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 8. 10 서울~1932. 10. 10.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 아버지는 진규(鎭奎)이다. 용산 문창보통학교(文昌普通學校:지금의 효창초등학교)를 마친 뒤, 가정형편상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1915년 일본인 상점점원으로 취직했다. 1918년 용산철도국 소속의 만선철도(滿鮮鐵道) 기차운전견습생으로 근무했다. 1919년 3·1운동을 목격하면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스스로 서약했다. 1924년 11월 자기희생을 통해 민족과 국가의 독립을 성취시키겠다고 각오하고 적을 알기 위해서는 적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형 범태(範泰)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大阪]에서 철공소 직공으로 일하다가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로 이름을 바꾼 뒤, 도쿄[東京]·나고야[名古屋]·요코하마[橫浜] 등지를 전전하면서 일본어를 익히고 상점 점원, 철공소 직공, 잡역부, 일용살이 등을 하며 국내외 정세를 관찰하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가난과 병고 속에서 동지도 없이 혼자의 힘으로 대사를 도모한다는 것이 역부족임을 느끼고, 6~7년간에 걸친 일본에서의 긴 방황을 끝내고 독립운동가들의 집결지인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로 가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결단을 내린 그는 1931년 1월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하이에 도착한 즉시 상하이 한인거류민단을 찾아가서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민단 간부들은 일본말과 한국말을 섞어쓰고 임시정부를 가정부(假政府)라고 일본식으로 부르는 등 그의 언행이 남다른 데 대해 의심을 품고 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구(金九)의 주선으로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한 뒤 일본 왕의 암살을 자원하여 1년 이내에 이를 실행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당장 거사자금이 없었으므로 상하이의 일본인 인쇄소와 악기점 등에서 일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재미동포로부터 자금이 도착한 데 이어 상해병공창(上海兵工廠)의 주임으로 있던 중국군 대령 김홍일(金弘壹)과 중국인 류즈[劉峙]로부터 수류탄 2개를 입수함으로써 거사 준비가 마무리되자, 1931년 12월 13일 안공근(安恭根)의 집에서 두 손에 수류탄을 들고 일본 왕 히로히토[裕仁]를 처단할 것을 선서했다. 수류탄과 거사자금 300원을 지니고 일본으로 떠나 이튿날 고베[神戶]에 입항한 그는 오사카로 옮겨 21일까지 머물다가 22일 밤 도쿄에 도착했다. 일본 왕 히로히토가 만주국 괴뢰황제 푸이[溥儀]와 도쿄 교외 요요키[代代木]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거행한다는 〈아사히 신문 朝日新聞〉의 보도기사를 확인하고 상하이의 김구에게 관병식을 기회로 거사를 결행한다는 뜻을 알리는 암호전문을 타전했으며, 요요키 연병장에서 거행된 예행연습을 미리 둘러보았다. 1932년 1월 8일 도쿄 고지마치 구[麴町區] 밖 사쿠라다몬[桜田門] 앞에서 시민을 가장하여 기다리던 그는 오후 2시에 관병식을 마친 후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일왕의 행렬이 나타나자, 군중 속에서 달려나와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일왕이 탄 마차를 정확히 식별하지 못한 데다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기수와 근위병에게 부상을 입혔을 뿐 일왕을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그 자리에서 품안에 있던 태극기를 꺼내 '대한독립 만세'를 3번 부른 뒤 체포되었다. 이봉창은 일본 경찰의 심문에 일체 불응한 가운데 예심조차 거치지 않고 진행된 그해 10월의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한인애국단의 첫번째 거사였던 이봉창의 의거는 예상 밖의 파문을 일으켰다. 중국의 각 신문들은 한국인의 애국적 기개에 대해 매우 고무적으로 대서특필했으며, 이에 격분한 일본 당국은 군경을 동원하여 중국 신문사를 습격했다. 또한 이 의거는 당시 침체상태에 빠져 있던 임시정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으며, 임시정부와 중국 정부의 항일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었다. 일본은 이 의거의 영향으로 한층 거세진 중국의 항일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니치렌종[一蓮宗] 승려 살해사건을 빌미로 상하이사변[上海事變]을 일으켰다. 1962년 이봉창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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