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 연구

契丹/해단?

박송 입니다. 2021. 5. 18. 16:56

거란

契丹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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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류 수정 문의요약 몽고계의 한 종족으로 추정되는 거란은 모용연에 의해 격파된 선비족이 우문·해·거란으로 분리된 4세기 전반부터 사서에 등장한다. 이들은 필요할 때는 서로 잠정 동맹을 맺었으나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은 당의 기미지배로 바뀌었다. 628년 거란 8부의 수령들이 모두 부족을 이끌고 내속해왔다. 당은 이들을 10주로 나눈 후 마회를 도독으로 임명하여 8부를 통할케 했으며, 730년까지 대하씨가 도독의 지위를 독점했다.
    이후 10세기초에 이르는 동안 거란군장의 지위는 요련씨로 넘어갔고, 그들 중 일부는 그 지위를 강화시켜 나갔다. 야율아보기는 종래 8부족 연합체를 붕괴시켰으며, 자신의 군사력·경제력을 바탕으로 907년 카간에 즉위하였고, 916년 거란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요를 건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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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0년대부터 10세기초에 이르는 동안 거란군장의 지위는 대하씨에서 요련씨(遙輦氏)로 넘어갔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카간[可汗 qaghan]을 칭하기도 하며 그 지위를 서서히 강화시켜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즉, 종래 세선제(世選制)의 외양을 보존하면서 군주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시책의(柴冊儀)라고 불린 즉위식을 처음으로 도입했고, 아울러 종래 3년 1선(選)의 교대지배제도 폐지했다. 또한 청우백마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팔부동원설화가 보여주듯이 모두 동일한 시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의사혈연적 관계를 기초로 한 부족적 결속력도 강화되었던 시기이다.그는 자신의 군사·경제 실력을 바탕으로 907년 카간에 즉위하였다. 즉위 후 911년과 912년, 913년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질랄부의 부족민은 물론 형제들에게도 반발을 받았으나, 곧 8부대인을 연회로 초대하여 모두 살해한 뒤 916년 요를 건국하고 스스로 '천황제'라고 칭하였다.→ 
  • 그러나 요련씨의 카간 독점을 타파하고 카간이 된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는 종래 8부족 연합체를 붕괴시키고, 정복국가 군주에게 특유한 전제권을 장악하였다. 즉 요련씨의 마지막 카간인 흔덕근의 시기에 그는 이리근으로서 병마권(兵馬權)을 장악하고 해·실위(室韋)·우궐(于厥) 등 주변의 유목부족은 물론 여진인과 한인 등 정주민들에 대한 원정을 감행하여 많은 수의 부족을 송막 지방으로 이주시켰다. 뿐만 아니라 변경지역에 거주하던 다수 한인들이 거란 영내로 도망해오기도 하여, 이들 정주한인들이 중심이 되어 건설한 성곽은 아보기의 경제적 근거지가 되었다.
  • 1000년경 거란의 영향권ⓒ Gabagool/위키피디아 | CC BY 3.0
  • 이러한 상황에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 바로 당(唐)의 기미지배였다. 돌궐에 대한 철륵제부의 반란을 틈타, 628년에는 거란 8부의 수령들이 모두 부족을 이끌고 내속해왔다. 당은 이들을 10주(州)로 나눈 뒤, 마회를 도독으로 임명하여 8부를 통할케 하였다. 그뒤 730년 소고가 피살될 때까지 그가 속한 대하씨가 도독의 지위를 독점하였고, 이 시기를 대하씨 8부시대라고 부른다. 물론 대하씨 군장들의 권력은 대 외적으로 당에 의존하고, 대내적으로 종래 합의체적인 관습으로 인해 엄연한 거란족 8부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초부족적인 유목군장(遊牧君長)을 출현시킨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 몽고족과 퉁구스족의 혼혈족이라는 설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몽고계의 한 종족으로 추측된다. '거란'이라는 용어는 모용연(慕容燕)에 의해 격파된 선비족이 우문·해(奚)·거란으로 나뉘어 송막(松漠) 지방으로 피신한 4세기 전반부터 비로소 사서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들은 주변 집단에 대한 약탈과 방어의 필요가 있을 때만 서로 잠정적으로 동맹했으며,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갈등과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에 초부족적인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정치질서를 형성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스스로를 남과 구별하여 '키탄'(Qitan)이라고 부른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느슨한 형태의 연맹의식 혹은 부족의식은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는 10-12세기에 중국 북방에서 거란족이 세운 왕조이다. 점령지의 중국인을 통치하기 위해 북면관·남면관이라는 2중 지배체제를 만들었으며, 부족 고유의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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