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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파나국이 어떤 나라인가요? 당시 일본은 ? ?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라 4대왕 탈해이사금 편을 보면 석탈해 설화가 나오는데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에서 태어났는데 그나라는 왜국의 동북쪽에..

박송 입니다. 2020. 10. 1. 12:45

다파나국이 어떤 나라인가요? 당시 일본은 ? ?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라 4대왕 탈해이사금 편을 보면 석탈해 설화가 나오는데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에서 태어났는데 그나라는 왜국의 동북쪽에 있다. 앞서 그나라왕이 여국왕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지 7년이 되어 큰 알을 하나 낳았는데 사람이 알을 낳은것은 불길한 징조라 여겨 알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국아내는 차마 그렇게는 못한다며 알을 비단에 감싸서 재물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에 흘려 보냈는데 금관가야의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가야 사람들이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 거두지 못하고 진한 아진포에 이르러 어떤 할멈이 궤짝을 열었는데 한 아이가 있어 키워 길렀더니 비범하고 타고났다 하여 그를 눈여겨 봅니다. 후에 탈해왕이 되는데 진씨 박씨성을 가진 신라 고유 성씨와 달리 석씨를 성씨로 가졌다 하내요. 그 기막힌 사연이 할멈이 처음 궤작이 왔을때 까치 한마리가 날아와 울면서 그것을 따랐으므로 까치 작(鵲)에서 새 조(鳥)를 떼어 남은 글자인 석(昔)을 성씨로 삼고 바다로 표류해 나왔으므로 이름을 탈해라 지었다 합니다!! 이 후로 까치는 복을 전해준다는 동물로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한가위의 유래도 신라에서 유래된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까치 까치 설날은 오늘이고요 라고 하는데 명절의 풍습과 유래들이 대부분 신라에서 유래되고 전해졌다고들 한다.

 

 

여기서 다파나국은 어떤 나라였나요??? 일본에 있던 부족국가였던거 같은데 당시 일본의 부족국가 체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세요. 한국 중국은 알아도 일본은 까맣게 모르겠습니다. 일본도 상고역사라는게 있긴 있었나요 ? ? 없었던 걸로 압니다. 기원전 8000년 죠몬시대와 기원전 300년 야요이시대라 해서 아주 미개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던데 어디까지다 미개했던거죠 문명을 이뤄낸건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4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철기를 받아들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한반도에 있던 유민이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해 살았다 하던데요!! 일본은 고유 종족이 없이 우리와 똑같은 예맥이라 하내요. 왜라는 종족은 따로 없다 합니다. 왜는 국가의 명칭이지 종족이 아니라 하내요. 정말 일본은 건국설화도 없이 그냥 한반도 유민들에 의해 거수국이 되어 살았던 건가요??

바람신채택답변수 1,629받은감사수 1한국사81위, 사회, 도덕73위, 소규모종교65위

협보(陜父)는 누구인가?


생졸년 미상. 주몽(朱蒙)의 친구이며 고구려 건국의 주역(개국공신,창업공신)

원래 부여왕의 신하였으나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북부여에서 남쪽으로 옮겨올 때 오이(烏伊)‧마리(摩離)와 함께 이주해 와서 주몽 초기의 세력 기반의 하나를 이루었다. 3년(유리왕 22) 대보(大輔)의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사를 소홀히 하는 유리왕을 간하다가 노여움을 사 좌천, 관원(官園)의 일을 맡게 되었다. 이에 분개하여 남쪽 한(韓) 으로 이주해 갔다. (한은 대동강 지역) [참고문헌]三國史記 ,東國李相國集 등

이보다 먼저 협보가 남한으로 달아나서 마한산(지금의 평양)속에 은거하고 있을 대 따라와서 사는 자가 수백여 가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해 흉년이 들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길에 가득하였다.이때 협보가 장차 변란이 있을 줄 알고 무리를 꾀어 양식을싸서 배를 타고 패수를 따라 내려왔다.


해포를 거쳐 몰래 항해하여 곧장 구야한국에 이르니 곧 가라해의 북쪽 해안이었다. 몇 달 지내다가 아소산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파라국의 시조이다. [참고문헌]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환단고기 완역본(상생출판)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damoolnet/50009994918

신라 석탈해(昔脫解)왕은 다파라국 출신

 


MBC 드라마 '김수로 '에서 석탈해 역의 이필모

1. [삼국사기] : 탈해(脫解)는 본시 다파라국의 출생으로 그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 천리 쯤 되는 곳에 있다.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탈해를] 또는 토해(吐解)라고도 하였다.>이 왕위에 올랐다. 그때 나이는 62세였다. 성은 석(昔)씨이고 왕비는 아효부인(阿孝夫人)이었다.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쪽 1천 리 되는 곳에 있다.

(서기 57년)에 탈해(脫解)가 진한(辰韓) 계림국(鷄林國)의 왕위에 오른다. 신라(新羅) 상대(上代)인 (서기 184년)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이 정권을 잡고 즉위한 뒤부터 내물이사금(奈勿尼師今)이 즉위해 정권이 바뀔 때까지 173년 동안 신라(新羅)를 다스린 석(昔)씨족의 시조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은, 그 동안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2. [삼국유사] : 나는 본래 용성국(龍城國) 사람이요. (정명국(正明國) 또는 완하국(琓夏국)이라고도 한다. 완하는 또 화하국(花廈國)이라고도 하니 용성(龍城)은 왜국 동북 천 리 떨어진 곳에 있다).

3.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 : .....이보다 앞서 협보(陜父)가 남한으로 달아나서 마한산(지금의 평양)속에 은거하고 있을 때 따라와서 사는 자가 수백여 가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해 흉년이 들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길에 가득하였다.이때 협보가 장차 변란이 있을 줄 알고 무리를 꾀어 양식을싸서 배를 타고 패수를 따라 내려왔다.
해포를 거쳐 몰래 항해하여 곧장 구야한국에 이르니 곧 가라해의 북쪽 해안이었다. 몇 달 지내다가 아소산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파라국의 시조이다.


정리 : 신라 제4대 탈해왕(서기 57년-서기 80년)은 다파라국 출신이며, 다파라국의 시조는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의 신하 협보이고, 다파라국은 일본 땅 아소산 부근에 있었고 원래는 구마모또(웅본성, 웅습성)를 차지한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