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틸라 동로마 제국 침입 아틸라와 형 블레다가 이어받은 제국은 서쪽의 알프스 지방과 발트 해 연안에서 동쪽의 카스피 해 근처까지 걸쳐 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은 마르구스(포자레박)에서 동로마 제국과 체결한 평화조약을 통해 처음으로 공동통치자로서 역사에 나타났다. 이 조약으로 동로마는 지금까지 훈족에 지불해왔던 보조금을 2배로 늘리고 이후 매년 300kg의 황금을 주기로 약속했다. 435~439년의 아틸라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그는 자기 영토의 북부 또는 동부 야만족에 대한 정복사업을 했던 것 같다. 동로마 제국은 마르구스 조약에서 약정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았고, 그결과 동로마군이 서부와 동부 국경지대에 머무르고 있던 441년 아틸라는 도나우 강 유역 변경에 대해 강력한 습격을 감행했다. 그는 싱기두눔(베모그라드)을 포함한 많은 도시를 점령하고 파괴했다. 동로마 제국은 442년에 간신히 1년의 휴전을 맺고 서부에 있던 군대를 불러들였다. 그러나 443년 아틸라는 다시 공격을 개시했다. 도나우 강변의 도시들부터 휩쓸기 시작하여 나이수스(니시)와 세르디카(소피아)를 향해 제국의 내부로 밀고들어가 두 도시를 파괴했다. 이어서 콘스탄티노플로 방향을 돌려서 필리포폴리스를 점령하고, 이후 계속되는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의 주력부대를 격파하여 콘스탄티노플의 북쪽과 남쪽 해안까지 진출했다. 훈족 사수들이 콘스탄티노플의 거대한 성벽을 뚫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틸라는 갈리폴리 반도로 퇴각해 있던 동로마의 나머지 군대를 공격하여 괴멸시켰다. 곧이은 평화조약에서 아틸라는 동로마에게 황금 2,570㎏에 달하는 연체된 공납금을 지불하도록 했고, 연간 공납금을 3배로 늘려 그후부터 매년 황금 900kg을 강탈했다. 443년 가을에 체결된 평화조약 이후 아틸라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445년경 그는 형 블레다를 죽이고 유일한 전제군주로서 훈족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447년에는 동로마 제국에 2번째 대규모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그 전투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전쟁은 441~443년 때보다 더 큰 규모로 계획되었고, 주공격 방향은 전의 공격지보다 좀더 동쪽인 남동부 유럽의 로어스키티아와 모에시아 지방이었다. 그는 우투스(비드) 강에서 동로마 제국 군대를 맞아 격파했으나, 그 자신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어서 아틸라는 발칸 지방을 황폐화시키면서 남쪽으로 내달아 그리스에 이르렀다. 그리스에 들어온 그는 테르모필레에서 저지당했다. 이후 3년간의 침략 기간은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외교사절과 아틸라 간의 복잡한 협상과정으로 점철되었다. 이때의 외교적 접촉에 관한 많은 세부 내용은 449년 로마 사절단의 일원으로 왈라키아에 있던 아틸라의 사령부를 방문한 파니움의 프리스쿠스가 쓴 〈역사 History〉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다. 전쟁을 끝맺는 협정 내용은 443년보다 더 가혹했다. 동로마는 도나우 강 남쪽의 광대한 지역에서 철수해야 했고, 금액은 알 수 없지만 동로마의 공납은 계속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