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딘에 대하여
우선 살라딘의 진짜 이름은 "살라흐 알딘"입니다. 빠르게 읽어 보세요. 그럼 "살라딘"으로 발음됩니다...^^
그 전에 당시 십자군 상황을 좀 말하면 이렇습니다... 당시 아랍사회(중동의 지중해연안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겠습니다)는 거대한 국가체제가 아니라 소규모 도시국가 체제였습니다. 이는 유럽도 마찬가지죠. 그렇다 보니 십자군이 쳐들어 왔을때 이를 막기 위한 대규모 군사작전같은 것이 불가능했죠. 그러다 보니 각각의 성들이 십자군들에 의해 각개격파를 당했구요. 그래서 당시 아랍에서 가장 큰 도시 3곳 카이로(이집트), 알레포, 다마스쿠스는 십자군이 점령을 못합니다. 왜? 그 도시들은 십자군을 막을 만큼 자체방어력이 되는 도시들이었으니까요.
이런 아랍사회의 특징은 좀 모순적이 상황도 많이 만들어 냅니다. 알레포(아랍)의 영주가 다마스쿠스(아랍)를 노리자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십자군)이 연합군을 구성하기도 하고, 에데사(아랍)의 경우는 모술(아랍)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자신의 국가를 보두앵남작(십자군)에게 넘기고.... 이런 식으로요..
실제로 1차 십자군이 쳐들어올때 이집트의 칼리프는 십자군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습니다. 북쪽으로 십자군이 들어오면 남쪽에서는 이집트가 쳐들어가 점령한 영토를 반반씩 나누자고 협상까지 제의하죠... 종교적인 타이틀을 걸고 쳐들어온 십자군과 달리 당시 아랍사회는 이를 종교적으로 바라보지 않은 것이죠. 영토분쟁의 관점으로 바라봤죠.
사실 살라딘은 그리 뛰어난 장수는 아니라고 합니다. 살라딘이 중요한 이유는 이렇게 산발적으로 존재하던 도시국가들을 통일(?)해서 십자군국가들에게 압력을 가할수 있는 첫 존재였다는 점이죠. 이집트를 근거지로 해서 알레포, 다마스쿠스 이렇게 아랍 빅3를 모두 점령하였으니 그 위세는 어마어마 했겠죠...
큰 세력없이 조막조막 도시국가를 이루던 아랍사회에 처음으로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로 떠오른 사람은 누르알딘입니다. 이 사람은 처음으로 알레포와 다마스쿠스 아랍 빅 2를 점령하는데 성공 일명 시리아 지역을 완전통일하죠. 그리고 이집트 점령을 위해 군사를 파견하는데 이사람이 바로 살라딘의 삼촌입니다. 살라딘의 삼촌은 이집트 점령에 성공하지만 그만 죽고 맙니다... 이 뒤를 이은 것이 살라딘이죠.
즉 살라딘은 누르알딘의 부하일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살라딘이 좀 깜찍(?)한 일을 좀 합니다... 누르알딘이 죽을때 까지 계속 누르알딘을 피해다닙니다. 어떻게 얻은 이집트를 그냥 빼앗기기는 싫고 그렇다고 두목을 배신할수도 없고... 정말로 누르알딘은 죽는 날까지 살라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누르알딘이 죽자 누르알딘의 영토였던 다마스쿠스와 알레포를 날로 먹고 빅3를 통일해버리죠.
무슨 말이냐면 살라딘은 의외로 자기손에 피를 거의 안 묻히고 아랍사회의 최고 군주가 된거죠. 이집트는 삼촌이 다 정리해서 물려준거고 알레포와 다마스쿠스도 공성전 한번 없이 얻었으니까요.
그래서 당대 살라딘의 정적들은 그를 "벼락출세자"라고 불렀다더군요. 하지만 이러한 그의 성공가도는 그를 역사에 유래없는 관대한 군주로 만듭니다.... 굳이 엄청난 희생이 생기게 하면서 군사작전을 벌이지 않게 된거죠. 이러한 점을 그는 스스로 또 자랑스럽게 여겼구요.. 그래서 엄청난 힘을 가지고도 일부러 십자군의 영토를 쳐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것이 킹덤오브 헤븐에 나오는 예루살렘왕 보두앵(볼드윈)4세와의 평화조약이죠.
