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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문학사

박송 입니다. 2022. 6. 3. 17:00

터키 문학

Turkish literature

요약 투르크계의 모든 민족들에 의해 씌어진 문학작품의 총체.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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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문학의 역사는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첫번째 시기는 투르크 민족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전, 문학이 순수하게 투르크적이었던 시기로서 대략 7~11세기이다. 2번째 시기는 이슬람 문화의 지배기로서 아랍·페르시아 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11세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이어진다. 3번째 시기는 유럽의 사상과 문학의 지배적인 영향을 받은 근대 이후의 시기로 술탄 아브둘 메지드 1세 즉위(1839) 이후를 가리킨다.

전이슬람기 터키 문학

이 시기 최고의 문학적 유산은 오르혼 비문(돌궐 비문이라고도 함)이다(→ 오르혼 명문). 또한 주요한 것으로서 퀼 티긴 비문, 빌게 카간 비문, 토니우쿠크 비문 등이 있다.

이들 비문은 1889~97년에 발견되었고 모두 돌궐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덴마크의 언어학자 빌헬름 톰센은 이 문자를 '투르크 룬' 문자라고 부르고 1893년 해독의 실마리를 찾았다. 퀼 티긴 비문은 돌궐(고대 투르크 민족)의 왕족 퀼 티긴(685~731)의 기념비이고, 빌게 카간 비문은 그의 형 퀼 티긴에게 옹립되었던 돌궐의 군주 빌게 카간(716~734 재위)의 기념비이다.

모두 서사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돌궐의 기원, 황금시대, 돌궐의 독립 등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토니우쿠크 비문은 돌궐의 독립에 즈음하여 공적을 세우고, 특히 빌게 카간의 중신이었던 토니우쿠크가 스스로 자기의 무공을 자랑하여 생전에 세운 것이다. 이들의 문체는 극히 세련되어 튀르크어가 꽤 일찍부터 발달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돌궐문자로 씌어진 비문과 돌은 그밖에도 북몽골 고원, 남시베리아, 투르키스탄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이슬람기 터키 문학

개요

투르크 민족은 이슬람교로 개종함과 동시에 아랍·페르시아의 운율 및 문학적 전통을 점차 도입했다.

이슬람화된 투르크 문학작품으로 최초의 것은 카슈가르의 술탄의 시종 유수프 하스 하지브의 〈행복을 주는 지식〉(1069)이다. 이것은 6,000개 이상의 2행연구로 이루어진 우의시로, 한 나라를 어떻게 통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군주, 대신, 대신의 아들, 친구가 모여 대화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전이슬람기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서 투르크의 문학작품에는 차가타이어, 아제르바이잔어, 아나톨리아어 또는 튀르크어의 3종류의 언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차가타이어

동부 투르크족의 문어로 주로 중앙아시아, 킵차크 한국, 이집트, 무굴 제국기의 인도 궁정에서 사용되었다.

차가타이어는 정치적·문학적 중심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방언의 영향을 받았다. 알리 시르 네바이(1441~1501), 무굴 제국의 황제 바부르(1483~1530) 및 〈투르크족의 계보〉의 저자 아불가지 바하두르 한(1663 죽음)은 모두 이 방언을 잘 사용한 위대한 고전적 저술가이다. 바부르의 회상록 〈바부르의 서(書)〉는 그의 모험적 생애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다채로운 문체로 씌어진 동부 튀르크어 걸작 산문이다.

차가타이어로 씌어진 것으로는 이들 외에 〈오구즈 카간 전설〉이 남아 있고 이것은 고대 투르크의 서사시 가운데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이다.

아제르바이잔어

동부 오구즈족(서부 페르시아 이라크 오스만 왕조의 정복 이전의 동부 아나톨리아에 거주한 투르크족)의 문어로 아나톨리아의 튀르크어에 가깝다.

