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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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南宮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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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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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일(洪京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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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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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홍씨(南陽 洪氏) 당홍계(唐洪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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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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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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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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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cm, 7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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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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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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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영화 <그 밤이 다시 오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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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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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서울에서 보냈고,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에 다녔으나 연예계에 데뷔한 후 대학을 중퇴한다. 대학에 입학하자 미남인게 소문이 나서 영화계 사람들이 영화배우하라고 그를 쫓아다녔다고 한다. 장차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가고 대학교수가 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자궁암 3기 진단을 받고 돈이 필요해지자 친구의 아버지인 영화사 사장에게 찾아가 배우로 데뷔하겠다고 말하고 큰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치료비에 그 돈을 다 들였음에도 어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자마자 그와 계약한 영화사에서 영화를 찍으러 나오라고 보챘는데, 애초에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던 남궁원은 마음이 심란했으나 이것도 운명이려니 하고 영화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몇년 뒤엔 신상옥 감독이 세운 신필름의 전속배우가 되고 스타가 된다. 데뷔초에는 멋진 외모에 비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꾸준히 노력해서 1960년대 말에는 연기력에서도 인정받는 배우가 된다.
그러나 남궁원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대한민국 영화계가 정말 돈이 없던 시절이라, 남궁원처럼 품위있는 외모와 건장한 체격을 가진 미남 배우에게 어울리는 영화가 별로 없었기에 캐스팅 운은 별로 없었던 편이다. 1928년생이고 남궁원보다는 땀냄새나는 한국적 남자의 외모를 가져 현대극과 시대극을 오가며 영화계를 풍미했던 신영균과 1937년생으로 젊어서는 반항적 청년, 나이 들어서는 고뇌하는 인텔리역을 맡으며 주연을 도맡아 하던 신성일 사이에 낀 세대였기 때문에 남궁원은 대형배우의 외모를 가지고도 위 두 사람만큼은 각광받지 못했다. 또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협객영화, 건달영화가 유행하긴 했으나 남궁원같은 귀족적인 외모의 배우에겐 어울리지 않는 영화였고, 양복이 잘 어울리는 서구적 외모와 큰 키를 가진 그는 조선시대나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서는 더욱 자기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가 머슴역을 한번도 못 해본 것이 안타깝다고 말할 정도이니... [5] 당시 007 시리즈를 흉내낸 스파이 영화가 잠깐 제작되기도 해서 그가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키는 스파이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충무로의 주류영화는 아니었다. 또한 당시 한국 영화계 여배우들의 키가 보통 150cm대 중반 정도였으므로, 180cm인 남궁원의 키에 맞는 상대 여배우를 찾기 힘들었다.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 씨는 그런 그를 보고 안타까워서 "너는 지금 나온 게 참 아깝다. 한 10년, 15년 뒤에만 나왔어도..."라고 할 정도.
연기는 물론 원래 보이스도 좋은데, 후시녹음이 일반적이던 과거에는 영화나 광고에서 거의 유강진 씨가 전문 성우로 더빙을 했다.(신성일의 전담성우로 유명한 이강식 씨도 몇 작품 맡기도 했다. 당시 신성일과 남궁원의 후시녹음은 유강진 아니면 이강식 성우가 전담이다.)
아들은 하버드 대학교 출신으로 7막 7장의 주인공인 홍정욱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및 전 (주)헤럴드[6] 회장이다.
당대의 여러 배우들과 달리 밤무대 출입을 안 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아들 홍정욱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학비 문제로 밤무대 출연을 자주 했다고 한다. 게다가 두 딸도 미국/독일로 각각 유학을 간데다 부인이 암투병 끝에 살아나기도 했으니 여러가지로 돈이 많이 들었을 듯(...) 홍정욱이 지금도 안타까워한다는 일화. 밤무대도 밤무대지만 역시 아들 유학비 문제로 온갖 에로영화는 물론이고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나 흑역사급 퀄러티를 자랑하는 로봇 태권브이 90에도 출연한 바 있다.
다만 말년에 아들 관련한 일로 인해서 구설수에 오른적도 있다. 범법 행위는 아니고 '족벌 운영'처럼 홍정욱이 설립한 회사에 아버지인 남궁원을 이사로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여담으로 아들보다 키가 크고(남궁원 180cm, 홍정욱 177cm), 풍채도 듬직하고 남자다워서 홍정욱은 아버지에게 키 때문에 열폭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2014년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는 민도희와 함께 레드카펫에 올랐다.#
1934년생으로 나이가 이미 팔순을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동연배인 이순재와 함께 절대 동안(...)이다!. 2015년에 YTN 초대석에 나와 방송 인터뷰를 하였을 때는 꼿꼿한 수트 차림에 60대 정도 밖에 보여지지 않는 초절정 미노년 간지를 내뿜는다. 중후한 중저음이 매력포인트인지라 각종 영화제 시상식에서 "안녕하세요. 남궁원입니다"라고 운을 띄면 들리는 환호성은 여전한 인기를 실감할 정도.
여담으로, 위에 서술한 YTN 인터뷰에서 "시대극과 현대극을 거슬러 여러 배역을 맡았었지만 이미지에 맞지 않아 머슴역은 못 맡았다는게 아쉽다"라고 하였다(...)
