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 강남 재건축 시장 '패닉'
분양가 상한제 강행에 강남 재건축 시장 '패닉'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강행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살얼음판이다. 당장 재건축 사업에 속도를 내던 서울 강남 주요 단지마다 비상이 걸렸다. 재건축뿐 아니라 재개발 등 정비사업까지 줄줄이 막히면서 주택 공급이 끊겨 머지않아 집값이 급등할 우려도 크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10월부터 투기과열지구 내 민간택지 아파트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 서울 전역과 경기 과천시, 성남 분당구, 대구 수성구, 세종시 등 전국 31곳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있다. 한창 사업이 진행 중인 재건축, 재개발 단지도 입주자 모집 승인을 받기 전이면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는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서 ‘직전 3개월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 초과인 지역’이었던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요건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바꿨다. 여기에 직전 12개월 분양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 초과, 직전 2개월의 청약경쟁률이 5 대 1 초과, 직전 3개월 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 등 3가지 요건을 하나라도 충족하면 상한제 적용 대상이 된다.
적용 대상 단지도 상당할 전망이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시점을 기존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한 단지’에서 ‘입주자 모집 승인을 신청한 단지’로 늦췄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할 경우 상한제 적용을 피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사업이 막바지에 접어든 정비사업장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는 의미다.
지난 6월 기준으로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고 아직 착공을 하지 않은 서울 재건축 단지는 총 66곳, 6만8400여가구에 이른다. 관리처분인가 이후 이주, 철거를 거쳐 입주자 모집 공고까지 가려면 최소 1년 이상 걸리는 만큼 이들 단지 대부분이 분양가상한제 사정권에 들어 있다. 재개발 구역까지 포함하면 서울에서 재건축, 재개발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306개 사업지 대부분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을 전망이다.
후분양제를 선택하더라도 상한제 적용은 피하지 못한다. 국토교통부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후분양이 가능한 건축공정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현행 규칙상 분양보증을 받지 않고 아파트 후분양을 할 수 있는 시점은 ‘지상층 층수의 3분의 2 이상 골조공사 완성 이후’다. 공정률로 보면 50~60% 수준인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없이 분양이 가능했다. 최근 서울 강남권 재건축조합 상당수가 후분양을 검토한 배경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지상층 골조공사 완료’ 시점으로 바꿀 예정이다. 공정률 기준 80% 수준이라 사실상 후분양 단지도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게 됐다.
전매제한 조치도 한층 강화됐다.
앞으로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민간택지 내에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주택 전매제한 기간은 인근 주택 시세 대비 분양가 수준에 따라 5~10년으로 확대된다. 분양가격이 인근 시세의 100% 이상이면 5년, 80~100% 미만이면 8년, 80% 미만이면 10년이 적용된다. 기존 법에도 3~4년의 전매제한 기간이 있었지만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수요 유입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주의무기간도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주택법 개정안 발의를 통해 수도권 공공 분양주택에 적용되는 최대 5년의 거주의무기간을 연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주택에도 도입할 예정이다.
