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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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吳子)로 통칭된다. 위(衛)나라 사람이며, 증자(曾子)에게 배우고 노군(魯君)을 섬겼다. 제(齊)나라가 노나라를 침공하였을 때 노나라는 그를 장군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는 제나라 여자를 아내로 삼고 있었으므로 의심을 받는다고 아내를 죽여 충성을 나타낸 뒤, 노나라 장군으로서 제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오기는 춘추전국 시대의 장군이다. 병사의 다리에 난 종기를 직접 입으로 빨아주어 고름을 제거해주었다. 그 병사는 오기의 행동에 감동하여 전쟁터에서 죽기로 싸우다 전사했다. 오기의 용병술이 대개 이러하였다. 오기는 전투에 임할 때면 병사들과 침상을 같이 쓰고 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자기 짐을 자신이 직접 이고 다녔다. 하지만 정치가로서의 오기는 지나치게 교만했다. 천성이 잔인했고 특히 남을 업신여기기를 좋아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군대를 잘 이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가라는 자리는 그러지가 못하다. 오기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싫어하는 자들을 지나치게 많이 만든 게 화근이었다. 끝내 굽힐 줄을 몰랐던 것이다. 이후 적이 쳐들어왔다. 오기는 외국 출신이라 장군직에서 면직되었다. 그러자 오기는 적국 출신인 아내를 죽였다. 그렇게 왕의 의심을 없애고서야 장군으로 다시 임명 될 수가 있었다. 왕 주변의 신하들이야 어땠는지 간에, 그래도 결단성 있는 왕의 비호 아래, 오기는 나라를 위해 갖가지 모안들을 제시하며, 정치개혁을 단행할 수가 있었다. 왕과 오기가 한마음으로 부국강병을 꾀한 것이다. 그러던 중 오기의 재능을 아끼던 왕이 일찍 죽었다. 그러자마자 오기의 교만함을 눈에 가시처럼 생각해오던 왕태자가 새로이 왕이 되었다. 이들 두 명은 사이가 무척 안 좋았다. 오기가 개혁하려고 기를 쓰던 부정부패를 왕태자와 그 측근들은 무슨 귀족의 당연한 특권쯤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기는 실각하고 정적들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오기가 죽자 부국강병이니 정치개혁이니 하는 말들은 물 건너갔다. 반대 세력을 몰아낸 후, 신이 난 귀족들이 자신들의 특권만을 내세워가며 나라의 부를 씩씩하게도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나라의 부가, 일부 특권층에 의해 잠식당하니, 정작 귀족들은 부유한데, 나라는 가난해져만 갔다. 나라가 이렇게 약해지니 이를 만만히 보고 적국이 다시 쳐들어왔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가 결국 나라도 망하고 귀족들도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오기에 대한 인물평을 역사책에서 찾아보면 하나같이 이렇게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기는 잔혹하고 시기심이 많았다.”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군이 인자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 편이 싸움에서 졌을 때 입게 되는 큰 피해를 생각했을 때 적어도 전쟁터에서만큼은 선함이니 도덕이니 하는 말들을 강물에 던져버려야 한다. 그리고는 장군 병졸 가릴 것 없이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일단 이기고부터 봐야한다. 전쟁에서 악행을 저질렀더라도 차라리 우리 편이 싸움에서 져서 죽임을 당하는 것 보다는 낫다. 이렇게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에는 남의 성격 탓만 할 게 못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사람의 우두머리가 되어 일을 처리해 나가다 보면, 우두머리는 당연히 아랫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어 있다. 원래가 사람의 심보란 오만방자하고 잔혹해서 가끔씩은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거칠게 다루지 않으면 말을 들어 먹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부패한 귀족들과 그들보다 더 부패한 왕족들을 제거하여 개혁을 하려는데, 원성이 없을 리가 있었겠는가? 그래도 오기가 왕의 시신위에서 화살에 맞아 죽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웠다. 더욱이 병사의 다리에 난 종기의 고름을 빨아주었고, 전쟁터에서 자신의 짐은 자신이 짊어지고 다녔을 만큼 솔선수범 했던 장군이 그렇게 비명횡사한 게 안타까웠다. 오기가 왕을 제외한 모든 신료들에게서 미움을 받은 후 정치적으로 몰락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오기의 비참한 최후에 대한 단서를 나는 사마천의 『사기』 〈오기〉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마천이 말했다. “오기는 사치스러웠다. 오기의 끝이 안 좋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인성에는 약점이 있다.” 