네시미는 이 문학의 대표적 인물인데 열렬한 신비주의자였기 때문에 이단자로 몰려 처형되었다(1420경). 그의 시는 아름다운 표현과 종교적 감성이 풍부하다. 이스마일 1세(1487~1524)는 페르시아의 사파위 왕조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하타이라는 필명으로 문학활동을 했고 아나톨리아의 종교적 민중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시에서는 종교적 감동과 정치적 선전이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시아파의 교의가 잘 설명되어 있다. 푸줄리(1556 죽음)는 고전파의 대표적 인물로 아제르바이잔어와 오스만어의 후배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고대 투르크 서사시의 요소들을 포함한 아제르바이잔어의 중요한 작품 〈데데 코르크트의 서〉는 12편의 서사시적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아나톨리아어 또는 튀르크어

13세기 이후 아나톨리아의 셀주크 투르크 및 오스만 제국의 언어로, 이 언어로 씌어진 문학은 전고전기, 고전기, 고전기 이후, 민중문학 등으로 시기가 구분된다(아나톨리아 제어). 14~15세기에 해당되는 전고전기에는 페르시아 고전문학의 영향이 압도적이었다.

이 시기의 가장 걸출한 인물인 유누스 엠레(1320 죽음)는 간소한 단어를 써서 투르크의 전통적인 음절에 의한 운율을 살린 시를 지었다. 유명한 신비주의자 메브라나의 아들 술탄 베레드(1312 죽음)도 똑같이 간소한 문체로 시를 지었다. 이들 외의 대표적인 인물은 아시크 파샤(1332 죽음)와 아흐메드 다이이다. 아시크 파샤는 신비주의적이고 교훈적인 시 〈갈리브 나메〉를 지었고, 다이의 우의적인 이야기시 〈첸그 나메〉는 20세기에 발견되었는데 착상과 문체가 극히 독창적이다.

궁정시인 아흐메디(1334~1413)는 몇 개의 이야기시 외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생애를 다룬 대서사시 〈이스켄데르 나메〉를 지었는데 이 안에 현재 알려진 최고(最古)의 오스만 제국 연대기가 포함되어 있다. 셰이히(1428 죽음)는 그 속편을 썼다. 그는 또 이야기시 〈휴스레브와 시린〉 및 유명한 해학풍자시 〈어리석은 자의 아내〉도 썼다. 쉴레이만 첼레비(1422 죽음)는 마호메트를 칭송한 민중적인 시 〈메브리도〉를 썼는데, 이것은 이슬람 세계에 널리 분포하는 마호메트의 탄생을 칭송한 메브리도 문학 가운데 걸작의 하나로 투르크인에게 가장 애송되는 작품이다.

15세기 중반의 고전기에는 이스탄불에서 투르크 민족의 지위가 확립되어 투르크 문학의 황금시대가 시작되었다. 페르시아의 고전문학은 이미 완전히 흡수·동화되었기 때문에 투르크의 시인은 각각 개성 있는 색채를 띤 순고전적 시풍을 전개하게 되었다(페르시아 문학). 이 시대의 걸출한 시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람이 있다.

아흐메드 퍄샤(1497 죽음)는 투르크의 고전적 작시수법을 발전시켰고, 더욱 우수한 시재를 갖춘 네자티(1509 죽음)는 세련되고 독창적인 문체로 서정시와 비가를 지었는데 그의 문체는 후세의 시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자티(1546 죽음)는 〈후각과 나방〉을 썼고, 타슈르자르 야히야(1573 죽음)는 요세프와 포테이파의 아내의 이야기에 기초한 이야기시 〈유수프와 즈라이하〉 및 쉴레이만 1세의 왕자 무스타파를 애도하는 유명한 비가를 지었다.

광신·위선·추종을 풍자한 〈테르키브 이 벤드 Terkib-i bend〉(일종의 시 형태)로 알려진 바그다드의 루히(1605 죽음), 푸줄리 파키(1526~1600:시인의 왕으로 알려짐)는 모두 고전기의 대표적 시인이다. 고전기의 산문은 다종다양하여 민간설화, 종교적 요소와 서사시적 요소가 반씩 섞인 이야기, 다소 중후하고 기교적인 문체로 씌어진 작품, 그리고 특히 고전적 산문의 거장인 연대기작가의 저술 등이 있다.

