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행사 소식

김유정 작품

박송 입니다. 2015. 3. 5. 13:04

<김유정 전집> 독후감을 시작하며

 

발제자 : 서지혜

 

한 달간 저는 참으로 많이 잤습니다. 후텁지근한 오후, 쿠션을 등에 대고 김유정 전집을 펼쳐들면, 몇 줄 읽지 않아서 졸도하듯 곯아떨어집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실내에서 썍~쌕~ 졸다보면, 머리가 띵~해져 더 이상 잘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는 멍한 상태가 됩니다. 그 때는 그저 얼음물만 벌컥벌컥~.

여름방학이 끝나가니, 독서환경도 다시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 때는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던 단편들이 요 며칠 들어 한번에 쉽게 읽히니, 독후감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 같군요. 그런데, 몇 개를 골라서 쓰자니,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29살 꽃다운 나이에 가난한 폐결핵 환자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 그가 더없이 가엽고, 그동안 외국 작가의 소설을 편애했던 것 같아 우리 문학의 뿌리인 그에게 미안합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그가 쓴 모든 글들을 다 요약해 보려고 합니다.

이름하여 익스트림 독후감! 예전에 영화로 만난 익스트림 스포츠목숨 걸고 즐기는 스포츠의 한 분야였는데, 철인 3종 경기 같은 극도의 정신력과 체력, 용기를 요하는 스포츠였습니다.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려 80도 경사의 설산을 스키타고 내려 옵니다. 얼추 내려왔다 안도할 떄쯤 무슨 폭약 같은 것을 터뜨려서 일부러 눈사태를 만들고, 아슬아슬하게 탈출하는 것이었답니다. 오~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 짜릿하네요. 요즘 제가 그만한 스릴을 누리고 싶어 안달이랍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독후감에 익스트림을 씌워보려고 합니다.

그의 전집에 나온 글이 총 44편. 소설과 수필, 서간문을 합쳐서랍니다. 이 중 편지 2개를 빼고서는 다 요약해 보려고 해요. 과도한 정신집중과 시간투자, 모자란 글에 대한 비난을 무릅써야 하니 저한테는 익스트림이랍니다. 부디 우리 클럽 회원님들이 재미나게 읽기를 바라며, 시작!

 

1. 그는 어떤 시대에 살았던 것일까요?

 

몇 달 전만해도 지금의 서울이 1900년대 초반, 혼란스러웠던 경성을 닮았다 하여 관련 책들이 유행처럼 소개됐습니다. 모던 뽀이, 모던 걸들이 화려한 의상을 뽐내며 딴스홀에 모여 자유연애로 소일할 때, 굶주린 조선인들은 그들을 욕하면서도 부러워했습니다. 20살 전후의 김유정은 그들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혹시 그 자신이 모던뽀이는 아니었을까요? 또, 그가 작품에서 피폐하게 그리는 농촌 풍경은 실제로도 그러했을까요? 정말 농부의 아내가 몸을 팔아서 호구를 해야 했을까요? 지금같으면 돌을 맞을 일인데, 그의 작품에서는 동네 사람들마저 암묵적으로 이해하는 분위기입니다. 스무살 청년의 피끓는 정념이 작품에 과도하게 흘러넘친 것은 아닐까 의심이 가기도 하는군요. 그럼 그의 글 속에서 그 시대를 온 몸으로 느껴볼까요?

 

<봄밤>

(영애와 옥녀는 극장구경을 다녀오다가 땅에 자그마한 상자가 떨어진 것을 보고 줍게 된다. 그들은 상자의 흙을 털며, 분명 값비싼 물건이 들어있을 거라 여기고 그 안의 물건을 끄집어 내는데, 누군가 장난스레 집어넣은 이 들어 있었다. 그것을 도로 내던지며 침을 뱉으니 구석에 숨었던 장난꾼들이 나오며 똥은 왜 금이 아닌가?하고 놀린다.)

이 짧은 수필에서 보면, 두 여인은 극장 구경을 가고, 그 중 한 명은 돈이 없어 뜻대로 되지 않는 연애로 슬퍼하고 있습니다. (1936년 4월<여성>에 발표)

 

<이런 음악회>

(콩쿨음악대회에 같은 중학교 동창이 예선에 들어 응원갔던 이야기. 자칭 학교의 응원대장으로 나대는 황철이가 사람이 부족한 것 같아 나를 돼지고기 만두 사 준다고 꼬셔 음악회장으로 데려간다.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성악을 듣다가 앞 사람 의자에 코를 박고 졸았는데, 갑자기 황철이가 흔들어 꺠워 우리 악사가 나왔다 해서 응원하게 된다. 연주가 끝나기가 무섭게 재청이요! 악을 써 대니 앞에 앉은 여학생이 딱한 표정으로 쳐다 보고, 퀭하게 넓은 장내는 우리 10여명의 존재가 너무 희미하였다. 나는 뒤이어 나온 신사가 바이올린을 멋지게 연주하자 감동하고 재청이요하고 외친다. 황철이는 이런 나를 밖으로 불러내더니 너 누굴 응원하러 왔니하며 성을 낸다. 나는 황철이가 주먹으로 대들려는 것을 더 못 참고 돼지고기 만두 안 먹으면 고만이다! 말하고는 부리나케 층계를 내려온다.)

중학생 시절의 김유정이 어떤 아이였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 수필입니다. 좋은 음악을 감상할 줄 아는 심미안을 가졌지만, 성악은 귀가 간지럽다, 앵앵거리는 태도가 가엽다일반음악도 씩씩한 놈이 아니면 못 듣는다고 밝히네요. 어쨌든 이 시절, 경성에서는 서양식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고, 여학생과 남학생이 같이 감상했군요. (1936년 4월 <중앙>에 발표)

 

<심청>  

(하릴없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지내는 그는 답답할 떄마다 종로에 뛰어나오는 게 버릇이다. 번듯한 도시 경관을 버리는 것은 남루한 거지들. 그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거지에게 두루마기 안의 꾀쬐쬐한 형편을 보여주며 떼어낸다. 하지만 앞 길에 네 살된 아이를 데리고 동냥하는 병든 거지를 보고는 불쾌함을 참지 못한다. 마침 저쪽에서 길을 치우는 나리가 등장하고, 그 거지가족을 골목 안으로 내쫒는다. 그는 나리가 고보시절 크리스천을 믿던 동창인 것을 알아보고 오 주여! 베드로가 거지를 치워주시니 감사하나이다하고 기도를 동창 앞에서 읊어댄다. 동무는 무척 신이 나서 으쓱대며 반대쪽으로 걸어간다.)

이 작품에서는 근대 도시의 외형을 잡아가는 서울과 그와 대조적으로 거리에 널린 거지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도시를 건설한다는 명색으로 웅장한 건축이 날로 늘어가고 한편에서는 낡은 단층집은 수리조차 허락치 않는다. 서울의 면목을 위하여 얼른 개과천선하고 훌륭한 양옥이 되라는 말이었다. 게다 각 상점을 보라. 객들에게 미관을 주기 위하여 서로 시새워 별의별 것을 다 해가며 어떠한 노력도 물질도 아끼지 않는 모양 같다마는 기름때가 짜르르한 헌 누더기를 두르고 거지가 이런 상점 앞에 버티고 서서 나리! 한 푼 주우……하고 어줍대는 그 꼴이라니 눈이 시리도록 짜장 가관이다 땅바닥의 쇠똥 말똥만 칠 게 아니라 문화생활의 장애물인 거지를 먼저 치우라. 천당으로 보내든, 산 채로 묶어 한강에 띄우든……

유정의 진심은 아닐 것입니다. (1932년 탈고, 1936년 1월 <중앙>에 발표)

 

<전차가 희극을 낳아>

(여름밤 청량리역에서 동대문으로 향하던 전차의 차장이 경험한 이야기. 밤 11시가 넘어 종차를 타고 종점인 동대문을 향해 가면서 피곤에 못 이겨 졸면서 발차 신호를 하다가 여보! 사람 안 태요하는 뾰루진 소리를 듣는다. 곧이어 댕기를 들인 십칠팔세쯤의 여학생이 타고, 그 뒤로 금년에 처음 입학한 듯 싶은 사각모자의 청년이 뒤따라 탄다. 그들은 교외로 산책갔다가 오는 길인 듯 보였고, 차장은 다시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다. 색시가 여보서요! 이 표 안 찍어줘요? 요구하고 차장이 요동도 없자 사각모도 거든다. 졸고 있던 차장이 그 거친 소리를 안 들은 바는 아니나, 표 찍을 때 되면 어련히 찍을려고 하며 그들을 괘씸히 여긴다. 결국 표를 받고 돈을 거슬러주고 나오는데, 돈가방 사이로 색시의 댕기가 끼어 색시가 비명을 지르며 몇 걸음을 끌려왔다. 차장은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사과하나 색시는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사각모는 학생 신분이 깍일 것을 우려해 나서지 못하다가 색시가 표를 차장에게 내팽개치고 내릴 때. 겨우 땅에 침을 뱉는다. 차장은 나에게 자신이 심술궂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가 그런 흉계를 꾸몄다고 생각지 않는다.)     (1936년 6월 <조광>에 발표)