정부가 공공택지에만 적용하던 분양가상한제를 민간택지까지 확대한 것은 집값이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 중심으로 집값이 꿈틀대고 HUG 규제를 피한 고분양가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분양가 상승이 인근 기존 주택 가격 상승을 견인해 집값 상승을 촉발한다는 것이 국토부 분석이다. 이문기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국토부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도입되면 분양가가 시세 대비 70~80%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 직격탄
▷일반분양가 떨어져 조합원 분담금 급증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강행하면서 서울 재건축, 재개발 사업장은 일제히 패닉에 빠졌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을 기존 관리처분계획인가 단계에서 입주자 모집 공고일로 늦추면서 대부분 사업장이 규제 대상이 된 때문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이주, 철거를 진행 중인 사업장이다. 일례로 서울 서초구 신반포3차·경남(래미안원베일리)의 경우 지난해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후 올 들어 이주를 완료하고 철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반분양이 가능한 철거 완료, 착공 시점은 내년으로 예정돼 있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아 일반분양가가 기존 예상 가격인 3.3㎡당 5000만원 선에서 4000만원 수준으로 낮아질 경우 조합원 분양가가 오히려 일반분양가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이 경우 가구당 평균 분담금도 1억원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원베일리 조합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을 때 전용 84㎡ 기준 조합원 분양가를 3.3㎡당 4800만원(16억2300만원), 일반분양가를 3.3㎡당 5060만원(17억2000만원) 선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일반분양가가 3.3㎡당 4000만원대로 떨어져 조합원 분담금이 기존 2억3000만원 수준에서 3억5000만원 이상으로 뛸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연말 입주자 모집을 앞두고 철거 막바지 단계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도 분양가상한제 직격탄을 맞았다. 둔촌주공1단지는 당초 3.3㎡당 평균 분양가가 3600만~3800만원대로 예상됐다. 하지만 상한제를 적용받아 3.3㎡당 2600만원대로 낮아지면 일반분양 수입이 1조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가구당 예상 손실만 1억원에 달한다. 당초 분양가를 높이기 위해 후분양을 검토했지만 후분양 역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으면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둔촌주공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업소에는 호가를 수천만원 낮춘 급매물이 쏟아지는 분위기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당장 조합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에 나서는 조합이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상한제 적용 이전에 일반분양을 강행하려는 단지도 적잖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상아2차(래미안라클래시) 재건축조합은 최근 조합원 임시총회를 열고 후분양 대신 선분양을 추진하기로 했다. 애초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후분양을 추진했지만 똑같이 상한제를 적용받는 만큼 차라리 선분양을 추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밖에 반포주공1단지 1, 2, 4주구와 반포한신4차 등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철거, 이주를 진행 중인 강남권 재건축 사업장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조경이나 커뮤니티시설 수준을 낮추는 등 설계 변경을 통해 공사비 절감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심지어 아예 재건축 사업을 접거나 리모델링으로 선회하는 단지도 늘어날 전망이다. 대치쌍용1, 2차 아파트는 초과이익환수제 등 각종 재건축 규제로 이미 사업을 중단했다.
“당초 후분양을 고민하던 래미안라클래시, 원베일리, 둔촌주공 등은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분양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HUG의 분양가 통제를 받더라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것보다는 수익성이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임대 후 분양’ 카드를 검토할 가능성도 높다. 의무임대기간이 끝난 후 분양가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는 데다 분양가상한제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 분석이다.
▶강남 재건축 투자 괜찮을까
▷단기 충격 불가피…새 아파트 반사이익
정부가 초과이익환수제에 이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까지 강행한 만큼 강남 재건축 투자 전망은 밝지 않다. 분양가상한제 직격탄을 맞은 강남권 정비사업은 제 속도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재건축 기대 수익이 하락하면서 아파트 가격도 당분간 하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서울 송파구 대장주인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최근 전용 76㎡ 실거래가가 19억원 선이 무너졌다. 한때 20억원 넘는 매물이 나왔지만 분양가상한제 이슈로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대치 은마아파트 역시 전용 76㎡ 실거래가가 7월 18억9000만원에서 최근 17억7000만원으로 1억2000만원가량 떨어졌다. 김광석 리얼투데이 이사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여파로 당분간 서울 강남 재건축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대로 준공 5년 내 새 아파트나 상한제를 피해 분양을 마친 인기 지역 아파트 가격은 상대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재건축·재개발 사업 충격의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서울에는 새 아파트를 지을 땅 자체가 부족한 만큼 재건축, 재개발 같은 정비사업 물량이 신규 공급 대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07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 당시 2만9800가구였던 서울 재건축, 재개발 사업 인허가 실적은 2008년 1만8900가구, 2009년 1만4100가구로 대폭 줄었다.