오기는 자신의 모진 성격 탓에 생사가 갈린 전쟁터에서는 훌륭한 장군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알고 보면 그에게 무슨 대단한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큰일을 앞에 두고서 자신의 아랫사람들에게도 굽힐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장군의 덕이라고 한다. 반면 고지식한 오기는 자신보다 많이 가진 자들에게는 죽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했다. 자존심이 너무 쌨던 것이다. 이것은 오기의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5살 난 아이가 상처받기 쉬웠기 때문이다. 강해 보이는 사람들일수록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지닌 경우가 많은데, 오기가 그러했다. 이것을 감추려고 사치를 부린 것이다. 그래서 사마천이 오기의 인물 됨됨이를 평하며 오기는 사치스러웠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정치가에게는 독이다. 그는 정말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누구 탓 할 것도 없었다. “불쌍한가?” 아니다. 그는 불쌍하지 않다. 아쉬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귀족 세력을 탄압하고 국가 개혁을 한 참 단행하던 중, 이를 눈감아준 왕이 죽었다면, 이제 정치적 환경이 급변할 터인데, 그런데도 오기는,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겠다.” 라며 끝까지 자기 자리에서 물려나지 않으려 했다. 자리보전. 바로 이것 때문에 오기가 죽은 것이다. 오기는 왕의 죽음 후, 스스로의 몸을 낮추고 관료조직 안에서도 중요하지 않고 한가로운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으로 스스로 물러났어야 했다. 오기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것은 정치적 환경이 변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기는 사치스러웠으니 돈이 필요했을 것이고, 봉건시대에 관직에서 물러나면 돈 들어올 때가 없었을 터이니, 오기가 쉽게 자리에서 물러나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장군까지 지내며 전쟁터에서 여러 번이나 큰 공을 세운 사람이 공명심 때문에서라도 그렇게 쉽게는 자리에서 물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오기가 좀 더 긴 안목으로 자기 생을 내려다보고 그 순간의 결정을 해나갔다면 당장은 곤란함을 꺾을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재기라는 훗날을 기약할 수 있었을 터인데 못내 아쉬웠다. 그래 그 같은 인물도 죽었다. 병사의 다리에 난 고름을 직접 입으로 빨아준 그도 자기 생이 비참하게 마감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신의 솔선수범의 대가로, 그래도 좋은 왕을 만나 한때였지만 자신의 정치적 뜻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었으니, 그것이 오기의 운이라면 운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가 있다. “제 아무리 신중한 처신을 하더라도 주어진 상황이 자신의 행동 방식과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제 한 목숨 보전하기도 어렵다.” 오기가 살아생전에 크게 성공한 이유는, 우연히 자신을 알아준 현명한 왕을 만나 자신의 강직한 처신이 상황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 현명한 왕이 죽어 정치적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이를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서 고집스럽게 자신의 처신을 지켜 나가려했으니 오기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그의 운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처신과 현명한 왕의 죽음을 맞이한 나라의 정치적 상황과의 연관성을, 마지막까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제 고집만을 부릴 수 있었으니, 그것이 오기의 운이라면 운이라는 것이었다. 어릴 적 『소설 손자병법』이란 책을 여러 번 읽었다. 모두 좋았다. 책에는 전국시대 장군들에 관한 갖가지 일화들로 가득했다. 인상적인 장면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난 지금도 그 큰 줄거리를 말할 수가 있다. 특히 오기와 손자에 관한 일화는 어린 내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여러 번 읽어 외울 정도였다. 자신의 잘못을 겸허히 시인하고 자신에게 매를 든 손자의 묵직함, 병사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준 오기의 용병술과, 그, 사람을 휘어잡는 힘의 한 부분을 어린 내가 본 것이다. 윗사람들의 솔선수범하는 자세는 현실과 동떨어진 만큼이나 보는 이들로부터 동의를 이끌러 낼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 들어도 가슴 뛰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것들이 또한 생사가 달린 문제와도 직결되었으니 어린 내가 얼마나 격정적으로 읽어 내려갔었겠는가? 실제로도 사람을 다룰 때에, 이보다 더 좋은 본보기가 없었다. 살아오면서 내게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다. 