아시크파샤자데(1485 죽음)와 네슈리의 연대기는 일종의 서사시적 성격을 갖추고 있으며 간소한 튀르크어로 씌어졌다. 이븐 케마르(1535 죽음)와 호샤 사데딘(1536~99)에 이르러 역사적 서술에 있어서 문학적 발전은 그 정점에 이르렀다.

특히 사데딘의 〈역사의 왕관〉은 난해하지만 화려한 문체를 자랑하는 오스만 제국의 대표적인 연대기이다.

그밖의 연대기작자로는 다수의 논설을 쓰고 또 인류의 창생에서 16세기말에 이르는 방대한 통사 〈제 사건의 본질〉과 1578~89년 이란 전투의 종군기록〈승리의 서(書)〉를 쓴 무스타파 알리(1606 죽음), 자신이 목격한 사건을 특히 흥미진진하게 서술한 페체비(1650 죽음), 캬티프 체레비(1608~1657), 시라흐다르(1723 죽음)와 투르크 최대의 사가인 무스타파 나이마(1655~1716)를 들 수있다.

고전적 시풍이 부흥한 18세기를 고전기 이후로 분류하는데, 그 전반기에 속하는 시인 아흐메드 네딤(1681~1730)은 아흐메드 3세 치하의 융성한 시대를 다채롭고 화려한 시로 노래했다.

후반기에는 고전파 최후의 대(大)시인 갈리브 데데(1755~98)가 독창적인 신비주의적 이야기시 〈선과 사랑〉을 썼다. 반면에 산문은 쇠퇴했다.

지금까지 서술한 고전기 및 그 이후의 투르크 문학은 모두 오스만 왕가를 중심으로 하는 상류계급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궁정문학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당시의 민중으로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것뿐이었다. 투르크 대중은 그들만의 민중문학을 즐겼는데 민족 악기 사즈를 한 손에 들고 제국을 떠돌아다니는 음유시인들의 시적인 이야기와, 야외에서 공연하는 촌극과 카라괴즈(karagöz:터키 특유의 연극)가 있다.

음유시인으로는 17세기에 동부 아나톨리아 각지를 편력한 카라자오우란이 대표적인데 간소한 튀르크어로 민중의 생활을 노래했다. 한편 터키인 각 계층 사이에서 가장 친숙하게 전해내려온 민화는 〈나스레딘 호자 이야기〉이다. 이 민화의 성립연대와 주인공 나스레딘 호자의 실재성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지만,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교훈적인 이야기로 터키 국내뿐만 아니라 중앙 아시아, 서아시아, 아제르바이잔, 발칸에 산재하는 투르크계 여러 민족이 공통으로 향유하는 값진 문화유산이다.

근대 이후 터키 문학

유럽 문예의 유입

19세기 들어 서구에서 들여온 여러 가지 개혁이 진행되면서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로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시나시(1826~71), 지야 파샤(1825~80), 나무크 케말(1840~88), 아브뒬하크 하미드(1852~1937) 등의 선구자들이 소설·희곡·에세이 같은 서구의 문학형식을 도입하여 터키 문학에 적용했다. 이 가운데 시나시는 간결하고 자연스러운 문체를 가진 새로운 터키 문학의 창조에 노력하면서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문학활동 분야를 확립하고, 1860년 아기아흐 에펜디(1832~85)와 함께 민간인의 손에 의한 최초의 신문 〈세론의 주석〉을 발행했다.

터키에서 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상가 나무크 케말은 다양한 정치적·사상적 활동을 하면서도 터키 근대문학 확립에 노력했다. 대표작인 희곡 〈조국 또는 지리즈토레〉는 터키 지식계급 사이에 처음으로 조국이라는 관념을 심어주어 민족주의 사상의 근거를 만들었다.

19세기말에는 소설가 하리드 지야 우샤클리길(1863~1945)과 시인 테우피크 피크레트(1867~1915) 등이 잡지 〈학문의 부 Servetif nun〉를 발간하면서 하나의 문학 유파를 창시했다. 이 파에 속한 문학자들은 수법과 착상에서 그 이전의 사람들보다도 한층 서구적이었다. 이 가운데 피크레트는 보들레르 등의 영향을 받아 이것을 전통적 시형식에 접목시켜 터키 근대시의 창시자가 되었고, 우샤클리길은 프랑스 자연주의를 도입해 튀르크어에 의한 자유로운 산문표현의 가능성을 열었다.

