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안
이향란
무엇인가
물처럼 스며들어, 천상의 계절로 찾아들어
생의 몇 날을 머물다 간 적 있다
나는 시력을 잃고 말라갔으며 말을 잊었다
불 밝힌 마음은 아득한 곳을 향해 깃발처럼 흔들거나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옆구리가 닳았다
찢긴 지 오래인 돛
떠밀려온 해초더미에 칭칭 감긴 닻
발이 잘린 내 역사는 빛나고 어두웠다
오르지 못한 채 둥둥
빈 배였다
다가간다는 것은 온몸으로 기댄다는 것은
서글픈 운율로 나를 켜는 일
나를 되려 가두는 일
내게서 다시 내게로 건너가는 일
그리하여 끝까지 남은 나를, 비늘 덮인 나를
바다로 되돌리는 일이었다
다가갈 수 없거나
다가가지 못하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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