지금은 장군이 될 일이 없지만, 어릴 적에는 손자와 오기처럼만 하면 모두가 훌륭한 장군이 될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위인들도 자기 생이 비참하게 끝맺어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온갖 굴욕을 딛고 일어서 세상에 이름을 떨쳤을 만큼 불굴의 의지력을 지녔음에도, 제 맘대로 돌아가는 세상 상황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런 마당에, 그때 당시보다 훨씬 복잡한 오늘날의 이 세상 속에서, 그때 당시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로 똘똘 뭉쳐진 나머지 마음이 이미 화석화되어버려 철통같은 성벽을 세운 개인들을 앞에다 놓아두고,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우리시대 일반인들의 삶에 있어서야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더 할 말도 없지 않겠는가? 정녕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어디 내 말이 틀렸는가? 그래도 어찌된 영문들인지, 높은 자리들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유의 사람의 이름들이 들려온다. 가만 보니 그 사람이 그 자리에 계속해서 앉기도 하거니와, 끼리 끼리들 모여서는 시간 간격을 달리하며 돌아가면서도 않기도 하였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 태반은 머릿수만 채우고 있는 경우들일테다. 그런데도 나라는 이렇게나 잘 돌아가고 있으니 의아했다. 그러나 세상사를 좀 더 알게 된 지금은 그런 게 궁금하지도 않게 되었다. 이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정도의 나이는 되었다. 다만, “원래 한 자리에서 오래 앉아 있는 자들일수록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라는 얘기로 〈오기〉편을 마치려 한다. 그들은 실로 나라에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는 자들임을 역사책이 누누이 밝히고 있음을 말하며 〈오기〉편을 마치려 한다. 아부하는 자가 공을 이어받고 사기꾼이 부를 거머쥐는, 사마천 『사기』속의 고대 중국의 봉건사회에서, 굳이 사마천 『사기』 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방탕한 행적들을 추적해가면서까지, 이 사람이 처세의 달인이었다라고 칭송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예로 들고 있는 오기 같이 결단성 있는 인물이 아니라면, 실상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들 모두가 나라에 하나도 이로울 것이 없는 자들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뭇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한때는 분노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당나라 시대에 태어났어도 재상 직을 수행하셨을 것이고 청나라 시대에 태어났어도 재상 직을 잘해내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이런 자들은 나라가 망해도 자리 보존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 인정하기는 싫지만, 만세의 위인들이란 모두 이런 유형의 자들일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자들일수록 어느 사회, 어느 조직에서나 능력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다만 큰 역적이 되고 만고의 충신이 되는 것은 그들 각자의 의지도 의지이겠거니와 그들이 살던 세상 여건이 그들의 처신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한 사람은 역적이 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충신이 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지 그들 둘 사이에 무슨 대단한 능력의 차이가 있어서 그들에 대한 평판이 그렇게 갈려진 것은 아니다. 이런 자들이 많은 세상에, 분명한 자기 의견을 가지고 아랫사람들에게도 몸을 낮추어 가면서까지 권력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 낸 오기와, 자기 말에 끝까지 책임을 진 손자의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준 일화들은 어린 내게 너무나도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다만 그들이 어느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었는지를 몰랐을 뿐이었는데, 이제 『사기』의 주인공들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행동은, 사마천의 글을 통해서, ‘솔선수범’이란 단어를 내 머리 속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모두가 어릴 적 이야기이다.
“어릴 적, 손자와 오기의 일화, 병사의 고름을 빨아 치료해 준 오기의 용병술과 궁녀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켜 왕을 ‘깜짝’ 놀라게 한 손자에게 감탄했다.” 하지만 다 지나간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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