란 개념을 넘어 신체보호와 여성미를 동시에 아우르는 의복이다. 아직 브래지어 착용과 유방암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입증된 논문이 나온 것은 아니라한다. 하지만 몸을 옥죄는 지나친 타이트함이 유방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근거들만으로도 당장 벗어던져야 할 것 같은 필요성이 절박해진다. 원시적인 차림일수록 혈액순환이 원활하여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지극히 설득력 있게 와 닿는다.

이쯤 되면 브래지어를 선정적인 용품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인간애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일이다. 딜레마랄까? 건강을 위한답시고 과감히 벗어버리자니 구경거리 제공이 될 것 같고 예를 차리자니 소중한 내 건강을 위협받을 것 같다. 어느덧 사랑도 시들해진 나이, 샤워할 때 말고는 좀체 풀 일이 없지만 오늘 실험삼아서 브래지어를 푼다. 잠잘 때조차 꼭꼭 싸여 있던 그것이 해방을 맞는 순간이다. 아뿔싸! 과잉친절이 불편한지 온 말초신경이 가슴께로 모여든다. 압박의 빗장을 풀어주면 자유로워할 줄 알았건만 뜻하지 않은 배려가 당혹스러운가보다. 예민해진 세포들이 방어 태세에 돌입한 듯 오소소 날을 세운다. 예상 못한 반응에 도리어 내가 더 움찔한다.

사람만큼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동물도 없지 싶다. 암모니아 독성에 질식할 것 같은 재래식 화장실의 경험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코를 틀어막고 들어가지만 금세 익숙해지듯이 요즘은 집에서 아예 노브라 상태로 지낸다. 허전하고 민망하던 기분은 온데간데없고 풀어진 가슴이 느슨한 해방감을 즐긴다. 이렇게 편한 걸 진작 풀지 못한 것이 아쉬울 지경이다. 가끔 외출할 때 어쩔 수 없이 그걸 걸칠라치면 오히려 답답증을 느낀다. 가는 봉제선 하나에도 살갗이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무슨 일이든 걱정할수록 걱정은 더 무서운 무게로 억누르는 법 아닐까? 건강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가설과 추론에 귓바퀴가 얇아지는 나라지만 그렇다고 너무 예민하게 빠져들 이유는 없을 거 같다.

수필집 브래지어를 풀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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