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스/국가(아르메니아)
동부 유럽 카프카스 지역에 있는 내륙국.
위치 : 동부 유럽 카프카스
면적 : 2만 9743㎢
인구 : 380만 7000명(2001)
인구밀도 : 128명/㎢(2001)
수도 : 예레반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아르메니아어
통화 : 드람(dram)
환율 : 554.14dram=1달러(2001.9)
1인당 국민총생산 : 490달러(1999)
본문
면적은 2만 9743㎢, 인구는 380만 7000명(2001)이다. 인구밀도는 128명/㎢(2000)이다. 수도는 예레반이며 아르메니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정식명칭은 아르메니아공화국(Republic of Armenia). 독립국가연합(CIS)의 일원이다. 북쪽은 그루지야, 동쪽은 아제르바이잔, 서쪽은 터키, 남쪽은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의 나히체반자치공화국과 국경을 접한다.
1. 자연
1) 지형 ·지질
아르메니아는 습곡산지와 화산지대의 전형적인 산지국으로 국토의 90%가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고지이며, 평균고도가 1,800m이다. 가장 높은 곳은 아라가츠산(4,090m)이며 가장 낮은 곳은 북동부의 데바드강(江) 연안과 남동부의 아라크스강 하류로 해발고도 350∼400m이다. 북동부는 말리(小)카프카스산맥의 중앙부이며, 구조 침식지형으로 솜헤트스키·팜바크·구가라츠·무르구즈·세반 산맥 등의 지맥을 포함하는 산악지대이다.
중앙부의 화산지대는 남서부의 에흐나가스키 및 드자바헤츠키산맥에서 동남부의 카라바흐고원에 이르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아즈다크산(3,597m)과 바르데니스·아쇼츠카이아·시라크 및 세반분지를 포함한다. 남부는 스브곡산악으로 협곡이 발달하여 카핏주흐산(3,904m)이 솟아 있고, 서부에 바이크산맥, 동부와 남동부에 메그리산맥이 뻗어 있다.
중서부는 중앙 아라크스 산간분지이며, 이의 북서부인 아라라트평야는 해발고도 800∼1,000m로 기복이 심하지 않은 지역이다. 하천의 특징은 길이가 짧고 급류인 곡류천으로 눈이 녹는 봄과 비가 오는 가을에 수심이 깊다. 하천 상류와 하류 곳곳에 곡저평야가 전개되나 중류에는 협곡이 발달하였다.
주요 하천은 유역면적이 국토의 76%인 아라크스강과 24%인 쿠라강이다. 아라크스강 본류는 남단의 이란과 터키 국경지대를 따라 흐르며 아후랸·카사흐·라즈단·아자트·보로탄 등의 지류가 남·동남쪽으로 흘러 유입된다.
아제르바이잔의 국토를 횡단하여 흐르는 쿠라강에 유입되는 지류는 데베트·팜바크·아그스테프·아훔강 등으로 북·북동쪽으로 흐른다. 100개 이상의 자연 호수 가운데 가장 큰 호수는 세반호(1,420㎢)이다. 이 호수는 해발고도 1,906m의 고지에 있고, 관개 및 수력발전에 이용된다. 지중해 습곡지향사지대에 속하고, 지질구조가 복잡하며 불안정하다. 선캄브리아기에서 신생대에 이르는 다양한 지층구조로, 구리·몰리브덴·금·철·암염 등이 다량 매장되어 있다.
2) 기후 ·식생 ·토양
아르메니아는 온대성기후이나, 산지국으로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 기후는 흑해·카스피해, 건조한 이란과 아나톨리아고원의 영향을 받는다. 평야는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전개되는 온대건조기후이다. 7월 평균기온이 24∼26℃이나, 더운 날은 42℃까지 올라간다. 연강수량은 200∼400mm이며 봄철에 비가 많다. 식물 생육기간은 6∼7개월이다. 해발고도 1,400m 이상의 고원과 산록은 7월 평균기온 18∼20℃이며, 1월 평균기온 -4∼-6℃이다. 연강수량은 500mm이며, 식물생육기간은 4∼5개월이다. 해발고도 2,000∼3,000m의 고산지대는 여름이 냉량하여 평균기온 10∼15℃이고, 겨울은 혹한으로 1월 평균기온 -9∼-14℃이며, 최저 -46℃까지 내려간다.