소설가 휴세인 라흐미 귈프날(1864~1944)과 에세이 작가인 아흐메드 라심(1864~1932)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가는 과도기의 이스탄불 생활을 강력한 사실주의 수법으로 묘사했다. 간소한 문체와 사실주의는 문학에 처음으로 터키주의 사상을 도입한 메메드 에민(1869~1944), 루사 테우피크(1868~1949)의 시풍에도 보인다. 1908년에 소위 청년 터키당의 혁명 이후 상징주의자 아메드 아심(1933 죽음)을 지도자로 하는 젊은 세대의 문학자들은 '미래의 새벽(Fecr-i Ati)파'를 결성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전통적 조류

이 시기에 신고전주의자 야히야 케말 페야트르(1884~1958)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케말은 오랜 작가생활을 통해 오스만 투르크 시대의 궁정문학을 전하는 최후의 시인이 되었지만,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의 영향을 받아 극도로 세련된 예술성을 보이고 있다. 한편 민중적 범이슬람주의 시인 메흐메드 아키흐(1873~1936)는 터키 국가(國歌)를 작사했고 여전히 전통적 수법을 고수했다. 아키흐는 주로 일상 튀르크어를 사용하면서 고전적 작시법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열렬한 이슬람교도로서 교훈적 색채가 농후한 시를 지었지만 종교적 또는 민족적 대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들은 서정시의 극치를 이룬다.

민족주의적 문학

이른바 청년 투르크당의 기관지로 된 잡지 명칭을 회고하여 이름붙인 '투르크인의 조국'(Türk Yurdu) 운동 및 사로니카의 잡지 〈어린 펜〉을 중심으로 전개된 튀르크어 간소화 운동에 이어, 지야 괴칼프(1875~1924)를 주된 지도자로 하여 터키 민족의 독자적인 문학 발전이 이루어졌다.

괴칼프는 문학의 기초를 터키 민족주의의 이상 염원에 두고 터키 민족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문학에 생기를 주려고 노력했다. 문학자들은 터키 국가, 터키 민족 등에서 새로운 주제를 구했다. 이 시기에 걸출한 산문작가로는 터키 문학사와 민간전승에 관한 저술이 있는 파트 쾨프륄뤼(1890~1966), 언어개혁을 주장하고 대중적 단편소설을 지은 오메르 세이흐페딘(1884~1920), 야쿠브 카드리 카라오스만오울, 터키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공공생활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하리데 에디브 아두바르(1883~1964), 아나톨리아 민중생활의 현실이 처음으로 담겨진 장편·단편 소설을 쓴 레피크 하리드 카라이(1888~1964), 재기에 넘친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 작가인 파리히 루흐크 아타이(1894~1971), 대중소설가 레샤드 누리 귄테킨(1892~1956) 등이 있다.

시단에서는 서정적·애국적 주제를 다룬 소박하고 낭만적인 시로 1920년대의 가장 대중적 시인이 된 파르크 나피즈 차무르베르, 신비주의 시인 네지브 파즈이르 투사기에기 등이 활동했다.

공화국 수립 이후의 문학

케말 아타튀르크의 개혁 이후 다양한 문학이 발전했다.

특히 1930년대 이후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면서 터키 본래의 독창적 문학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문학은 옛 수도 이스탄불의 중·상류층 생활과 문제들뿐 아니라 터키 국내의 모든 지역에서 민중이 관련되는 문제들과 운명 등에도 점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나짐 히크메트 란(1902~63)은 1920년대 초기에 자유시와 '비전통적'인 시풍을 도입했지만 그의 영향은 1930년대에 나타나기 사작했다. 히크메트는 1921~24년 모스크바의 쿠트베(동양근로자공산주의대학)에서 유학했을 때 마야코프스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뒤에 국제공산주의 운동에 참가했다.