 

<잎이 푸르러 가시던 님이>

(강원도 농군이 흔히 부르는 노래 속에 농촌의 어려운 실정이 녹아 있음을 이야기 한다. 일전 한 벗이 나는 시골이, 한산한 시골이 그립다했을 때, 나는 그에게 시골이란 그리 아름답고 고요한 곳이 아닙니다 퇴페한 시골, 굶주린 농민은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굶주린 창자의 야릇한 기미는 도시 모릅니다고 혼잣말을 전한다. <잎이 푸르러.> 노랫말 중 잘 살고 못 살긴 내 분복이요, 하이칼라 서방님만 얻어주게유란 대목이 있다. 한평생 지지리 굶다 마느니 서울 서방님 곁에 앉아 밥 먹고, 옷 입고 잘사는 이상을 시골 아낙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 년 후에는 농촌의 계집이 씨가 마르고 알총각들만 남을 것이 (술만 먹으면) 걱정이다) 이 글을 읽으면 <봄봄>에서 장가를 들기 위해 소작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이해됩니다.

(1935년 3월 <조선일보>에 발표)

 

2. 들병이가 나오는 작품들

 

<조선의 집시 - 들병이 철학> 

단편소설 <아내>, <총각과 맹꽁이>,<솥>에는 들병이라는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국어사전에는 들병장수로, 병에다 술을 가지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이라네요. 요즘에는 없어진 직업이지만, 당시에는 흔했나 봅니다. 유정은 이 수필에서 들병이가 어떻게 생겨나고, 계절에 따라 어떻게 활동하며, 농촌사회에 어떤 순기능과 역기능을 끼치는지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 수필은 <아내>, <총각과 맹꽁이>, <솥>의 스토리가 모두 담겨있는 액기스같습니다. <아내>는 평범한 산골 부부가 어떻게 들병이가 되는지 준비과정이, <총각과 맹꽁이>는 본격적으로 들병이가 농촌 주막에서 어떻게 장사를 벌이고 수완을 보이는지, <솥>은 들병이에 빠져 마지막 세간이랄 수 있는 마저 갖다바치는 유부남과 동네를 떠나는 들병이와 남편의 모습이 나옵니다.

다시 수필로 돌아가면, 이 한 편의 논문과도 같은 글에서는 들병이의 면모를 무척 학구적으로 분석해 들어갑니다.

..... 소박한 농군들을 상대로 생활하는 들병이라 그 수단도 서울의 작부들과는 색채를 달리한다. 말하자면 작부들의 애교는 임시변통으로 족하나 그러나 들병이는 끈끈한 사랑 즉 사랑의 지속성을 요한다. 왜냐면 밤마다 오는 놈들이 거의 동시에 몰려들기 때문에 일정한 추파를 보류치 않으면 당장에 권비백산의 수라장이 되기가 쉽다

들병이는 어디로 판단하든 물론 정당한 노동자이다. 그러나 떄로는 불법행위가 없는 것도 아니니 그런 때에도 우리는 증오감을 갖기보다는 일종의 애교를 느끼게 된다. 왜냐면 그 법식이 너무 단순하고 솔직하고 무기교라 해학미가 따르기 떄문이다.

또, 무의도식하는 남편이 들병이에게 어떤 존재인지도 주의깊게 관찰해서 이야기 합니다.

엄동설한에 태중으로 나섰다가 산기가 있을 때에는 좀 곡경이다. 술을 팔다 말고 술상 앞에서 해산하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이런 떄에이면 남편은 비로소 아내에게 밥값을 보답한다. 희색이 만면해서 방에 불을 지피고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지성으로 보호한다. 남편은 이 아이가 자기의 자식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자기 소유에 속하는 자식이라는 그 점에 만족할 뿐이다.

마지막에는 들병이 부부에 얹혀 다니는 연애지상주의자가 나오는데, 박대하지 않고 동행하면서 심복같이 잔심부름이나 시킨다 합니다. 종말에는 누가 본 남편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떄도 있다네요. 혹시 김유정도 한 때는 이 연애지상주의자였을까요?  

김유정은 1930년(22세) 박녹주에게 짝사랑했으나 거절당하고 춘천 실레 마을로 내려왔으며, 방랑생활을 하다가 들병이와 친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35년 10월 <매일신보>에 발표)

 

<아내>  

산골의 가난한 부부. 남편은 아들을 많이 낳아서 호강하자지만, 아내는 먹여살리지도 못할 것을 낳아 뭐하냐며 하나 있는 아들에 만족한다. 그러면서 굶느니 들병이가 되는 게 낫겠다며 남편에게 소리를 가르쳐 달라한다. 마지못해 남편은 아내를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강원도 아리랑>, <방아타령>은 밤새 가르쳐도 진전이 없는데, 야학에서 등뒤로 배운 신식창가는 잘도 부른다. 남편은 그것도 못마땅하지만 갈수록 아내의 행실이 타락해 가는 것도 걱정이다. 급기야 아랫마을 뭉태를 따라가 술을 진창 마시는 것을 나무팔고 돌아오던 남편이 보고 들어가 엎어버린다. 흠씬 맞아 뻗어버린 아내를 들쳐업고 오면서 남편은 들병이한다고 제 자식마저 내팽개치는 아내에게 실망하고, 더 이상 들병이 시키지 말고 아들이나 열댓명씩 낳게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1935년 12월 <사해공론>에 발표)

 

이 글에서 아내를 농락해먹은 놈으로 뭉태가 나옵니다. 그리고 다음 두 작품에서도 들병이 곁에는 항상 뭉태가 있읍니다. 김유정은 왜 뭉태란 인물을 이렇게 반복해서 배치하고 있는 것일까요?

 

<총각과 맹꽁이>   

순진하고 성실한 노총각 덕만이가 주인공이다. 가물고 무더운 여름, 덕만이의 조밭에 품앗이하러 친구들이 모였는데, 그 중 뭉태가 마을에 들병이가 온 소식을 전한다. 덕만이는 들병이에게 남편이 없다는 뭉태 말에 ‘‘형님, 나 장가좀 들여주하며 각별히 부탁하고, 술값도 혼자 전부 물겠다 한다. 저녁에 여섯 명의 총각들이 들병이를 만나러 가고 덕만이는 앞으로 장가들어 어떻게 살까 하는 희망에 부푼다. 그러나 뭉태는 자기 옆에 들병이를 끼고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덕만이를 소개시키지도 않는다. 덕만이는 용기를 내어 들병이 앞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자기 소개를 하는데, 들병이는 비웃어 버린다. 새벽녁, 뭉태는 들병이 옆구리를 찌르며 신호를 보내고 오줌 누러 간다며 차례대로 나간다. 덕만이는 기다리다 지쳐 찾으러 나오게 되고, 콩잎에 가린 옷자락을 본다. 다짜고짜 콩밭으로 달려들어 뭉태에게 술값을 도로 내놔라고 따지만, 뭉태는 들병이를 데리고 콩밭을 나가버리고 덕만이만 남는다. 그는 주먹으로 눈물을 비비고는 살재두 나는 인전 안 살터이유!하고 소리를 지르고 집으로 돌아간다. 밭에서는 맹꽁이가 비웃듯이 , 하고 울어댄다.