다양한 생물지리학적 특성을 나타내며, 3,000종 이상의 식물군이 분포한다. 고도에 따라서 반사막·스텝·삼림·고산성초지·고산툰드라 등의 5개의 식생지대가 전개된다. 저지에는 엉겅퀴 식물이 자생하고, 1,400m 고원 지역에는 쑥 종류가, 산록에는 가시덤불이 널리 분포한다. 삼림지대는 국토의 10 %이며, 경제림은 동남부에서 해발고도 1,900∼2,000m, 북동부에서는 해발고도 2,200∼2,400m 되는 산지에 전개된다. 토양은 지질·기복 및 고도 등에 따라 다양하다. 아라크스강 중류 저지는 사막토, 해발고도 1,300∼1,400m의 구릉지에는 갈색토, 1,600∼1,800m 고지에는 적갈색토, 화산용암대지에는 산지체르노젬, 고산에는 산지초원토, 산지초원늪지토 및 산지초원이탄토 등이 분포한다.
2. 주민
아르메니아의 주민은 아르메니아인 93.3%, 아제르바이잔인 2.6%, 러시아인 1.5%, 쿠르드인 1.7%와 소수의 우크라이나인 및 그리스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터키의 대학살을 피해 국외와 러시아로 이주한 아르메니아인이 제2차 세계대전 후 귀환하였다. 인구의 97%가 해발고도 800∼2,400m 지대에 집중되어 있다. 인구밀도는 해발고도 800∼900m의 아라라트평원과 라즈단강 중·하류지역이 가장 높으며 2,400m 이상의 산지는 낮다. 1998년 현재 여성인구 100명에 대한 남성인구는 95.5명이고, 평균수명은 남자 62.45세, 여자 71.23세이며, 산간지방은 세계적인 장수지대이다.
공식언어는 아르메니아어이다. 이 언어는 5세기 초 문어로 정착했으며 인근 국가는 물론 미국까지 퍼져 있다. 동남부에 거주하는 쿠르드인은 쿠르드어를 사용한다. 공식 국교는 없으나 4세기 초부터 그리스도교를 신봉하였다. 중세 이후 근대까지 이슬람·페르시아·러시아 등 이교도의 지배를 받았으나, 현재 대부분의 주민은 아르메니아사도교, 일명 아르메니아가톨릭교를 신봉한다. 소수민족은 러시아정교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대부분의 쿠르드인은 철저히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3. 역사
고대문명 발생지로서 BC 9세기∼BC 6세기에 민족이 성립되었다. 기원전 수백 년 동안 아시리아·페르시아·알렉산드로스·셀레우코스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다. BC 2세기에 대제국을 이루어 수백 년간 로마와 파르티아왕조의 완충국으로서 부분적인 독립을 누렸으며, 4세기 초에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그후 다시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653년 아랍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실질적인 자치를 유지하였다. 11세기 말에 셀주크투르크, 13세기에는 몽골, 15세기에 오스만투르크와 티무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6∼18세기까지 오스만과 페르시아 제국간 이권 다툼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동서양의 교역로 구실을 하였다. 1639년 터키·이란 간 영토분쟁으로 국토가 양분되었으며, 1828년 터키의 점령으로 다수가 제정러시아로 이주하였다.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까지 많은 아르메니아인이 국외로 망명, 이주하였다. 1917년 제정러시아가 붕괴된 후 그루지야 및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반(反)볼셰비키 트랜스카프카스동맹에 참여하였으나 터키군의 위협으로 붕괴하였다.
1918년 5월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터키에 일부 영토를 양도하였다. 1920년 세르브조약에 의해 독립이 인정되었고, 11월 소비에트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22년 12월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강제로 트랜스카프카스소비에트 연방사회주의공화국의 일원이 되었으며, 1936년 12월 소련을 구성하는 연방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의 개방과 개혁정책으로 생태환경, 역사 및 정치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으며, 1988년 2월 아제르바이잔과 민족문제로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1988년 12월 북부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2만 5000명이 사망하였다. 1990년 8월 주권 선언에 이어, 1991년 9월 23일 독립을 선언하고, 같은 해 12월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였다.
1995년 7월부터는 신헌법을 채택하여 강력한 대통령제를 이루었으며 의회선거를 실시하여 여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때의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시비로 한동안 정국이 불안정하였다. 1999년 5월 총선을 실시, 야당인 인민당-공화당 연합블록이 승리하였다.
