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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임/배우

박송 입니다. 2021. 12. 15. 12:57
남정임
南貞妊 | Nam Jung-im
 
본명
이민자 (李敏子, Lee Min-ja)
출생
사망
1992년 9월 2일 (향년 47세)
국적
신체
NNNcm, NNkg, 혈액형
가족
남편 노승주, 자녀 1남 2녀[1]
학력
서울 성신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 졸업)
데뷔
1966년 영화 '유정'

1. 개요2. 활동3. 여담

1. 개요[편집]

한국의 여배우. 윤정희, 문희와 함께 1세대 트로이카로 큰 인기를 누렸다.

2. 활동[편집]

  • 1964년 성신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였다.[2]1965년 5월 KBS 5기로 입사하였고,그 해 11월에 연방영화사의 이광수 원작의 유정 공모전에서 여주인공 ‘남정임’역으로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하였다.역할명이 곧 예명이 된 셈.
  • 1966년 데뷔작 '유정'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여,순식간에 인기 배우가 되었다. 당시 대학생이 드물던 시절이라 대학생이라는 조건은 그녀의 인기에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되었으며 고은아,문희와 함께 톱스타로 성장하게 된다.[3]영화계 데뷔 초에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고은아와 경쟁하였고 [4] 이후 문희가 인기를 얻게 되고 뒤이어 윤정희가 데뷔하면서 본격적으로 '트로이카' 시대를 열게 된다. 트로이카 중 윤정희는 선역과 악역을 아우르는 만능미를 보여주고, 문희가 눈물연기를 중심으로 버림받는 여자를 연기하는 비련미를 주로 보여주었다면, 남정임은 예쁜 얼굴과 특유의 발랄함을 무기로 명랑미를 과시하였다. 데뷔 초 역할들을 보면 밝고 명랑한 역할들이 대부분이었다.
  • 1971년에 재일교포 사업가와 결혼하였다. 당시 민주공화당의 당의장이었던 백남억 의원이 주례를 서려 했으나 불발하고 대신 모교인 한양대학교의 총장인 김연준 박사가 주례를 섰다. 당시 결혼식의 장면은 남정임의 은퇴작인 '첫 정'의 장면으로 쓸 예정이었다. 많은 연예인들이 하객으로 참여했는데, 신영균의 경우에는 뒤늦게 오던 중 수많은 인사들로 옷이 찢겨졌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의 사업 문제로 이혼 후 1976년 '나는 고백한다'로 복귀를 했으며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위주로 출연했다. 그 중 하나가 한국 최초의 옴니버스 드라마라 불리는 '여고 동창생'. 복귀 이듬해에 애인(이후 결혼)의 폭행을 오빠의 폭행으로 바꾸려고 하다가 들통나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자 음독을 시도하는 등 시련이 있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출연 정지를 받았다. 재판을 받는 와중에 연인과의 결혼을 발표하였으며 1978년에 재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1989년 6월 유방암 판정을 받고 1992년 유방암으로 사망하였다. 죽기 전 자신의 일생을 다룬 영화를 찍고 싶어 했다고 한다.
  • 중학생 시절 소풍을 갔다가 영화 촬영 중이던 김지미와 마주친 적이 있는데 이 때 중학생 남정임을 본 김지미는 “예쁘게 생겼다. 커서 배우가 되면 좋겠다.” 라며 칭찬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그 여학생은 배우로 데뷔하게 된다.

3. 여담[편집]

  • 트로이카 여배우 중에서는 나무위키 문서가 가장 늦게 작성되었다.
 
[1] 이 중 장녀는 전 남편 임방광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다.[2] 같은 학과 같은 학번 친구가 가수 남진이다.[3] 아직 윤정희는 데뷔 전이었다.[4] 고은아 역시 톱스타이긴 했으나, 영화제작자인 괵정환 사장과의 이른 결혼으로 이후에는 그 전처럼 크게 활약하지는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