이 수필은 이야기 전개도 재미나지만, 표현도 참 신선하고 뛰어납니다. 그 중에 제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든 부분은 ‘… 봉당 아래 하얀 귀여운 신이 납죽 놓였다. 덕만이는 유심히 보았다. 돌아앉아서 남이 혹시 보지나 않나 살핀다. 그리고 퍼드러진 시커먼 흙발에다 그 신을 뀌고는 눈을 지그시 감아보았다. 계집의 신이다. 다시 벗어 제 발에 뀌고는 짝 없이 기뻐한다. 였습니다. 김유정의 작품 중 독자가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자꾸 읽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재미가 있었습니다. (1933년 9월 <신여성>에 발표)

 

<솥> 

들병이(계숙)와 정분난 근식이 주인공이다. 아내는 남편(근식)이 지난 밤 자신의 속곳과 맷돌을 훔쳐나가 술 사먹은 것에 단단히 화가 나 있다. 하지만 아내가 보지 않는 틈을 타 근식은 함지박도 가지고 나간다. 술값 대신 함지박을 받은 계숙은 이리저리 두둘겨 보며 좋아하다가, 낼 떠나유…”하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근식은 계숙을 따라가겠다 하고, 날이 새기 전에 살림살이를 훔쳐 오마고 약속한다. 그러나 계숙과 잠자리 들기는 쉽지 않다. 한 구석에 누워있던 아이가 칭얼대고, 뭉태도 와서 낮은 목소리로 계숙을 부른다. 계숙이 잠깐만  비켜달라 부탁해 근식은 겨울밤 찬바람을 맞으며 문밖에서 기다린다. 뭉태가 가고 다시 계숙의 방에 잠깐 앉았는데,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가 들린다. 뭉태는 계숙에게 떠날 채비하라고 이르고는 제 집에 와서 솥과 수저를 훔쳐온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고 하니 계숙의 남편이 나타나고 그동안 돈대신 받은 물건들을 지게에 지며 같이 갑시다유하고 권한다. 어리벙벙한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근식의 아내가 달려와 솥을 내 놓으라고 울부짖지만, 근식은 우리 것이 아니야며 울상이 되어 들병이 내외가 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1935년 9월 <매일신보>에 발표)

 

3. 가여운 너무나 가여운

 

김유정의 단편을 읽다가, 너무 불쌍해서 눈을 감아 버린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더 이상 글을 읽는다는 것이 고통스러우리만치 이야기는 처연합니다. 글 속에 들어가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도 모르게 솟을만큼 소설 속의 여성들은 가난, 폭력, 증오에 익숙해 있는 약자들입니다. 정말이지 독자의 가슴을, 양심을 후벼파는 솜씨가 스릴러 못지 않네요. 특히 작품들 중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유독 많은데, 시골 아낙네가 주인공인 것은 <소낙비>, <산골나그네>, <떙볕>이고, 서울의 판자촌 아낙네가 나오는 것은 <슬픈 이야기>,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것은 <떡>, <애기>가 있습니다. 그럼, 용기를 내어 이 가여운 여성들을 만나볼까요?

 

<소낙비>   

주인공은 춘호와 춘호처다. 춘호는 고향인 인제를 등진 지 3년이 지났다. 흉작이 이어지다 보니 빚쟁이들의 위협도 날로 심해져 야밤도주한 사람이다. 이 후 어린 아내와 표랑하다가 이 강원도 산골마을에까지 왔지만, 농토를 빌리지 못해 여지껏 백수생활이다. 그러다 뒷산에 노름판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밑천 2원이 없다. 그 때부터 춘호는 아내를 들볶는다. 사실상 집안의 밥벌이는 아내가 도맡아 하고 있는데, 주로 하루종일 산을 타서 캐 온 도라지, 더덕을 보리쌀과 바꾸거나, 남의 집에서 보리방아를 온 종일 찧어 주고 보리밥을 얻어와 부부가 끼니를 때우는 것이다. 어느 날, 춘호는 감자를 씻고 있는 아내를 지게막대로 후려치며 돈을 빌려 오라 하고, 아내는 쇠돌엄마집에 다녀온다며 그 자리를 도망친다. 쇠돌네는 부자양반인 이 주사와 배가 맞은 후로 밥걱정을 안 하고 살고, 그 남편도 이 틈에 농사에서 한 손을 뗀 집이다. 갑작스레 소낙비가 내리고, 춘호처는 쇠돌네 근처 밤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면서 쇠돌엄마가 집에 오기를 기다린다. 이 때 이 주사가 지우산을 쓰고 쇠돌네 집으로 들어간다. 춘호처는 망설인다. 이 주사는 지난 봄 밤에 그녀를 욕보이려다 (그녀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도망쳤던 인물. 쇠돌엄마처럼 호강할 기회를 놓친 거라 두고두고 후회하던 춘호처였다. 이윽고 그녀는 쇠돌네 집으로 들어간다. 혼자 있던 이주사는 그녀를 농락하고, 돈 2원 줄 테니 내일 또 만나자 한다. 춘호는 집에 돌아온 아내가 돈 2원을 빌리게 됐다 말하자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아내 대신 감자도 삶고 노름으로 일확천금 얻으면 서울가서 살자며 서울가면 꼭 지켜야 할 필수조건도 즐겁게 설명한다. 다음 날, 춘호는 아내의 머리를 직접 빗기고 아침에 삼아놓았던 짚신을 신겨 보낸다. 바루 곧 와, 응? 하면서. (1935년 1월 <조선일보>에 발표)

 

저는 영화로 봤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합니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 봤지요. ^^. 갑자기 내린 소낙비 때문에 춘호처는 옷도 다 젖고, 만나려 했던 쇠돌엄마도 비그치기까지는 기다려야 할 형편입니다. 하지만 이주사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쇠돌엄마한테 아쉬운 소리 안하고도 돈 2원이 쉽게 생기게 되었고, 부쳐먹을 농토도 얻게 된 것입니다. 모욕적인 순간이 지나고 남편에게 돌아온 춘호처는 그저 남편이 전에 없이 잘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소낙비 그친 후에 해가 반짝하듯이 춘호처 인생이 펴지려는 것 같습니다. 작품을 읽다보면  소낙비가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되는지 즐겁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20대의 피끓는 젊은이, 김유정은 애로틱한 분위기를 정말 잘도 그려내는 것 같네요.

 

<산골나그네>  

떄는 가을. 산골에서 주막집을 하는 홀어머니(덕돌모)는 달포째 주막에 손님이 들지 않아 벌이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보는 젊은 아낙네가 하룻밤 재워달라고 나타난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이튿날부터 주막은 붐비기 시작하는데, 그녀는 권주가 하나 못하는 숙맥이다. 홀어머니는 그런 젊은 아낙이 더욱 며느리감으로 욕심나는데, 아들이 알아서 하룻밤에 장가들어 버린다. 덕돌이는 첫날을 치르고 부썩부썩 기운이 난다. 동무들이 옷이 허름하다 놀리면 속으로 좋은 옷은 집에 두었다. 인조견 조끼, 저고리, 새하얀 옥당목 겹바지하고 생각한다. 29년 만에 얻은 귀여운 아내가 마음이 돌아앉을까 미리미리 사려한 것이다. 바로 그 날 밤, 옆에서 자던 아내가 없어졌다. 은비녀는 배게 밑에 두고 덕돌이 새 옷만 없어졌다. 한편 젊은 아낙네는 내를 몇 번 건너 물방앗간에 이른다. 병들은 거지 사내가 누웠다가 색시를 보고, 인제 고만 떠날 테이야?고 묻는다. 그는 달빛에 번쩍거리는 새신랑 옷을 입고서, 부축하는 계집과 함께 뒤툭거리며 산 저편으로 도망간다. (1933년 3월 <제1선>에 발표)

 

병든 남편의 옷을 마련하러 산골마을에 들른 이 여인은 편안한 삶에 손끝만큼의 미련도 없어 보입니다. 부부간의 정이 그토록 깊었을까요? 가슴 속에서 묵직한 한 숨이 새어 나옵니다. 도망치면서 끝내 은비녀를 챙기지 않은 것은 새신랑 덕돌이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였을까요? 작가는 덕돌 모자의 마음은 불시로 읽으면서도, 젊은 아낙의 마음은 읽지 않네요. 그로서도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던 것일까요? 이 작품은 이웃 동네에서 소문으로 흘러다니던 이야기를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이라 합니다.

 

<떙볕>  

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길을 덕순이는 아내를 지게에 지고 대학병원으로 찾아간다. 기영이 할아버지의 말로는 병원에 가면 월급도 주고 병도 고쳐 준다는 것이었다. 열네 살 된 조선 아이가 어른보다도 더 부대한 것을 보고 이상한 병이라고 붙잡아 들여서 한 달에 십 원씩 월급을 주고, 그뿐인가 먹이고 입히고 하며 연구하고 있다지 않은가. 그러나 덕순이가 아내를 지고 병원에 찾아가 산부인과에 들어갔을 때, 의사는 간호부를 통해 아내의 뱃속에는 어린애가 있는데 나오려다 그대로 죽었다며 수술을 하지 않으면 1주일도 못 가 죽는다는 것이었다. 덕순이가 월급 같은 건 안 주나요? 하고 물었는데 간호부는 월급이요? 하고 놀라면서 제 병 고쳐 주는데 무슨 월급을 준단 말이요? 하고 톡 쏘는 바람에 덕순은 기가 죽고 말았다. “나는 죽으면 죽었지 배는 안 째요라고 말하는 아내를 다시 지게에 지고 돌아 나오는 덕순의 걸음은 무거웠다. 저 사촌 형님께 쌀 두 되 꿔다 먹은 거 부디 잊지 말고 갚우 그러구 임자 옷은 영근 어머이더러 사정 얘길 하구 좀 빨아 달래우 하는 아내의 말을 필시 유언이라고 깨달으면서 쇠뿔도 녹일 듯한 뜨거운 땡볕 아래를 땀을 흘려 가며 내려오는 것이었다.