4. 정치
구소련 소속의 공화국이었다가 1991년 독립하였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이다. 대통령은 국민투표에 의하여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다. 최고 입법기구는 임기 5년의 의원 260명으로 구성되는 최고회의(Geraguin Khorurt)이다. 최고 행정기관은 각료회의이며, 총리·부총리를 포함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는 27명의 각료로 구성된다. 정당으로는 전신이 공산당인 아르메니아민주당(ADP)과 아르메니아혁명연합(ARF)·민주자유당·아르메니아공화당·아르메니아범민족운동(APM)·국가민주동맹·국민자결동맹 등이 있다.
독립 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평등·호혜·개방 등의 외교기본원칙에 따라 구(舊)소련의 여러 공화국은 물론 서방 각국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경제동맹조약, 독립국가연합 창설협정, 집단안전보장협정 등 각종 협정을 체결하였다. 2001년 현재 국제연합(UN),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무역기구(ITO), IBRD(세계은행), 유럽안전보장회의(CSCE), 세계보건기구(WHO),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등의 국제기구에 가입하고 있다.
소련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미국·캐나다·중국 및 서유럽국가와의 경제·외교 관계를 중시한다. 터키 및 이란과는 실리주의 원칙하에 관계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나히체반 지역 등 영토문제로 1988년 이후 분쟁상태에 있는 아제르바이잔과는 대립관계에 있다.
외교 정책에서는 러시아와의 유대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 국방장관으로 선임된 제르츠 사르키샨(Serzh Sarkisyan)은 그해 6월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주목을 끌었으며, 9월에는 대통령 로베르트 코차랸(Robert Kocharyan)과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V.푸틴(Vladimir V. Putin)이 21세기에도 상호 협력한다는 선언문에 서명하였다. 그리고 이해에 1996년 이래 비회원 객원국으로 참가해 왔던 유럽평의회(European Commission)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1999년 10월 국회 내에서 총리와 국회의장을 포함한 8명의 요인이 사망하는 총격사건이 발생했으나 이후 정치상황은 안정되었다. 2001년 현재 대통령은 로베르트 코차랸(1998년 3월 30일 이후)이며 안드라니크 마르카랸(Andranik Markaryan)이 총리로 재임하고 있다.
5. 경제
1928년 이후 국가 규모의 투자, 농업의 집단화, 교통시설의 확충 등으로 급속한 경제발전을 달성하였다. 1975년 독립 후에는 국가경제개발정책의 일환으로 1991년 전체 농토의 80%에 대하여 농가당 0.5헥타르를 배분하는 농지개혁법, 기업활동법, 법인세법 및 국영기업 사유화법 등 각종 법률을 제정하였다.
민영화 시행 초기에는 시행 일정에 관련된 명료한 정부지침의 부재, 자산평가 방법의 미비, 민영화 진행에 대한 관심 분산, 관련 정부기관 내 전문인력의 부족 등으로 민영화 추진이 지연되었다. 또, 1988년 12월 7일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구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싸고 1988년부터 수년간 아제르바이잔과 벌인 분쟁으로 1991∼1994년에 경제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의 계속된 민영화 추진과 개혁, 그리고 고르노카라바흐 분쟁 합의 후 정황이 안정되면서 1994년 이후 2000년까지 연평균 5% 이상의 고도성장을 달성하였고, 1998년에는 연간 인플레이션을 8.9%로 낮추었다. 현재는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독립국가연합)에 속한 국가 가운데 민영화가 가장 잘 진행된 국가로 평가된다. 아제르바이젠과의 갈등 해소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의 관건이다.
1999년 현재 1인당 국내총생산은 2,800달러이다. 통화는 드람(Dram)이고, 1999년 말 현재 환율은 1달러가 519.97드람이다.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국내총생산에서 농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광·공업 부문이 국가경제를 주도한다. 과거의 산업구조는 1차산업과 경공업 위주였으나, 2000년 현재는 화학, 비철금속, 기계장비류, 정밀기계, 섬유, 의류, 양조, 통조림 제조 등에 주력하고 있다.
1) 농축산업
아르메니아는 지형과 기후상의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이후 지속적인 농지개발과 관개사업으로 농업이 진흥되었다. 인구의 26.1%가 농업과 임업에 종사한다. 경작지는 국토의 17%, 목장·목초지 및 건초지가 39%를 차지한다. 산악지역의 농지는 옥수수밭·과수원·포도밭·목초지 등이 혼재되어 있다. 사유경작지는 1991년에 전체 경작지의 1/3에 불과하였으나 1992년에는 90%로 증가하였다.