신인시절에 유명배우 도금봉과 동거 관계였다. 당시 남궁원은 4살 연하의 신인배우였고, 도금봉은 이미 스타였던데다 전 남편과 사이에 두 아이도 있는 상태여서 그 당시 사회적 관점으로는 꽤나 입방아에 오를만한 스캔들이었다.[7] #결별 당시 기사
그러다 2019년 9월 27일 자신의 손녀가 마약 밀반입해 아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얼굴까지 먹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사
그러나 남궁원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대한민국 영화계가 정말 돈이 없던 시절이라, 남궁원처럼 품위있는 외모와 건장한 체격을 가진 미남 배우에게 어울리는 영화가 별로 없었기에 캐스팅 운은 별로 없었던 편이다. 1928년생이고 남궁원보다는 땀냄새나는 한국적 남자의 외모를 가져 현대극과 시대극을 오가며 영화계를 풍미했던 신영균과 1937년생으로 젊어서는 반항적 청년, 나이 들어서는 고뇌하는 인텔리역을 맡으며 주연을 도맡아 하던 신성일 사이에 낀 세대였기 때문에 남궁원은 대형배우의 외모를 가지고도 위 두 사람만큼은 각광받지 못했다. 또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협객영화, 건달영화가 유행하긴 했으나 남궁원같은 귀족적인 외모의 배우에겐 어울리지 않는 영화였고, 양복이 잘 어울리는 서구적 외모와 큰 키를 가진 그는 조선시대나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서는 더욱 자기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가 머슴역을 한번도 못 해본 것이 안타깝다고 말할 정도이니... [5] 당시 007 시리즈를 흉내낸 스파이 영화가 잠깐 제작되기도 해서 그가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키는 스파이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충무로의 주류영화는 아니었다. 또한 당시 한국 영화계 여배우들의 키가 보통 150cm대 중반 정도였으므로, 180cm인 남궁원의 키에 맞는 상대 여배우를 찾기 힘들었다.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 씨는 그런 그를 보고 안타까워서 "너는 지금 나온 게 참 아깝다. 한 10년, 15년 뒤에만 나왔어도..."라고 할 정도.
연기는 물론 원래 보이스도 좋은데, 후시녹음이 일반적이던 과거에는 영화나 광고에서 거의 유강진 씨가 전문 성우로 더빙을 했다.(신성일의 전담성우로 유명한 이강식 씨도 몇 작품 맡기도 했다. 당시 신성일과 남궁원의 후시녹음은 유강진 아니면 이강식 성우가 전담이다.)
아들은 하버드 대학교 출신으로 7막 7장의 주인공인 홍정욱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및 전 (주)헤럴드[6] 회장이다.
당대의 여러 배우들과 달리 밤무대 출입을 안 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아들 홍정욱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학비 문제로 밤무대 출연을 자주 했다고 한다. 게다가 두 딸도 미국/독일로 각각 유학을 간데다 부인이 암투병 끝에 살아나기도 했으니 여러가지로 돈이 많이 들었을 듯(...) 홍정욱이 지금도 안타까워한다는 일화. 밤무대도 밤무대지만 역시 아들 유학비 문제로 온갖 에로영화는 물론이고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나 흑역사급 퀄러티를 자랑하는 로봇 태권브이 90에도 출연한 바 있다.
다만 말년에 아들 관련한 일로 인해서 구설수에 오른적도 있다. 범법 행위는 아니고 '족벌 운영'처럼 홍정욱이 설립한 회사에 아버지인 남궁원을 이사로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여담으로 아들보다 키가 크고(남궁원 180cm, 홍정욱 177cm), 풍채도 듬직하고 남자다워서 홍정욱은 아버지에게 키 때문에 열폭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2014년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는 민도희와 함께 레드카펫에 올랐다.#
1934년생으로 나이가 이미 팔순을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동연배인 이순재와 함께 절대 동안(...)이다!. 2015년에 YTN 초대석에 나와 방송 인터뷰를 하였을 때는 꼿꼿한 수트 차림에 60대 정도 밖에 보여지지 않는 초절정 미노년 간지를 내뿜는다. 중후한 중저음이 매력포인트인지라 각종 영화제 시상식에서 "안녕하세요. 남궁원입니다"라고 운을 띄면 들리는 환호성은 여전한 인기를 실감할 정도.
여담으로, 위에 서술한 YTN 인터뷰에서 "시대극과 현대극을 거슬러 여러 배역을 맡았었지만 이미지에 맞지 않아 머슴역은 못 맡았다는게 아쉽다"라고 하였다(...)
신인시절에 유명배우 도금봉과 동거 관계였다. 당시 남궁원은 4살 연하의 신인배우였고, 도금봉은 이미 스타였던데다 전 남편과 사이에 두 아이도 있는 상태여서 그 당시 사회적 관점으로는 꽤나 입방아에 오를만한 스캔들이었다.[7] #결별 당시 기사
그러다 2019년 9월 27일 자신의 손녀가 마약 밀반입해 아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얼굴까지 먹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사
3. 출연 목록[편집]
3.1. 영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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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일을 치르는 데 수고했어
전 아무것도 못 해 드렸어요
음, 병신! 왜?
겁이 났어요 전 경험이 없었단 말이에요
이런, 차라리 잘라 버려! - 가 있다. 나비가 되는(...) 최후 씬도
병맛인상적인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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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1984년작.
3.2. 드라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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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 (2011) - 임중희 회장 역.
그의 유일한 TV 드라마 출연작이다.
[1] 2014년 명예졸업[2] 송파동 비전교회 은퇴장로이다[3] 연극 데뷔는 1955년[4] 1941년생으로 7세 연하 ,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 승무원으로 근무하였다.[5] 다만 1981년 영화 '피막'에서 머슴 삼돌이 역을 맡은 적 있으나, 주연이 아니어서 비중이 적다.[6]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영자신문인 코리아헤럴드와 석간 경제신문인 헤럴드경제가 나오는 회사다. 2002년 홍정욱이 인수하여 헤럴드미디어로 회사명을 바꿨다가, 2012년에 (주)헤럴드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7] 당시는 이혼녀가 아니라 미혼녀였어도 동거 자체가 굉장한 스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