김유정의 대표작으로 흔히 《봄 ·봄》을 들지만, 이 《땡볕》은 객관소설로나 심리소설로 성공한 작품으로, 그의 어느 작품보다 인생의 애수가 깃들어 있는 소설이다. 198년 하명중(河明中)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두산대백과에서 발췌-

 

감사하게도 줄거리를 인터넷에서 찾았습니다. 덕순이는 서울에 와서 벌이도 못하고 아내까지 잃게 생겼습니다. 지금은 멀쩡히 말도 주고 받는 아내가 1주일 후면 죽는답니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요즘이라면 수술을 해서 몸건강히 살았을 텐데.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가 21세기에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돈이 수천만원 들어 감히 치료도 못 해보고 죽음을 맞는 이들이 어디 한 둘입니까. 그러고 보면 <떙볕>의 덕순 부부 얘기는 옛날 일로 치부할 게 아닙니다. 작가는 인간사 어디서나 되풀이 될 일을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만들어 오래도록 읽게 하네요. 늦더위가 기승하는 요즈음, <땡볕>을 읽으면서 덕순이의 몸과 마음을 오롯이 느낍니다. 어휴~ 덥다. 

 

<슬픈 이야기> 

나는 서울의 한 사글세방에 세들어 사는 노총각이다. 옆방과 울섶으로 대충 구분한 칸막이가 허술해서 옆집 내외의 쑥덕대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다. 그런데 매일 밤 남편이 아내를 두들겨패는 소리에 놀라 잠을 설친다. 전기회사에 다닌다는 남편은 낮에는 사람들 앞에서 아내를 위하는 척하다가, 밤이 되면 울지 못하게 미리 위협해 놓고 은근히 치고 차고 하는 놈이다. 어느 날, 하고 발길질 하는 소리며 세살 짜리 아들이 놀라깨서 어아하는 소리에 이놈이 사람 잡을 작정인가하고 도배지가 뻥 뚫린 구멍으로 남편의 폭행현장을 목격한다. 가혹한 폭행에 나도 모르게 주먹으로 벽을 치고, 남편이 휘둥그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변소를 다녀오던 주인노파도 왜 남의 계집을 자꾸 들여다보고 그류.하고 참견한다. 주인노파는 저 놈이 전차 운전수로 13년 동안 일하다 겨우 감독이 되었는데, 이제 여학생 장가 들겠다고 이혼하자는 거다. 아내의 공로를 모르고 그러는 거다. 이혼만 하면 내가 중신을 서줄 테니 한번 데리고 살아보라며 수선을 떤다. 나는 할머니나 장가 가시구려하고 소리를 뻑 질렀다. 나는 맞고 사는 아내의 처지를 두고 보는 것은 인륜에 벗어나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남편을 불러 좋게 타이르려는데 그 놈은 대번에 화를 내며 들어간다. 그날 밤, 놈은 아내더러 서방질한 거 냉큼 대라며 더욱 심하게 떄리고, 주변 사람들이 내게 더 이상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나는 아내를 갖든지 이 곳을 떠나든지 별 도리가 없다 마음 먹고는 이부자리며 옷가지를 싼다. 그것을 본 주인노파가 눈을 지그시 하고 왜 짐을 묶소묻는데, 그마저도 내 맘을 몰라주는 것 같아 난 오늘 떠납니다하고 투박한 한마디로 끊어버렸다. (1936년 12월 <여성>지에 발표)

 

<떡> 

이것은 떡이 사람을 먹은 이야기다. 동리에서 제일 가난하고 게으른 덕희는 아내와 일곱살짜리 딸, 옥이를 데리고 개똥이네 집 건너방에 산다. 이들은 밥을 못 먹는 날이 더 많아서 옥이는 항상 배고프다고 캥캥거린다. 덕희는 술이 호주라 집 세간을 팔아 술을 먹으면서도 항상 배고프다고 우는 딸을 원수같이 미워한다. 겨울철 나뭇값이 오르면서 덕희도 일감이 생겨 나가면, 옥이는 엄마가 퍼 준 죽을 급하게 먹어치는데 배는 차지 않는다. 어느 날, 옥이는 개똥어머니가 상전댁(개울 건너 도삿댁)에 갈 때 하릴없이 뒤따랐다가 대담하게도 중문 안으로 들어섰다. 음식이 넘쳐나는 부엌 안으로 머리를 디미니 저런 여우년, 밥주머니 왔니. 냄새는 잘 맡는다 욕이 한마디씩. 마침 이 집 작은 아씨가 옥이를 보고 옥이 왔니, 왜 어멈들만 먹어? 얘가 얼마나 먹는다고.하며 밥을 퍼준다. 어른이 먹어도 될 양을 다 먹으니 작은 아씨는 떡을 내어준다. 시루팥떡, 백설기를 배불리 먹고서 더 이상 못 먹겠다는데 주왁이 나와 억지로 꿀꺽 삼켜버린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며 잘 먹는다, 잘 먹는다 칭찬하고 깔깔댄다. 도삿댁을 나온 옥이는 몸의 자유를 잃고 눈 위를 구르며 간신히 집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개울가에서 먹은 떡을 한 무더기 토해내고 쓰러진다. 가까스로 제 집에 겨우 도착해서 병이 나 누워버렸다. 덕희는 옥이의 병을 고친답시고 봉구에게 경을 읽게 하고, 간간히 소금을 찍어먹인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나(김유정일까요?)는 경은 무슨 경을 읽는다고 그래 소리를 꽥 지르고, 봉구더러 침을 놓게 했다. 양손 엄지에 침을 놓자마자 옥이는 똥을 깔겼다. 덕희는 웬걸 그렇게 처먹고 이 지랄이야며 욕을 퍼붓는다. 본시는 그 귀한음식을 애비 한쪽 갖다줄 생각을 못한 딸이 지극히 미웠던 것이다. (1935년 6월 <중앙>에 발표)

 

<애기> 

어머니가 시집온 지 두어달 만에 낳은 아가에 관한 이야기다. 결혼 전 어머니가 전기회사 다니는 남자와 몰래 만나다 임신이 되었는데, 외조부가 알고서는 혼을 냈더니 그 길로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래서 부랴부랴 사위를 고르는데, 아무것도 안 보고 튼튼하면 된다, 땅 50석을 붙여준다고 소문을 내었다. 필수네 부모는 아들에게 소문을 전하고 의사라 속이고 만나보라 한다. 필수는 한번 장가를 갔던 남자로, 전처가 도망간지 5년이 되었고, 인쇄소 직공을 하다가 정리해고 당했다. 혼인은 사흘만에 속전속결, 무성의하게 치뤄진다. 첫날 밤, 필수는 아내가 얼굴도 못생겼지만, 배도 처녀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필수 가족은 땅 50석을 받기 위해 새색시의 눈치를 보며 항상 기분을 살핀다. 어서 땅을 받고 싶어 장인에게 축음기까지 선물했지만, 천천히 주겠다는 말만 듣는다. 슬슬 시어른들은 며느리를 내쫒으려 하는데, 필수는 그간 정이 들어 아내가 귀엽다. 드디어 아기가 나오고, 시어른은 아기를 갖다버릴 계획을 하는데, 아기 재롱을 보자 맘이 스르르 녹아내리고 만다. 한편 아내는 가난한 집에서 키우느니 부잣집 손 귀한 곳에 주자며 필수를 설득하고, 아이를 포대기에 싸준다. 필수는 남의 집 문 앞에 두고 오다가, 행여 아기가 울지 않으면 얼어죽을 텐테 걱정이 들어 다시 집어온다. 아기는 맥 모르고 곤히 잠들어 있다. (1934년 12월 탈고, 1939년 12월 <문장>에 발표)

 

4. 김유정 자신을 그린 소설

 

모델을 구하지 못한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리듯이, 김유정은 자신의 불행한 삶을 소재로 삼습니다. 김유정을 잘 모르는 독자도 <생의 반려>, <두꺼비>, <형>, <따라지>를 읽다보면, 계속 겹쳐지는 한 집안의 이야기와 불행의 늪에 빠진 남자를 알게 됩니다. 부끄러운 일이라 살짝 미화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김유정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십대의 청년이 매맞고 사는 모습, 가난과 절망에 빠진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합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저는 이 <작품>들을 읽으면서 김유정에게 깊은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마치 독자들에게 도대체 나 같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된다 말이오?하고 묻고, 절규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도 양껏 사랑을 받지 못한 김유정에게 문학만이 곧 어머니요, 여인이고, 친구지 않았을까요? 글쓰기로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는데, 김유정은 이런 글들을 쓰고도 점점 마음의 상처가 곪아갔던 것은 몸의 상처가 깊어서였을까요?