최대경작지는 아라라트 평원, 시라크 고원, 세반분지 등이며, 저수지·양수·관개용수로의 설치로 경작지의 절반 이상이 관개된다. 아라크스 유역의 관개지에서 밀·보리·올리브·무화과·석류·목화·포도 등이 재배되며, 예레반 주변 지역에서 집약적인 원예농업과 양잠이 성하다.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지역에서는 곡물·사탕무·감자 등의 재배가 양사육과 결합되어 행하여지며, 산록에서는 밀·보리·옥수수·라이보리 등의 곡류, 산악지대의 남사면 저지에서 잎담배와 감자가 재배된다.
아라라트평원에서는 과거에 주로 목화와 사탕무가 재배되었으나 현재는 포도와 같은 환금용 작물을 재배한다. 로리·시라크 고원, 세반분지 등에서는 대규모 목축이 성하고, 서남부의 산간지방에서는 동계방목을 행하며, 광대한 고산목초지에서는 소·양·염소 등이 사육되고, 세반호에서는 송어어업이 행해진다.
2) 광공업
구리·몰리브덴·납·아연·철광석·망간·금·크롬·수은광 등이 풍부하지만 1991년 구소련의 붕괴로 많은 광산이 폐쇄되었다. 건축재로 사용되는 응회석·경석·현무암·대리석 등이 많이 채굴된다. 라즈단강·소라켄강·테메트강에 대규모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어 있다. 국내의 비철금속자원과 수력전기는 파이프라인으로 수송되는 석유 및 천연가스와 더불어 기계·화학·야금·섬유·양조·피혁공업 등을 발달시켰다.
최근에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동·아연 등의 제련, 시멘트 생산이 발달하였다. 에너지는 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영향으로 인하여 석유·가스가 부족해지자 1995년 6월에 안전성 문제로 정지하였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재개하였다.
수도 예레반은 최대 공업도시로 전국 공업생산의 3/5을 차지하며, 전기기계·금속·인조섬유·식품·비료·양조·화학·양모공업 등이 발달해 있다. 에치미아진에 기계 및 식품공업, 아보비안에 기계공업, 라즈단·오크템베랸 및 케네케르에 알루미늄공업, 알라베르디에 화학공업, 구가르크·잔게주 및 카판 등지에 구리 및 몰리브덴 정련업이 발달하였다.
북동부의 프리제베드 지방에는 화학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인조보석 및 기계공업이 발달한 키로바칸공업지대, 식품 및 전기기계공업이 발달한 스테파나 반공업지대 등이 있다. 북서부의 시라크스크 지방에는 기계공업 중심의 중공업이 발달한 귐리공업지대가 있으나 1988년 12월 발생한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996년 황금 등의 보석류, 알루미늄, 운송장비, 전기설비, 고철 등 총 2억 73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하였다.
3) 무역
2000년 현재 수출 규모는 3억 달러이고, 수입 규모는 8억 90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기계 설비·비금속·광물 제품 등으로 경공업제품이 두드러지며, 주요 수입품은 광물 제품·가공식품·화학품 등이다.
수출 상대국은 이란·러시아·투르크메니스탄·그루지야 등이고, 수입 상대국은 러시아·미국·이란 등이다. 러시아와의 무역량이 전체의 45%(1995)를 차지하며 미국 및 서유럽과의 교역량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4) 교통
산지가 많으며 평균고도 해발 1,800m에 이른다. 소카프카스산맥이 국토의 북부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면적 1,360㎢에 이르는 세반호(湖)가 국토의 중동부에 위치한다. 철도 및 도로 밀도는 낮은 편이다.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이란, 터키를 통하는 철도가 있다. 터키와 이란의 국경을 따라 간선철도가 서남부를 종단하며, 중부 및 북부에 국토횡단철도가 부설되어 있다.
