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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僧夜話(여승야화) - 김시습(金時習)

박송 입니다. 2012. 3. 1. 18:50

 

 

 

 

 

 

與僧夜話(여승야화) - 김시습(金時習)

스님과 밤에 이야기를 나누며

 

 

 

 

半輪明月照西床(반륜명월조서상) : 반달이 밝게 떠서 서쪽 상을 비추는데

小鑵煎茶熱炷香(소관전다열주향) : 작은 다관에 차를 달이며 향을 피워 놓고

共是操心同一致(공시조심동일치) : 함께 마음 다잡아 운치를 같이 하니

莫將玄白錯商量(막장현백착상량) : 검고 흰 것을 가지고 잘못 헤아리지 말라.

 

 

 

 

이조 초기의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한때 스님이 되어 절간에 살기도 하였다. 그의 법명은 설잠(雪岑)으로 기록되어 전하며 의상 스님의 『법상게』에 관한 주석서인 『법계도주』 등 약간의 저술도 남아 있다. 단종을 옹위하려다 세상에 대한 울분을 품고 광인처럼 행세하던 그가 불교에 귀의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달랬는지 이 시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에 들어 있는 달관자의 한가로움 같은 것이 느껴진다.

 

반달이 떠서 서쪽 창으로 방안을 비추는데 다관에 차를 달이며 향로에 향을 하나 꽂았다. 이른바 다반향초(茶香初)의 운치다. 이 속에서는 세상의 시비를 따질 것 없다. 흑백논리로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망상 속을 벗어나면 모든 것은 제 자리에 아무 일 없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적정을 즐기는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에 들면 세상은 모두 하나가 된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설악산 유람기(제2편)

                                                                      하촌.  류재호.

 

권금성은 노루목 맞은편의 산봉우리를 두른 돌성으로. 한2백년전 원(元) 나라가 쳐들어올때 권씨와 김씨가 권솔을 이끌고 피난했던 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들었다. '그럼 작자는 권가아니면 김갈러니' '아니올시다. 이놈은 영평 마가이옵고 이름은 호골(虎骨)이라고합죠.' 마씨(麻氏)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변성명일 터이므로 매월당은 그자의 생김새를 찬찬이뜯어보니 상판은 양푼에떠서 솔려놓은 도토리 묵처럼 검고 너부죽한데.수령이라고 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물렁한 데가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우두머리가 걸친 윗도리는 통짜 돼지가죽으로 지은 피갑(皮甲)과 비슷한 것이었고. 신발은 갖바치가 녹비로 공들여 만든 목화를 신었는데. 그 허우대에 더도덜도 아니게 어울리는 차림새였다.

'아무렇건 작자는 외설악의 산주고 나는 내설악의 산주로. 이렇게 산주끼리 만났으니 그대로 말수가 없는데. 술병이 저 지경이 됐으니 장히 섭섭하네그려.' 듣자오니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놈이 수령이긴 하오나 어찌 감히 맞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작자는 나를 어떻게 알았던고?. 대인을 모른대서야 어찌 사내라고 할깝쇼. 산 밑에서 나는 소리는 산에서도 듣기 말련인데.

실인 즉슨 접때도 고을 아전것들이 등짐을 지고 오르는것을 털려고 했으나 대인께 올리는 공양이라 하기에 그친 적이 있었더이다.

"그렇다면 산주끼리는 이미 동맹(同盟)이 있었네그려."  이놈이 기구한 놈이라 도와는 못 드릴망정 설마하니 딴전이야 보겠습니까.

'허지만 지금은 돕게' '이리 뫼시어라' 우두머리는 제 등을 돌려대면서 명령하였다. 매월당은 우두머리의 등에 업혀서 돌아왔다.

당시 양양부사 유자한(柳自漢)은 가까운 친구로 매월당이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아전을 시켜 등짐으로 설악산으로 올려 보냈다.

술은 물론이고 종이와 붓 등 일절 올려 보냈는데 이 봉물(封物)이 매월당에게 가는것을알고 산적들은 절대 손을 대지않었다.

날이 해동하자 매월당은 양양 현감인 유자한을 찿아 보기로하고 길을떠났다  어려서는 선후배로 한동네서살고 늙어서는 관.민 간으로 한 고을에서 살게된 끈질긴 인연이었다.  유자한은 매월당을 반겨하며 뜰에서 내려와 맞아들였다. 얼마만이었던가.얼마만인지는 이루 헤아리기가 번거로워서 서로가 그만두었다.  유자한은 연 사흘에 걸쳐서 술자리를 베풀었다. 첫날은 객사옆에 있는

태평루(太平樓)에서. 이튼날은 고구려의 잔읍이기도한 옛 동산현(洞山縣) 지경의 관란정(觀瀾亭)에서. 그 다음날은 온종일 말을 달려 청초호(靑草湖)로 옮기고. 청초호와 영랑호(永朗湖)에서 녹초가 되도록 선유(船遊)를 하며 깨고 취하기를 되풀이 하였다.

술에취해 객사에 들은 매월당 방에 유자한이 소동라 라고하는 기녀를 들여보내 천침을 들게했다.

매월당은 술에 덜취한데다 시심이 잠을 쫒는 바람에 늦도록 홍초를 끄지 않었다.

매월당은 기녀와 둘이서만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법도 하였다. 그것도 되도록이면 시로써 문답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부드럽게 물었다. "너도 시(詩)를 좀 알렸다.?"  "시 시(詩)자는 모르고 때시(時)자는 아와요"  소동라는 긴치 않은 물음에 편치 않은 대답인양 부드럽지 않게 대꾸했다.  "때를 안다것다. 그래 무슨때를 알더냐.?"  매월당은 웃으면서 물었다.

"천 첩이야 돈 벌때를 .돈쓸때를 알면됐지 무슨때를알아서 뭘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어느때인고.?    지금은 홍초를 끄고 주무실때올시다. 소동라는 그러면서 슬며시 일어나 앉더니 스스럼없이 홍초를 껐다. [이글은 약 500 여년전 설악산 유람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