이 작품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지만,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형식이 대부분입니다. 글을 읽어 보면, 김유정은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의 반려>

내 동무 명렬군은 현재 완전히 타락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타락을 거둘어준 조력자쯤 되고 말았다. 이 글은 그런 나의 변명 외에, 나의 사랑하는 동무를 위해 참다운 생의 기록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쓰는 것이다. 

나의 임무는 명렬군의 연애편지를 나명주라는 화류계 여성에게 전해주고 답장을 받아오는 것이었다. 애당초 딱 잘라 거절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지만, 명렬군의 누렇게 뜬 얼굴과 연일 철야로 퀑 들어간 눈을 보고서는 저도 모르게 편지를 받아들고 말았다. 하지만 돈의동 뒷골목 나명주 집 앞에 서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대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명렬 군은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다 전했니?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나는 잘 전했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는 답장은…”하고 묻는다. 나는 엉겁결에 명주는 노름 나가고 없더구만, 그래 아씨 오면 전하라 하고 왔다고 얘기한다. 순간 눈물을 살짝 보이며 환해지는 동무의 얼굴을 보니 죄송스런 생각에 가슴이 끌밋하였다.(뉘우쳐서 마음이 언짢다)

명렬군의 연애편지는 연애편지가 아니다. 연애란 것이 상대에게서 향기를 찾고, 아름다움을 찾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요구하는 명칭이라면, 그의 연애는 상대에게서 제 자신을 찾아내고자 거진 발광하다시피 하는 것으로, 폭력을 가지고 상대에게 대들어 나를 요구하는 그런 괴변에 이르는 것이다.

명렬이 명주를 처음 본 곳은 수은동 근처로 오후 1시경이었는데, 조그만 손대야를 들고 목욕탕에서 나오는 한 여인이 화장은 안 해 창백하게 바랬고, 눈에는 수심이 가득차 무표정한 낯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흰 저고리에 흰 치마를 훓어안고 걸어가는 모양이 인제는 삶의 흥미를 잃은 사람이었다. 명렬 군은 저도 모르게 따라갔고, 그 집 앞에서 놓쳐버렸다. 그 길로 집에 돌아와 편지를 써서 매일 한 장씩 보내었다.

사람은 아마 극히 슬펐을 때 가장 참된 사랑을 느끼는 것 같다. 요즘에 와서 명렬 군은 생의 절망 따라 우울의 절정을 걷고 있었다.

그의 환경을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고보 때였다. 그는 말을 할 때는 좀 덜하나 선생 앞에서 책을 낭독할 적이면 몹시 더듬어서 별명이 말더듬이였다. 또 사람을 두려워하는 별난 소년이었고 매일 성적이 불량하였다. 그는 어려서 양친을 다 여의었다. 제풀로 돌아다니며 눈칫밥에 자라난 소년이었다. 그의 염인증은 여기에 뿌리를 박았을는지 모른다. 그에게는 형님이 한 분 있는데, 주색에 잠기어 밤낮을 모르는 난봉꾼에다 무지한 폭군이었다. 부모가 물려준 거만의 유산은 26~26의 아무 의지도 신념도 없는 청년에게는 불행이었다. 그는 오로지 술을 마시고 계집과 같이 누웠다. 반면 가족이 앓아 드러누워도 약 한 첩 없고, 아이들이 신이 없어도 신 한 켤레 순순히 사 주지 않는 그런 위인이었다. 또, 가정에는 매일같이 아우성과 피가 흘렀다. 가족을 치다 치다 물리면 떄로는 제 팔까지 이로 물어뜯어서 피를 흘렸다. 이러길 일 년 중 열 한달은 계속 되었다. 그 많은 재산도 10년이 채 못 되어 기울게 되었다. 서울 살던 형은 명렬 군을 누이에게 맡기고 시골로 내려갔는데 그 때 불과 몇 백석의 땅이 있었을 뿐이다.

누님은 32세의 젊은 과부였다. 열 네 살에 시집을 가서 10년 넘어 살다가 쫒기었는데, 썩도록 돈을 묵히고도 시집 하나 살릴 줄 모른다는 이유였다. 근근히 직업을 얻어 방 한 칸을 세어 내어 단독 살림을 시작했다. 그 좁은 방에서 남매가 지내가 시골 간 형이 사직동에 방 둘 있는 조그만 집을 얻어주었다. 그리고 누님의 월급으로 살았다. 허약한 젊은 여자에게 공장살이란 견디기 어려운 고역이었다. 5년이 지나니 그는 완연히 사람이 변하였다. 공장에서 얻은 히스테리로 말미암아 그는 제 성미를 제가 걷잡지 못하도록 되었다. 누님은 날이면 날마다 동생을 들볶았다. 그러니까 동생은 말하자면 그 밥을 얻어먹고 그의 분풀이로 사용되는 한 노동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우울증을 타진하다면 그는 애정에 주리었다. 나이 찬 기생을 사랑한 것도 그 속에서 어머니로서, 동무로서, 연인으로서 명주가 그에게 필요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이해 못하고 사람같지 않은 기생이니 단념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그를 방문했을 때 그는 병석에 누워 일어나지를 못했다. 누님이 짜서 들고 들어온 약도 그는 요강에 부었다. 이윽고 그는 나에게 미안하지만 한번만 더 갔다 올래?하고 나직이 묻는다. 나는 편지를 가지고 종로로 가다 고보 동창인 박인석군을 우연히 만나는데 그의 말이 기생은 답장을 쓸 위인들이 아니란 것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편지는 영영 답장은 못 받고 말 것 같아 편지를 뜯어서 읽고는 여동생을 시켜 답장을 쓰게 했다. 이렇게 일주일에 두 번씩 답장을 쓰다 보니 그는 더욱더 명주를 숭상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명렬은 수취 거절이 붙은 편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동안 내가 며칠 안 왔던 탓으로 이런 병폐가 생겼음은 물론이다. 나는 얼른 기생의 어머니는 딸이 연애하다 바람날까봐 늘 지키고 있다. 그 어머니가 편지를 안 받고 도루 보낸 게지. 편지를 헐려면 그 당자에게 넌줏넌줏이 전하는 수밖에 없다고 그럴듯하게 꾸며대었다. 그는 올곧이 듣고 만다. <끝> (1936년 8월 <중앙>지에 발표)

 

이 이야기는 미완성으로 끝났습니다. 앞 글에서 그가 쓴 대로 이 글은 김유정 인생의 참다운 기록이란 생각이 듭니다.

 

<두꺼비> 

나는 옥화라는 기생에게 정신이 팔려버렸다. 거리에서 한번 흘깃 스쳐본 여자에게 나 혼자 몸이 달아서 답장 못 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달 동안 썼다. 그런 나에게 옥화 동생 두꺼비가 “누님이 자기 말은 잘 들을 것이니 자기가 중간에서 나를 연결시켜 주겠다”고 꼬셨다. 옥화를 짝사랑하고 있는 나는 두꺼비의 말을 솔깃하게 믿고 칙사처럼 대접을 한다. 편지를 써주면 전해 주겠다고 해서 석 달 동안이나 썼으나 편지는 가져만 갔지 답장은 꿩 구워먹은 소식이다. 두꺼비는 기생을 홀리자면 선물을 해야한다고 유인한다. 돈을 빌리고 양복을 잡히고 해서 반지를 선물로 보냈으나 그것도 오리무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두꺼비가 자기 집으로 꼭 와달라는 부탁을 하고, 나는 옥화를 만나보려는 속셈으로 약속시간에 맞추어 그의 집으로 간다. 그런데 가 보았더니 두꺼비는 옥화가 수양딸로 들여놓은 채선이와 죽는다고 독약을 먹고 난리를 치고 있다. 그 때 옥화를 만난 나는 스스로를 소개하나, 옥화는 대뜸 “당신은 누구요?”며 본 척도 안 한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내가 보낸 편지는 모두 두꺼비 손에 들어갔고, 옥화는 읽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옥화가 늙는다면 내게밖에는 갈 데가 없으려니 안심하고, 늙어라, 늙어라고 만물이 늙기만 마음껏 기다린다. (1936년 3월 <시와 소설>지에 발표)

 