주요 여객운송수단인 도로의 총연장은 1998년 현재 고속도로 7,567km를 포함하여 1만 5998km이며, 모두 포장도로이다. 예레반·쿠마이리·키로바칸·라즈단 등지를 중심으로 도로망이 발달하였다. 예레반은 주변 국가의 수도와 항공로로 연결되며, 국제항공화물 수송량이 증가하고 있다. 항공발전프로그램을 채택하여 외국인 투자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6. 사회
자연경관이 아름다워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핑크색의 응회암 도시인 예레반을 비롯하여 예레부니·세반호·카르미르블루드·에치미아진·리프시마·즈바르트노츠·가르니·게하르트 등의 역사적 명소가 있다.
교육은 7세 이상 9년간 의무교육이고 무상으로 실시된다. 문맹률 2%(1998)로 7세 이상 국민 거의 대부분이 읽고 쓸 수 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제2국어로 러시아어를 채택하고 있으며 국민의 대다수가 아르메니아어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어도 이해하고 있다. 영어·프랑스어·그리스어·페르시아어 등 다른 언어로 가르치는 학교도 몇몇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아르메니아어로 된 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예레반국립대학(Yerevan State University), 국립공과대학(State Engineering University) 등 20여 개의 고등교육 기관이 있으며, 대학에서는 언어·철학·역사·문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기술 및 직업훈련 학교들이 많아 아르메니아 노동력의 20%가 어떤 형태로든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며, 60% 이상이 중등교육 후 기술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1990). 의료시설과 사회서비스가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된다.
공휴일은 12월 31일∼1월 2일 신정, 1월 6일∼7일 성탄절, 4월 7일 모성(母性)과 미(美)의 날, 4월 24일 대학살추모일, 5월 9일 평화의 날, 5월 28일 독립기념일, 7월 5일 제헌절, 9월 21일 공화국창립일, 12월 7일 지진 희생자 추모일 등이다.
2000년 인구증가율은 -0.28%, 출생률은 1,000명당 10.97명, 사망률은 9.53명, 영아사망률은 41.48명이다. 평균수명은 66.4세로 남자는 61.98세, 여자는 71.04세이다.
7. 문화
아르메니아의 예술은 아르메니아인의 문화, 유구한 역사, 독특한 산악 지형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아르메니아 예술의 가장 중요한 시기 중에 하나는 BC 17세기부터 16세기이다. 이 시기에는 청동 연금술이 발달하여 오늘날까지 가구 장식, 헬멧이나 화살,방패 같은 무기의 장식으로 응용되고 있다. 그 시대의 대장장이는 금과 은도 역시 잘 다루었고 금속에 신화나 동물의 문양으로 장식하기로 유명했다. 이러한 기술이 침략자의 최우선 공격목표였기 때문에 이러한 기술은 문서화 될 수 없었다. AD 4세기와 5세기에 기독교의 유입이 아르메니아 예술과 건축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메스로프 마시포즈(Mesrop Mashtotz)에 의해 AD 405년에서 406년에 아르메니아 알파벳이 만들어진 이후 문자는 아르메니아 언어, 문학, 예술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하여, 성경이 아르메니아어로 번역되기에 이르러 아르메니아 문화에서 차지하는 기독교신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10세기에 발견된 수도원들은 중요한 예술 센터가 되었으며 카트치카(khatchkars) - 문자그대로 십자가석(cross stones)- 의 완성지가 되었다. 이 카트치카는 현재의 아르메니아에서도 볼 수 있다. 16세기에는 아르메니아 문화, 예술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사회적,정치적 변화가 일어난다.
아르메니아는 주권을 잃고 250년간 터키왕국과 페르시아에 의해 분할통치되므로써 이 시기에 아르메니아 고유의 건축과 예술은 사실상 사라진다. 16세기에서 17세기의 예술의 성향은 점차 일상적인 것들로 변하여 카펫나 레이스같은 비주류 예술이 발달한다. 마라쉬(the city of Marash)시에서 만들어진 가장 유명한 수예품은 풍부하며 발랄한 색채와 공단 자수로 유명하다.
9. 대한관계
1992년 2월 21일 한국과 수교하고, 북한과는 같은 해 1993년 2월 13일 수교하였다. 1994년 8월 아르메니아의 부총리, 1997년 6월에는 체신부장관, 1998년 7월에는 외무차관, 그리고 1999년 8월 외무장관이 각각 방한하였다. 2001년 현재 주(駐)러시아 대사가 주아르메니아 대사를 겸임하고 있다.
한국과의 총교역량은 88만 달러(1999)이며 그중 83만 달러가 한국의 대(對)아르메니아 수출액이다. 교민 및 체류자 수는 35명(1998)이다.