그는 터키 국내에서는 항상 탄압을 받아 1951년에 최종적으로 모스크바로 망명하고 그해 부라그 국제평화상을 받았다. 전통을 고려하면서 터키의 시풍을 풍부하게 한 시인으로는 용어의 선택, 미묘한 비유적 표현에 의해 음절률(音節聿)을 사용하면서 보기 드물게 음악적 효과를 올린 A. H. 탄브나르(1901~62), A.M. 도라나스, 마음에 젖어드는 유려한 문체로 사람들의 비애와 우울을 주로 다룬 C.S. 타란주(1910~56)가 있다.

오르한 벨리 카니크(1914~50)는 다시 자유시를 도입하여 주제의 범위를 넓혀 새로운 시풍을 개척했다.

오크타이 리파드와 M.C. 안다이 등은 카니크의 용어나 수법을 써서 시를 지었다. 자히트 킬비는 아나톨리아에 대한 향수를 노래한 시를 썼는데, 이것은 터키 문학에서 가장 우수한 민중시로 손꼽힌다. 또 다면적인 시인 베프체트 네자틴기르는 때로 상징파적 경향을 갖는 지적인 문체를 사용하고 주로 인간의 운명을 노래한 시를 발표했다.

그러나 20세기 터키 시단 최대의 인물은 파질 휴스뉘 다아라르자이다. 독창적인 문체로 쓰인 그의 서정시와 서사시에는 정신적 불안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공화국 시기에 두드러진 산문 형식은 단편소설이다. 사회문제 및 하층 민중의 생활에 중심이 놓여 있지만 그와 함께 자서전적이며 심리적인 형태의 단편도 나타났다. 1930년대 초기에 사바하틴 알리(1907~49)는 아나톨리아 농촌의 현실을 스케치했고, 타고난 시인이었던 사이드 파이크 아바시야누크(1907~54)는 일상어를 사용하여 단편소설의 새로운 형식을 개척했다.

1940년대 말기부터 대부분의 산문작가는 오래 무시되었던 문학형식인 소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농민 및 소도시 민중의 생활과 제문제가 단편 및 장편소설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작가로서는 사밈 코자괴즈, 터키 유르두 운동의 계보를 잇는('농민학교' 운동을 낳았던) 새로운 형태의 사회파 농촌작가인 탈리브 아바이둔, 파키르 바이크르드, 특히 르한 타르스와 민중 이야기의 수법을 교묘하게 이용한 야샤르 케말과 오르한 케말 등을 들 수 있다. 야샤르 케말은 현대 터키 문학에서 주요한 조류의 하나인 사회파 문학의 기수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입장을 취했다.

지주에 의해 토지와 연인을 빼앗긴 청년의 복수를 주제로 한 야샤르 케말의 대표작 〈말라깽이 메메드〉는 8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올랐다. 오르한 케말의 소설 〈비옥한 대지 위에서〉(1954)는 아나톨리아의 농민생활을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다. 케말 타히르는 어쩌면 그 세대의 가장 우수한 소설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터키의 도시 및 촌락에서의 사회문제와 인간관계를 널리 다루고 있다.

크림 반도 출신의 터키인 젠티즈 다쥬는 제2차 세계대전중에 그의 고향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에 대해서 자서전적인 소설을 써서 큰 호응을 받았다. A.S. 히사르(1888~1963)는 전 세대에 속하지만 그가 걸작을 발표한 것은 1940년대부터였다. 20세기 초기의 문체를 사용한 그의 에세이와 소설은 아브뒬 하미드 2세 치하의 이스탄불의 생활을 상기시킨다. 그외에 현대작가로는 단편작가이자 극작가인 할둔 타네르, 에세이 작가이자 시인인 살라흐 빌셀, 사바하딘 유보울, 대중적 유머 작가이며 극작가인 아지즈 네신, 현대의 가장 우수한 여성작가인 네지헤 메리치 등이 있다.

또 마흐무드 마칼의 〈우리들의 마을〉(1950)은 중부 아나톨리아의 촌락 생활을 힘찬 필체로 묘사한 것이며 1950년대에 출판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문학비평에서 가장 걸출한 인물은 N. 아타치(1898~1957)로, 그는 예리한 감식안을 가지고 많은 신인을 배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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