<형>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후에 있었던 형과 관련된 일화. 형도 애초에는 무척 효성스러웠다. 아버지의 전답을 찾아다니며 답품하고 추수하는 일을 하고, 집에 들어서는 환자를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았다. 정안수를 떠다놓고 아버지 병환이 나으시도록 신령에게 빌기도 하고 동대문 시장에 달라가 환자를 위한 찬거리도 직접 장만해 왔다. 그러던 형님이 난봉이 났다. 열여덝, 열아홉에 그가 사랑에 빠졌다. 열다섯에 장가를 들었지만, 아내의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다. 병환이 난 지 1년이 지났을 때, 형은 이혼하고 새장가를 들겠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내가 살아 있는 한 안된다 하였고, 그 길로 이미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고 있는 여자에게 가 버렸다. 형은 생활에 쪼들리자 애가 탔다. 아버지는 그동안 보내던 쌀도 끊어버렸고 형은 궁한 행색으로 집 안에 들어와 형제들을 마구 때렸다. 그런 형에게 아버지는 분에 이기지 못하고 식칼을 던졌으나 빗나가 버렸다. 얼마 안 있어 아버지는 돌아갔다. 내가 만일 이 때에 나의 청춘과 나의 행복이 아버지의 시체를 따라갈 줄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그를 붙들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내리 울었으리라. 형은 유산으로 물려 받은 그 많은 돈을 처치 못하여 밤거리를 휘돌다가 새벽녁에는 새로운 한 계집을 옆에 끼고 술이 만취하여 들어오고 하였다. 하지만 돈이 조금이라도 없어진다 싶으면 가족들을 가혹하게 때렸다. (1939년 11월 발표)

 

<따라지>
어느 화창한 봄날 사직동 꼭대기에 올라붙은 초가집, 방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주인 마누라의 푸념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 마누라는 오늘은 반드시 받아내리라 결심하고, 얼굴이 뜬 노랑퉁이 영감에게 집세를 재촉하지만, 앓는 소리와 호통만 듣고 물러나온 뒤에, 카페에 나가는 아끼꼬에게 화살을 돌리나 늘상 그렇듯이 역습만 당한다. 결국 가장 만만한 톨스토이(별명)에게 방세를 받아내려고 조카를 불러다 짐을 들어내게 한다. 그러나 신경질적인 누이에게 기식한다고 들볶임을 당하며 방구석에 앉아 늘 글만 쓰고 있는 톨스토이에게 연민의 정을 느껴왔던 아끼꼬가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을 몰아 세운다. 거기다가 노랑퉁이 영감까지 지팡이를 휘둘러 사태가 역전되고, 주인 마누라는 파출소 순경을 불러대지만, 이미 평상시로 되돌아가 있는 집안을 본 순경에게 도리어 애매한 비난만 듣고 만다. 또 다시 당한 것을 분해하는 주인 마누라의 요청대로 아끼꼬는 순경에게 호출되지만, 항상 그랬듯이 그녀는 주인 마누라에게 보복할 생각을 하며 별 일 없이 돌아온다. (1935년 11월 탈고, 1937년 2월 <조광>지에 발표)

 

따라지의 사전적 의미는 노름판에서 한 끗,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사람 또는 사물을 말하는 것이다.

 

5. 문체는 사실을 넘지 못한다. 

 

한겨레 신문 기자인 구본준씨가 <한국의 글쟁이들>이란 책에서 문체는 사실을 넘지 못한다는 말을 합니다. 한비야씨를 보고 한 말입니다. 그는 한비야의 책을 보면서 직접 체험한 것을 잘 전달해주는 생생함은 공들여 쓴 소설 묘사보다도 감동적이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글귀를 보면서 김유정씨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듣거나 겪은 이야기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등장인물과 장소가 실제로 있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1932년, 처녀작 단편 <심청>을 탈고한 김유정은 충남 예산 등지의 금광을 전전합니다. 2년 전부터 안회남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스물 넷의 그였습니다. 게다가 폐결핵 발병도 진단받기 전이니 몸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참 야학 운동도 주도하면서 패기넘치는 젊은 시절을 보내던 그가 왜 금광에 갔을까요? 설마 금을 캐러 갔을까요?

저 혼자 생각에는 새로운 작품을 쓰기 위한 현장취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해 내는데 해가 갈수록 배가 넘는 작품이 쏟아져 나옵니다. <노다지>는 26세, <금따는 콩밭>과 <금>은 27세에 씁니다. 2, 3년 전에 돌아본 금광을 머리속에 잘 새겨두었다가, 혹은 어디에 잘 메모해 두었다가 작품으로 써낸 것일 겁니다. 이 세 작품 외에도 그의 글을 읽으면 사실적인 묘사와 정확한 단어의 사용이 무척 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김유정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작가였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작품 속의 글들이 살아 숨쉬듯 생생한 이유일 거라 믿습니다.

 

<노다지> 

금을 캐러 다니는 꽁보와 더팔이가 주인공이다. 이들이 의형제를 맺은 사연은 이렇다. 작년 이맘 때, 다른 동무 셋과 함께 낯선 산골에서 감석(유용한 광물을 일정량 이상 지닌 돌)을 두 포대나 따올렸다. 꽁보가 분배하는데, 한 동무가 불만을 터뜨려 싸움이 일었고, 왜소한 꽁보가 밀려서 거진 죽게 되었다. 그 때 대문짝처럼 크고 억센 더팔이가 비호같이 날아들어 놈을 산비탈로 내던져버렸다. 그 뒤로 꽁보는 더팔이를 형이라 불렀다.

새벽이 다가오는 지금 이 시각, 그들은 동굴 앞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다. 오늘 점심때, 이 마을에 들렀다가 주막 주인의 말을 듣고서 찾아온 동굴이다. 주막주인은 산 너머 금이 푹푹 쏟아지는 금점이 있다, 사정이 생겨 잠시 휴광중인데, 밤낮으로 감시한다더라는 말을 하였다. 그들은 사다리도 치워버린 동굴 속을 기어내려간다. 무너지기 일보직전이 돌구덩에서 꽁보가 먼저 금돌을 발견한다. 신이 난 더팔이는 아우 몸을 번쩍 들어 내놓고 제가 대신 들어가 식, 식, 망치를 떄린다. 꽁보는 풋내기 더팔이가 어줍대는 것이 못 마땅하고, 이 노다지를 혼자 먹으려는 것 같아 속을 태운다. 그 때 어이쿠 하는 불시의 비명과 아울러 와그르 무너져 더펄이 하체가 깔리었다. 여보게, 내 몸 좀 빼주게 애원하는 형 앞으로 다가서며 앞에 놓은 노다지 세 쪽만 날쌔게 손에 잡자 얼른 뒤로 물러섰다. 잠시 후 완전히 매몰되어 형의 더팔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고, 꽁보는 동굴을 빠져나와 도망친다. (1935년 3월 <조선중앙일보>에 발표)

 

<금따는 콩밭> 

 깊은 구덩이 속에서 영식은 암팡스런 곡괭이 질을 한다. 금을 캐기 위해 영식은 콩밭 하나를 잡쳤다. 약이 올라 죽을 둥 살 둥 눈이 뒤집혀 곡괭이 질만 한다.
영식이 살기 띤 시선으로 수재를 노려본다. 몹시 미웠다. 이놈이 풍치는 바람에 애꿎은 콩밭 하나만 결딴을 냈다. 이 기미를 알고 지주는 대로(大怒)하였다. 굴 문 밖으로 나왔을 때 산을 내려오는 마름과 맞닥뜨렸다. 마름은 구덩이를 묻지 않으면 징역을 갈 줄 알라고 수재의 머리를 내리친다. 어느 날, 콩밭에서 홀로 김을 매고 있는데 이 밭에 금이 묻혔으니 파 보자고 했고, 몇 차례 거절을 했으나 아내의 부추김도 있고 하여 선뜻 응낙을 했던 것이다
.
저녁도 아니 먹고 드러누운 영식은 산제(山祭)를 지내기 위해 아내에게 쌀을 꿔 오도록 한다. 닭이 두 홰를 치고 나서 떡 시루를 이고 콩밭으로 향한다. 영식은 밭 가운데 시루를 놓고 산신께 축원을 한다. 아내는 그 꼴을 바라보며 독이 뾰록같이 오른다
.
아내가 점심을 이고 콩밭에 갔을 때 남편은 얼굴에 생채기가 나고 수재는 흙투성이에 코피가 흐르고 있다. 아내가 분통을 건드리자, 영식은 아내의 머리를 후려친다. 콩밭에서 금을 따는 숙맥도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아내에게 영식은 발길질을 한다. 조바심이 난 수재가 "터졌네, 터졌어, 금줄 잡았어." 하고 황토 흙을 보이며 외친다
.
영식 처가 너무 기뻐서 고래등같은 집을 연상할 때 수재는 오늘밤에 꼭 달아나리라고 생각한다.

