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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어느 날 거위가.2019’ 신춘문예.한국일보 당선작

박송 입니다. 2019. 6. 9. 11:06

[千日 글짓기-544] 전예진 단편소설 『어느 날 거위가』 독후기 / 2019’ 신춘문예-4 한국일보 당선작

70년대 후반에 나는 사방이 온통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서해의 한 孤島에서 군대 생활을 했었다. 바다 말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북한 땅 해주와 옹진반도가 전부였다. 외출 외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휴가라고 해봐야 30여개월의 군 생활 중 25일짜리 정기 휴가 2번 다녀온 게 다였다. 그러다 보니까 그 외로움은 말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대원들은 그 생활에 순응하고 군 생활이 다 그러려니 하고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가기만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일부 대원들은 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꼼수를 부렸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사례가 김 상병의 가족 죽이기다. 가족 중에 상을 당하면 휴가를 보내주는 제도를 악용해 수시로 휴가를 다녀왔다. 그의 휴가를 얻기 위한 극단의 무리수는 적지 않은 가족, 친지들의 희생 아닌 희생도 불사했다. (사실은 거짓 증명서를 꾸며서 가족들이 상을 당했다는 조작극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그뿐만 아니라 성질이 다혈질이고 난폭하여 늘 후임들의 원망의 대상이었다. 나조차 겉으론 드러내지 못했지만 속으론 그를 어떻게 하면 곤경에 빠뜨릴까에 대하여 골몰하기도 했다.

전예진 작가에 의하여 쓰인 201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작 『어느 날 거위』는 군대에서 일어나는 계급 간 갈등의 문제를 희화해해서 우리 사회에 만연된 폭력의 횡포와 근원이 무엇인가를 기지와 해학의 세계를 통하여 통열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돌출된 사건들(그게 진실의 여부를 떠나서)은 큰 혼란으로 이어질 때가 종종 있다. 소설은 군부대 주변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부부에게 큰 타격을 주게 된 군내에서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조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막인즉, 훈련 중 한 장병이 오한이 든다며 떨다가 생활관으로 돌아가자마자 쓰러지고, 침을 흘리고 구토 증세를 보이다가 깜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잇따라 일어나서 장병들의 외출, 외박, 면회가 금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소문은 지역 채널을 통해 알려지면서 SNS를 통해 일파만파로 전해지면서 지역 경제에 심각한 국면을 맞게 한다. 검증되지 않은 가짜 뉴스의 폐해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궁하면 통한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소설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인 일명 '와사비'로 통하는 병사로부터 치킨 세 마리와 고구마튀김까지 주문을 받는다. 단종될 위기에 놓인 '와사비 간장 치킨'을 꼭 시킨다고 해서 '와사비'로 불리는 그였다. 오토바이가 부대 앞에 도착하고​, 주문한 치킨을 넘기고 카드 결제를 마친 후, ​ 와사비는 오른쪽을 가리키면서 "..... 가져가실래요?"라고 소곤됐다.목에 손수건이 둘린 덩치가 큰 거위였다. 배달통에 실려온 거위는 주차장에 매였고 이어서 걸려온 전화 "장준태요. 그 새끼가 변한 거예요. 분명히 봤어요.".

장병장이 거위로 변했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수시로 지위를 이용해 폭력과 횡포를 일삼았다면 그에 대한 원망이 주문이 돼서 그의 염원이 소설 속에 현실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선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없다. 이기주의에 물든 오직 탐욕만 있을 뿐이다. 소설은 거위가 닭 다리를 삼키려고 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치킨집 부부는 한 술 더 떠서 닭 다리의 살을 발라서 먹이는 단계까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잡식동물이라고 하지만 거위가 닭고기를 먹는다는 설정은 웬만한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소설적 묘사가 아닐까?

하여간 닭다리라는 별명까지 얻은 거위는 치킨집 주인에게 잡혀먹히지 않은 은혜도 모르고 홀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모르고 설치는 사회의 한 단면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독은 제거되야 한다. 하지만 오염된 독은 정화되기가 만만치 않다. 소설은 거위를 호수 주변에 버린다. 버림을 받은 거위는 호수 주변에서 행인들에게 난동을 부린다. 그리고 거위는 치킨 가게로 다시 찾아온다. 치킨집 주인은 애초에 거위를 넘겨준 이현우(와사비란 별명의 병사) 상병을 찾아가서 거위에 대하여 상세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전예진 단편소설 『어느 날 거위가』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 약자에 대한 횡포의 실상과 위험성 그리고 관례라는 명목으로 면죄부를 주는 잘못된 관습의 폐해를 은유적으로 잘 묘사한 작품이 되어서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문학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 강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