이 때문에 정비사업이 틀어막힌 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최근 준공된 새 아파트 희소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울 강남권이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인기 지역 입주 5년 이하 신축 아파트 쏠림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도 높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분양가 통제로 재건축·재개발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는 만큼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 장기적으로는 재건축 사업 중단 등에 따른 공급 감소로 새 아파트 희소성이 커져 전반적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 최근 신축 아파트 단지 위주로 분양·입주권 가격이 오름세다. 오는 9월 입주를 앞둔 강동 고덕그라시움 분양권은 한달 새 1억원이 넘는 웃돈이 붙었다.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에 따르면 전용면적 84㎡는 평균 13억~13억5000만원에 호가가 형성돼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단지 같은 면적은 지난 7월 11억~12억원 사이에 거래된 것으로 신고됐다. 지난 7월 7억7000만원에서 9억원대에 거래됐던 전용 59㎡ 역시 현재 호가는 10억3000만원대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상황도 비슷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월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 입주권은 1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5월 말 같은 면적 입주권이 13억5000만원에 거래됐으니 불과 두 달 만에 4억원이 급등한 셈이다. 고덕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고덕그라시움을 비롯해 강동 새 아파트 분양권과 입주권은 분양가상한제 이슈 이전에도 오르는 추세였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으로 분위기가 바뀐 만큼 호가가 더 가파른 속도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이 기정사실화된 지난 7월, 사상 최고가를 찍은 강남권 신축 아파트는 꽤 많다. 지난 6월 말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센트럴자이’ 전용 114㎡ 입주권은 28억5000만원(13층)에 거래됐다. 직전 최고가를 기록했던 지난해 1월(25억5000만원, 30층)보다 무려 3억원 뛰었다. 잠원동 래미안신반포팰리스 전용 84㎡도 지난 7월 22억3000만원에 거래되며 직전 최고가 21억3000만원(5월)을 갈아치웠다.
다만 새 아파트 투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건축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새 아파트가 ‘나 홀로 강세’를 보이기는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분양가상한제 도입 직후 수요자 관심이 당장 새 아파트와 일반 아파트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 거래량이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굳이 기존 아파트를 사지 않고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아파트를 저렴하게 분양받으려는 관망 수요가 늘고 있다. 단기간 새 아파트 가격 급등에 따른 피로감과 대출 규제 등 여러 변수를 함께 감안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아파트가 오히려 줄어들어 길게 볼 때 신축 품귀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단, 상한제 실시로 서울 집값을 주도하던 재건축 시장이 타격을 받으면 당장 서울 전체 주택 시장 가격과 매수 분위기가 주춤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의견도 눈길을 끈다.
▶부작용도 만만찮아
▷로또 청약·주택품질 저하 우려
분양가상한제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저렴한 아파트를 기다리는 대기수요가 늘어 전셋값이 불안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된 2007년 당시 전국 주택 전세가격은 2.74% 올랐다. 하지만 2년 후인 2009년 오름폭이 4.25%로 커졌고 2011년에는 15.3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로또 청약’이 심화될 우려도 크다. 정부 주장대로 신규 아파트 분양가가 시세 대비 70~80% 수준으로 떨어지면 청약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무주택 서민이 청약에 당첨될 확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서울 강남권 등 인기 지역에서는 분양가가 낮아지더라도 대체로 9억원을 넘는 만큼 중도금 대출이 어렵다. 이 경우 현금이 넉넉한 소수가 로또 청약 물량을 독식하는 구조를 피할 수 없다. 재건축, 재개발 조합원이나 실수요자가 누려야 할 혜택이 극소수 로또 청약 당첨자에게 고스란히 넘어간다는 의미다.
건설업계에서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로 인한 주택 품질 저하 우려를 제기한다. 상한제가 적용된 아파트 분양가는 토지 감정평가액과 정부에서 정한 기본 건축비를 토대로 산정되는 만큼 고급 자재를 쓰거나 특화설계를 적용하기 어렵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면 주택 품질이 떨어져 성냥갑 아파트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아파트도 자동차나 가전제품처럼 엄연한 민간기업 상품인데 정부가 제멋대로 분양가를 통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매경이코노미 제2022호 (2019.08.21~2019.08.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