(1935년 3월 발표)

 

<금> 

금점에서 광부들은 어떻게 하면 금을 몰래 가져나갈까 궁리하고 감독은 이잡듯 뒤지는 게 일이다. 예전처럼 금을 삼키거나 귀속에 묻고, 사타구니와 항문에 끼고 나가는 일도 쉽지 않다. 하루는 금점에서 부상자가 나왔다. 발을 다쳐 피를 뚝뚝 떨어뜨리는 부상자를 보고 감독은 얼른 데리고 나가서 치료하라고 허락한다. 발을 다친 덕순이와 그를 부축는 동무는 덕순이의 집에 다다른다. 아내는 놀라서 방으로 뛰어든다. 덕순이는 조심스레 상처 부위의 헝겊을 풀고 거기서 손뼉만한 돌을 가려낸다. 노다지다. 동무는 덕순에게 노다지를 팔아서 약도 사고 오겠다고 나선다. 당장 약이 급한 덕순이는 동무를 순순히 보내주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의 발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이래까진 돈을 벌어 오라 하진 않았는데!’하며 가슴 아파한다. 덕순은 이제 더 이상 아픔을 참을 기력도 없어져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1935년 1월 탈고)

 

6. 김유정의 대표작

 

저는 김유정전집을 읽으면서 <동백꽃>, <봄봄>만큼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작품도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속에는 밝음과 희망이 있습니다. 그가 써 왔던 다른 글들에서 느껴지는 무겁고 절망스러운 느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밝음은 더욱 강렬해지는 것일까요?

<김유정 찾아가는 길>의 저자 유인순 교수는 김유정에 대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살아서 고통의 극점을 맛보았기로 불행했었던 한 사람, 그러나 그 고통을 온전히 감수했기로 죽어서 사랑받고 축복받는 작가가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이 김유정이다. 1930년대 결핵은 치명적 병이었다. 결핵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포르이트는 인간 심층심리를 이루고 있는 죽음 본능을 비극적 위엄을 갖고 있고, 그것을 수용하게 될 때 인간은 비극적 용기를 갖게 된다고 했다. 결핵진단을 받은 이후 김유정을 온통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비극적 용기였다. 죽기 직전까지도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 – 소설 창작에 매진했다. 그는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고자 했다.”

김유정이 좋아했던 문학가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의 예술관을 보면, 김유정의 글이 떠오는 것은 비단 저만의 생각일까요?

<톨스토이 예술관>

예술은 기술이 아니다. 예술가 자신이 체험한 정감을 전달하는 것이다.<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인간의 내부에 있는 힘을 최고의 수준으로 발휘하는 것이다. <아리벨트>

예술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수단의 하나이며 아름다운 것을 인식하는 수단의 하나이다. <일기>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라는 복음서의 말은 예술에도 해당된다. 얘기하라. 묘사하라. 그러나 심판해서는 안 된다.<인생의 길>

 

<동백꽃>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산으로 올라서려는데, 점순네 수탉이 아직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우리 닭을 다시 쪼아서 선혈이 낭자했다. 나는 작대기를 들고 헛매질을 하여 떼어 놓았다.
  나흘 전에 점순이는 울타리 엮는 내 등뒤로 와서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감자를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밀어 버렸다. 이상한 낌새에 뒤를 돌아본 나는, 쌔근쌔근 하고 독이 오른 그녀가 나를 쳐다보다가 나중에는 눈물까지 흘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음날 점순이는 자기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아 우리 집 씨암탉을 붙들어 놓고 때리고 있었다. 점순이는 사람들이 없으면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집 수탉과 싸움을 붙였다.
  하루는 나도 우리 집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이고 용을 쓸 때까지 기다려서 점순네 닭과 싸움을 붙였다. 그 보람으로 우리 닭은 발톱으로 점순네 닭의 눈을 후볐다. 그러나 점순네 닭이 한번 쪼인 앙갚음으로 우리 닭을 쪼았다.
  점순이가 싸움을 붙일 것을 안 나는 우리 닭을 잡아다가 가두고 나무하러 갔다. 소나무 삭정이를 따면서 나는 고년의 목쟁이를 돌려 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점순이가 바윗돌 틈에 소복이 깔아 놓고 앉아서 닭싸움을 보며 청승맞게 호드기를 불고 있다. 약이 오른 나는 지게 막대기로 점순네 큰 수닭을 때려 죽였다. 그러자 점순이가 눈을 흡뜨고 내게 달려든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느냐고 다짐하는 점순이에게 그러마고 약속한다. 노란 동백꽃 속에 함께 파묻힌 나는 점순이의 향긋한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이때 점순이는 어머니가 부르자 겁을 먹고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내려가고 나는 산으로 내뺀다. (1936년 5월 <조광>에 발표)

 

<봄•봄>   

내가 주인에게,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달라고 뒤통수를 긁으면서 이야기 하자, 그(장인)는 점순이가 미처 자라지 않아서 성례를 시켜 줄 수 없다고 한다.
  어제 화전밭을 갈 때 점순이가 밤낮 일만 할 것이냐고 했다. 나는 모를 붓다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논둑으로 올라갔다. 논 가운데서 이상한 눈초리로 노려보던 장인님은 화가 나서 논둑으로 오르더니 내 멱을 움켜잡고 뺨을 친다. 장인님은 내게 큰소리를 칠 계제가 못 되어 한 대 때려 놓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나는 장인을 구장 댁으로 끌고 갔다. 구장님은 당사자가 혼인하고 싶다는데 빨리 성례를 시켜주라고 한다. 장인은 점순이가 덜 컸다는 핑계를 또 한번 내세운다. '나'는 점순이가 자신을 '병신'이라고 나무라자 어떻게든지 결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터로 나가려다 말고 바깥마당 멍석 위에 드러눕는다.
  대문간으로 나오던 장인은 징역을 보내겠다고 겁을 주나, 징역 가는 것이 '병신'이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나'는 말대꾸만 했다. 화가 난 장인은 지게 막대기로 배를 찌르고 발길로 옆구리를 차고 복기짝을 후려갈긴다. '나'는 점순이가 보고 있음을 의식하고 벌떡 일어나서 수염을 잡아챘다. 바짝 약이 오른 장인님은 지게 막대기로 나의 어깨를 내갈겼다. 내가 장인님을 발 아래로 굴러뜨려 올라오지 못하게 하자 장인님으  내 사타구니를 잡고 늘어진다. 할아버지까지 부르며 땅바닥에 쓰러져 거진 까무러치자 장인님은 내 사타구니를 놓아 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나'가 엉금엉금 기어가서 장인님의 사타구니를 잡고 늘어진다. 장인님이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다가 급기야 점순이를 부른다. 점순이는 내게 달려들어 귀를 잡아당기며 악을 쓰며 운다. 나는 점순이의 알 수 없는 태도에 넋을 잃는다. (1935년 12월 <조광>에 발표)

 

<만무방>

길잡이 1935년 '조선일보' 에 발표된 단편 소설. '만무방' 이란 원래 '염치없이 막돼먹은 사람' 이란 의미인데, 이 작품은 살아가기 힘든 응칠, 응오 두 형제의 부랑(浮浪)하는 삶을 중심으로 하되, 노동보다는 도박판에 뛰어드는 농촌 청년들의 사행적(射倖的) 행태도 제시되어 있다. 특히, 추수를 해도 아무런 수확도 돌아가지 않는 소작농(동생 응오)이 제 논의 벼를 도둑질하는 사건은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보여준다.

줄거리

깊은 산골에 가을은 무르녹았다. 응칠은 한가롭게 송이 파적을 나왔다. 전과자요 만무방인 그는 송이 파적이나 할 수밖에 없는 유랑인의 신세다. 응칠은 시장기를 느끼며 송이를 캐어 맘껏 먹어 본다. 고기 생각이 나서 남의 닭을 잡아 먹는다.

숲 속을 빠져 나온 응칠은 성팔이를 만나 응오네 논의 벼가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팔이를 의심해 본다. 응칠도 5년 전에는 처자가 있었던 성실한 농군이었다. 그러나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야반 도주한 응칠은 동기간이 그리워 응오를 찾아왔다. 진실한 모범 청년인 응오는 벼를 베지 않고 있다. 그런데 베지도 않은 논의 벼가 닷 말쯤 도적을 맞은 것이다.

응칠은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송이로 값을 치른다. 동생 응오는 병을 앓아 반송장이 된 아내에게 먹일 약을 달이고 있다. 아내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산치성을 올리려 하자 극구 말렸으나 그는 대꾸도 않고 반발한다. 응칠은 오늘 밤에는 도둑을 잡은 후 이곳을 뜨기로 결심한다.

