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모음
사랑의 병법 / 정끝별
박송 입니다.
2011. 10. 18. 19:45
사랑의 병법 / 정끝별
네가 나를 베려는 순간 내가 너를 베는 그 궁극의 타이밍을 일격(一擊)이라 하고
나무의 뿌리가 같고 가지 잎새가 하나로 꿰는 이치를 일관(一貫)이라 한다
한 점 두려움 없이 손님처럼 나를 주고 너를 받는 기미가 일격이고
흙 없이 뿌리 없듯 뿌리 없이 가지 잎새 없듯 너 없이 나 없는 빌미가 일관이라면
너 관(觀)하여 미지의 틈을 일으켜 너를 통(通)하는 한 가락이 일격이고
나를 관(觀)하여 쉼 없는 지극함으로 나를 통(通)하는 한 마음이 일관이다
일격이 일순의 일이고 일관은 일생의 일이다
일관이 일격을 꽃피울 때
일 푼 숨이 멎고 일 푼 바람이 부푼다
무인이 그렇고 달인이 그렇다
전설 속 설인이 그렇고 애인이 그렇다
일생을 건 일순의 급소
너를 통과하는 외마디를 들은 것도 같다
단숨에 내리친 단 한 번의 사랑
나를 읽어버린 첫 포옹이 지나간 것도 같다
너를 베낀 긴 침묵을 읽은 것도 같다
굳이 시의 병법이라고도 말하지 않겠다
내가 시인인 까닭이다.
계간 『문학동네』 2011년 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