레이놀드와 같은 십자군 강경파들의 뻘짓이 아니었다면 굳이 예루살렘을 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거죠. 이러한 그의 관대한 성격은 예루살렘공성전때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냥 예루살렘을 버리고 떠난다면 목숨과 재산을 모두 보장하겠다"라고 통보를 한거죠... 물론 예루살렘측은 이를 거부했고 공성전이 시작되었고 일주일뒤 살라딘은 살아있는 모든 예루살렘의 사람들의 무사귀환을 약속합니다.... 이교도들에 대한 보복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관대한 성격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왕국을 정리하면서 기독교인들이나 유민들에게 망명의 기회를 줬고 이들이 티레로 모입니다. 그리고 방어를 단단히 하는데 살라딘은 군신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그냥 티레를 공격하지 않고 놔둡니다. 이 항구를 통해 또다시 십자군들이 몰려오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사자왕 리차드이죠.(티레를 진작에 작살내지 않은 것을 사라딘은 후에 후회하게 됩니다.)
사자왕 리처드와 살라딘이 유명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여러명의 십자군 군주들과 여러 아랍도시들간의 산발적인 전쟁이었는데 살라딘이 나타나고 이에 리차드가 옴으로써 십자군VS 아랍, 리처드VS 살라딘의 단순명료한 구도가 탄생한거죠. 이 둘간의 전쟁의 승자는 살라딘입니다. 리처드는 제한된 기간내에 군사적성과를 내고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살라딘은 비교적 느긋할수 있었거든요.
여튼 살라딘이라는 군주는 참 볼수록 매력적인 군주입니다. 한가지 여담입니다.
"한 맘무크(노예)가 살라딘에게 서류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살라딘이 피곤하니 좀 있다 오라고 했는데 꼭 지금해야 한단다. 그래서 잉크가 없지 않느냐 라고 했더니 저기 잉크가 있지 않느냐 라고 했단다. '그렇군' 하면서 살라딘은 손을 뻗어서 잉크를 가져야 사인을 했다"
사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별거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충격적인 군주의 모습이었을 겁니다. 아랍사회의 가장 거대한 군주앞에서 노예가 잉크를 직접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군주가 직접 잉크를 가져오게 하는 모습.... 굉장히 이질적일 정도로 군주같이 않은 군주였다고 하죠. 킹덤오브 헤븐에서도 하틴전투(그 십자군이 살라딘에게 몰살당한 전투)후 살라딘은 레이놀드만 죽이고 기는 풀어주죠. 원래 전장에서 왕은 왕을 죽이지 않는 것이 예절이랍니다.. "레이놀드는 그의 거짓과 오만때문에 죽은 것이요" 라는 말과 함께
참 살라딘이 이스라엘왕국을 정복하면서 대규모로 포로를 얻게 됬는데 이포로의 처리를 굉장히 싫어했답니다. 그래서 그냥 다 풀어줬다는 군요. 사자왕 리처드의 경우도 포로의 처리를 굉장히 싫어했고 그래서 다 죽여버렸답니다.ㅡ.ㅡ
참 이슬람 군주만 아니었으면 미국인들이 참 좋아할만한 군주상이라는..
위 그림과는 좀 이미지가 다른 또다른 살라딘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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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틴 전투에서 살라딘은 예루살렘 왕국의 군주 기 드 뤼지냥을 포로로 잡았다. 당시의 모습을 상상한 후대의 기록화(작자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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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1세(왼쪽)와 살라딘(오른쪽)의 대결은 훗날 유럽에서 일종의 전설이 되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그린 19세기의 동판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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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들
살라딘
- 십자군의 침략에 맞서 아랍의 자존심을 지킨 전사
샤푸르1세
- (?-272)사산왕조 페르시아 제2대 황제. 로마 세력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오스만 1세
- (1258?-1326)오스만제국의 초대술탄. 14세기 초 소아시아 중심으로 제국을 건설했다.
메흐메트 2세
- (1432-1481)오스만제국 제7대 술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킴.
쉴레이만 1세
- (1494-1566)오스만제국 제10대 술탄. 정치와 문화 양면에서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케말 파샤
- (1881-1938)터키공화국 초대 대통령.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터키의 독립과 민주화를 이룩했다.

- 글 박중서 / 출판기획자, 번역가
- 글쓴이 박중서는 [약소국 그랜드 펜윅] 시리즈인 [뉴욕 침공기]와 [월스트리트 공략기] 등 수 십권의 책을 우리 말로 옮긴 번역가다. 1만권이 넘는 책을 소장했으며, 독서 관련 칼럼을 쓰고 있다. [불굴의 용기] [끝없는 탐구] 등 인물 논픽션을 번역했으며 외국 인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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