응칠은 응오의 논으로 도둑을 잡으러 산고랑 길을 오른다. 바위 굴속에서 놀음판이 벌어졌다. 응칠도 노름에 끼었다가 서낭당 앞 돌에 앉아 덜덜 떨며 도둑을 위해 잠복한다.

닭이 세 홰를 울 때, 흰 그림자가 눈 속으로 다가든다. 복면을 한 도적이 나타나자 응칠은 몽둥이로 허리께를 내리친다. 놈의 복면을 벗기고 나서 응칠은 망연자실한다. 동생 응오였던 것이다.

눈을 적시는 것은 눈물뿐이다. 응칠은 황소를 훔치자고 동생을 달랬지만, 부질없다는 듯 형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동생을 보고 응칠은 대뜸 몽둥이질을 한다. 땅에 쓰러진 아우를 등에 업고 고개를 내려온다. (1934년 9월 탈고, 1935년 7월 <조선일보>에 발표)

 

이제 독후감을 그만 적고, 논제를 만들 차례군요.

 

논제 1. 김유정의 소설을 좋아하십니까? 이야기 구성, 등장인물, 문체 등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자유롭게 이야기 해 봅시다. (혹시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논제 2. 답사를 다녀온 이후, 김유정의 문학세계를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추억을 더듬어가며 다시 한번 이야기 꽃을 피워 봅시다.

 

 

첨부파일 김유정(20080903) 토론일지.docx

 

기대와 부담이 공존했던 첫수업...

서지혜 선생님의 방대한 자료와,

감정의 순수함과,

사고의 깊이에 우리는 압도당하고 말았읍니다.

 

서기 : 유지연

<김유정 그는 누구인가...>

 

 

1. 그는 어떤 시대에 살았을까요.

 

먼저 김유정의 생애를 간략히 소개해 주시고, 각종 잡지에 실린 글을 통해

김유정의 삶과 소설사이의 유사성을 알려 주셨읍니다.

춘천 실레 마을과 휘문고보,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던 서울생활이 소설의 케릭터 속에서

아무런 가감없이, 미추와도 멀리

그저 슬프리 만큼 객관적으로 용해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읍니다.

 

2. 들병이가 나오는 작품들

 

들병이는 김유정 소설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여성상입니다.

기실 이러한 케릭터가 이처럼 자주, 진하게 소설속에서 화현되는 경우는 드물 것 같습니다.

들병이가 누구인지, 들병이가 술을 팔았던 그 시대의 목적과 우리 시대의 그네들이 술을 파는 이유는 사뭇 다르다는 이해준 선생님의 말씀에  가슴 한구석이 씁쓸했읍니다.

 

그렇다면, 김유정의 글 속에서의 들병이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10대 후반의 젊은, 아니  어린 나이의 들병이들은

남편이 있었고 심지어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아리송한  여식도 있었으며

심지어 들병이에게 폭 빠져 솥까지 내주는 연인과도 함께 다니는

원시 모계사회와 같은 가정 구조였나봅니다.

농촌의 돈이 돌던 추수때 출동했다가,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까지 지었던 특수한 직업이었더군요.

 

서지혜 선생님은 20대의 젊은 지성인이 이런 들병이에게 왜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셨읍니다.

이에 대해

 

" 김유정은 진정한 휴머니스트 였다,

  집안 자체가 소외된 계층을 배려하는 정서를 가졌다,

  농촌을  낭만적인 전원생활이 아닌 현실의 삶으로 냉철히 그렸다,

  한자가 하나도 없는 그 당시로서는 앞서 갔던 신조어로 묘사되었다 " 라는 의견이 나왔읍니다. 

 

3. 가여운 너무나 가여운

 

우리는 먼저 이 표제에 대한 감탄으로 말문을 열었읍니다.

서지혜 선생님의 푸른 가을하늘 만큼 순수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에 말입니다.

 

<산골나그네>속의 들병이의 남편은 물레방앗간에서 혼자 어떡게 지냈을까요~~?하며 물어보시던 조영란 선생님.

(아마도 조선생님은 남편을 무지 아끼시나봅니다, 그쵸?)

<슬픈이야기>의 맞는 아내가 가여웠던 김유정이 갖은 오해속에서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웃긴지 화가나는지 알수 없던 결말을 보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해프닝이 있다는 의견을 나누었읍니다.

가끔은 오해가 실재로 탈바꿈 하기도 한다던데요~~?

<떡>을 읽고 눈물이 나셨다는 서지혜 선생님 말씀이 제겐 더 감동이었읍니다.

 

4. 김유정 자신을 그린 소설

 

<생의 반려>를 보면 자신의 왜 그토록 사랑을 갈구했었던지 김유정 본인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꺼비>, <형> 에서는 형의 삶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따라지>는 서울에서 살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가난한 전세방 동네의 진솔하고 투박한 삶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읍니다.

누나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그저 구박당했던 모습을

직접 서지혜 선생님이 모션까지 해주셨지요.

   

5. 문체는 사실을 넘지 못한다

 

<금> , <노다지>, <금따는 콩밭> 속에서의 처절한 그네들의 삶은 김유정이 직접 금광을 전전하며 겪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알려 주셨읍니다. 그가 생계유지를 위해서였든지, 작품을 위해서였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을 앞에 둔 인간들의 배심과 야비함이 처철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

지금 우리곁에 있으니까 말입니다.

 

6. 김유정의 대표작

 

김유정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톨스토이의 문학관을 말씀해주셨읍니다.

" 예술은 기술이 아니다, 예술가 자신이 체험한 정감을 전달하는 것이다...."

바로 김유정이라는 작가가 떠오르게 하는 말입니다.

 

 

<논제1, 2에 대한 우리의 감상들>

 

김경미 선생님 : 좋다, 싫다를 따질 수가 있을까요? 등장인물을 따라서 문체를 파악할 수 있었어요. <총각과 맹꽁이>

를 읽었는데 소설에 나오는 사투리와 문체가 난해했어요. 기승전결이라는 소설의 구성과도 일치히지 않았는데, 정기 교육이 도외시 된게 원이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뭉그러진 문체와 열린결말이 받아들이기 쉽진 않네요. 농촌소설이 많은데, 혹시 그에게 있어서의 글쓰기란 고된 현실의 도피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이은희 선생님: 오히려 학교교율이 천재성을 해치는 건 아닐까요? 그의 토속적인 문체는 고전문학과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그 인습을 타파했다는 점에서 볼 때 매력적이라고 봐요. 그의 천재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거죠.

 

이해준 선생님: 문학은 일상의 탈피를 위해 쓰여진 것은 아니죠. 소설이란 장르는 먹고 살만한 여유가 생겼을 때 탄생한 거에요. 누구한테나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의 발현입니다. 어휘실력과 언어실력은 반다시 일치하진 않아요(본인의 경우를 직접 예를 들어주셨지용^^). 거칠고 토속적인 실생활의 언어는 신뢰감과 현장감을 심어줍니다. 기승전결이 파괴된 현대소설도 많아요.

 

신은철 선생님: 불우한 삶을 떠나 세대를 아기자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유지연 선생님 : 소설속 케릭터들의 양가성을 어쩜 그렇게 희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구구절절한 감정이입보다, 천연덕스럽게 읊어대는 객관적인 사실들이 사람을 더욱 처연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았답니다.

 

조영란 선생님 : 제목에서 느껴지는 발랄함과는 달리 간결하고 끈적이지 않게 현실을 표현하고 있네요. 이건 천재성이에요. 작가 김훈이 이런 계열의 작가인 것 같아요.

 

이은희 선생님 : 교과서는 밝은 주제를 가진 소설들만이 소개된 것 같네요. 이렇게 많은 단편 소설이 있는 지 몰랐답니다.  당시의 사회상을 잘 알 수 있었어요.

 

서유경 선생님 : 전 <봄.봄>,<동백꽃>이 좋았어요. 다른 작품들과 분위가가 사뭇 달랐구요. <산골 나그네>는 반전의 묘미가 뛰어났고, 전 <떡>에서 나온 일을 실제로 경험했었어요.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거든요.

 

방경숙 선생님 : 전 개인적으로 3번의 '가여운 너무나 가여운' 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어요. <떡>을 읽고 눈물이 났었읍니다.

 

 

 

우리는 이렇게 토론을 마무리했읍니다.

서지혜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런 자세하고 감동적인 가이드가 없었다면,

김유정이라는 천재작가에 대해 0.1 %의 이해조차 힘들었을 겁니다.

길고 지리한 여름동안 우리들을 위해 수고하신 서지혜 선생님, 훌륭한 작가로 자리매김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